매일신문

지적장애 형제에 "사업하자" 5천만원 등쳐

파지수집 모은 돈 빼스고 적금 깨고 집까지 팔도록

안동 송현동에 사는 지적장애 3급인 K(42) 씨 형제는 동네에서 성실하기로 유명했다. 암 말기로 요양병원에 누워있는 아버지를 모시겠다며 청소용역업체에서 일하거나 파지를 주우며 한푼 두푼 모았다. 작지만 내 집도 마련했고, 짬짬이 건설현장에서 막노동을 한 돈도 허투루 쓰지 않고 아껴 저축했다.

'착한' K씨 형제에게 검은 마수를 뻗친 건 동네에서 알고 지내던 P(52) 씨였다. 건설업자인 P씨는 부업으로 고물을 수집하면서 함께 파지를 줍던 동생 K(39) 씨를 알게 됐다. 청소용역업체에서 일했던 K씨는 P씨에게 임금과 퇴직금 등으로 3천400만원을 모았다는 사실을 털어놨다.

그때부터 P씨의 눈빛이 달라졌다. P씨는 두 형제에게 옷과 신발을 사입히고 술도 사주며 환심을 샀다. K씨 형제의 지능이 8, 9세 수준이라는 점도 적절히 이용했다. P씨는 K씨 형제를 자신의 사무실로 데려가 "함께 고물상을 하지 않겠느냐"며 유혹했다. 또 "사업자금으로 써야 하니 갖고 있는 돈을 내가 아는 사람의 통장으로 보내라"고 했다.

이 통장은 P씨의 내연녀 C(50) 씨 명의였다. K씨는 지난 2011년 3월 31일 자신의 전 재산을 고스란히 통장으로 송금했고, P씨는 이 돈을 자신의 건설업체 자재비와 인건비 등으로 21차례에 걸쳐 2천700만원을 곶감 빼먹듯이 썼다.

P씨는 K씨 형제의 아파트에도 눈독을 들였다. 지난 2012년 5월 형 K씨 소유의 아파트를 내연녀에게 3천만원에 팔게 하고 성실하게 붓던 적금 400만원도 사업자금 명목으로 해약하게 했다. P씨는 이 돈도 10차례에 걸쳐 2천200만원을 빼낸 뒤 써버렸다.

갈 곳을 잃은 K씨 형제는 P씨의 사무실에 딸린 작은 방에서 숙식을 하며 고물상을 열기만 기다렸다. P씨는 남은 돈도 3명의 생활비 명목으로 모두 사용해버렸다. 현재 K씨 형제 통장에 남은 잔고는 한 푼도 없다.

P씨의 범행은 K씨 형제를 면담하던 안동시청 직원에 의해 발각됐다. 이 직원은 형제의 말에서 이상한 점을 발견해 경찰에 수사를 의뢰했고 조사과정에서 P씨의 범행이 드러났다.

안동경찰서는 K씨 형제의 재산 4천900만원을 가로챈 혐의로 P씨를 구속했다. P씨는 경찰 조사를 방해하기 위해 K씨 형제를 사주해 술을 마시고 경찰서에서 행패를 부리도록 지시하기도 했다. P씨의 파렴치한 행각이 드러났지만 K씨 형제는 여전히 그를 '좋은 형님'으로만 알고 있다.

경찰 관계자는 "P씨는 K씨 형제의 돈으로 옷과 신발을 사고 술을 마시는 등 생활비로 썼다고 했지만 옷은 시장에서 파는 1만원짜리였고, 술도 돼지족발에 소주 정도가 전부였다"면서 "K씨 형제에게 보금자리를 마련해줬지만 잃어버린 돈을 찾기는 거의 불가능할 것 같다"고 안타까워했다.

장성현 기자 jacksoul@msnet.co.kr 안동 전종훈 기자 cjh49@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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