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취업 동아리도 좋지만… "좋아하는 일 즐길래요∼"

대학가 동아리 탐구…1972년 생긴 동아리 신입생 줄어들지만...

계명대 연극 동아리인
계명대 연극 동아리인 '계명극예술연구회' 회원들이 다음 달 있을 연극 '꿈 먹고 물 마시고'를 준비하며 찍은 배우 사진. (계명극예술연구회 제공)
"학교 캠퍼스는 지붕 없는 연습실!" 경북대 보컬 버스킹 동아리인 '쌩목' 회원들이 잔디밭에 모여 공연 연습을 하고 있다. 노래를 듣는 모습도 자유로워 보인다.

노래와 연극 동아리는 공통점이 있다. 첫째, 대중 앞에서, 무대에 서서 자신을 드러내야 한다. 둘째, 취업과 직결되는 요즘 뜨는 동아리는 아니다. 셋째, 그래도 동아리를 지키는 끼 넘치는 대학생들이 있다. 신입생이 들어오지 않아도 걱정하기는커녕 "그럴 수도 있죠"라고 껄껄 웃어넘긴다. 이곳에는 어떤 매력이 있는 걸까. 20명 남짓한 학생들이 꾸려가는 40년 넘게 명맥을 이어온 연극 동아리인 계명대 연극 동아리, 길에서 노래하려고 뭉친 경북대 보컬 버스킹 동아리를 찾아갔다.

◆ 무대에서 '다른 사람'되는 게 매력

17일 오후 6시 계명대 '계명극예술연구회' 동아리방. 인터뷰 약속 시간에 맞춰 도착했는데 동아리방에는 학생이 2명밖에 없다. 회장 이경훈(23'광고홍보학과 10학번) 씨는 "연극 동아리 '군기'가 센 곳인데 예전 같지 않다. 연습 시간이 7시라서 애들이 조금씩 늦을 것 같다"며 기자에게 미안해했다. 계명대 연극 동아리는 기강가 셀 수밖에 없다. 그만큼 깊은 역사와 전통을 자랑하기 때문이다. 1972년에 탄생한 이 동아리는 순수 연극을 좋아하는 대학생들이 뭉쳐서 만들었다. 계명극예술연구회는 파워엔터테이먼트 이철우 대표와 김태석 극단 예전 대표, 성석배 대구연극협회장 등 걸출한 지역 예술인들을 배출한 곳이다.

연극 동아리 회원 24명, 지금은 13명이 주로 활동한다. 모두 연기가 좋아서 제 발로 걸어 들어온 학생들이다. 서란(22'러시아어문학과 13학번) 씨는 원래 연극 관람을 좋아했다. 그는 "무대에 서는 것보다 연극 자체가 좋았다. 연극에는 배우만 필요한 것 아니다. 나는 동아리에서 음향과 조명, 기획을 주로 담당한다. 배우의 연기만큼 중요한 부분"이라며 "지난번 연극 때 노래방에서 노래하는 신이 있었다. 배우가 시작 버튼을 누르면 내가 음향을 켜야 하는데 타이밍을 놓치는 실수를 했다. 지금은 웃을 수 있지만 그땐 진땀이 났다"고 말했다.

연극은 하다 보면 그 매력에 더 빠지게 된다. 조주연(21'서양화학과 12학번) 씨는 지원 시기를 놓쳐 6개월을 기다렸다가 연극 동아리에 들어온 열성 회원이다. 미대생인 주연 씨는 모든 학과 수업을 버스로 약 1시간 거리인 대명동 캠퍼스에서 하지만 연극 연습을 위해 성서 캠퍼스까지 매일같이 오간다. "연극을 하면 무대에서 '다른 사람'으로 살 수 있잖아요. 나도 몰랐던 나 안의 다른 모습을 보여줄 때 희열을 느껴요." 한때는 "미대 보냈더니 연극만 한다"는 부모님의 반대도 있었지만 지난해 OB 선배들과 함께한 연극 '경숙이'에서 주인공 역을 맡아 무대에 선 모습을 부모님이 본 뒤 "열심히 해보라"는 격려도 받았다.

취업 동아리가 강세를 보이는 요즘, 연극 동아리는 신입생 유치에 어려움을 겪는다. 지난해 2학기에는 지원자가 단 한 명도 없어 이들을 낙심하게 했다. 경훈 씨는 "그래도 이번에 6명이 지원해서 가슴을 쓸어내렸다. 1년에 정기 공연을 두 번 정도 하는데 한 번 무대에 서려면 두 달 동안 매일 저녁 시간을 바쳐야 하니 요즘 대학생들이 시간 때문에 꺼리는 것 같다"며 "그래서 진짜 연극을 좋아하는 사람만 동아리에 남게 된다"고 말했다.

동아리에서 새로운 꿈도 생겼다. 연극배우, 무대 미술가, 공연 기획자, 성우 등 모두 연극 속에서 찾은 꿈이다. 경훈 씨는 연극배우로 진로를 정했다. 지금은 대구의 한 극단에 들어가 전문 배우로서 기량을 닦고 있다. "극단 사람들이 '요즘에는 잘 생기고 키 큰 배우는 많은데 키가 작고, 외모가 개성 있는 사람이 별로 없다. 너는 키가 작은 게 매력'이라고 해서 용기를 얻었어요. 내가 좋아하는 일을 하며 살고 싶어요."

인터뷰가 끝나갈 때쯤 한 명이 더 도착했다. 14학번 새내기인 이상원(19'일본어학과) 씨다. 계명극예술연구회는 다음 달 9일부터 예전아트홀에서 '꿈 먹고 물 마시고'라는 작품을 무대에 올린다. 오후 8시가 다 돼 가는 늦은 시간, 비로소 연극 연습이 시작됐다.

◆ "비 올 때마다 지붕 찾아다녀도 행복해요"

미디어는 종종 잘못된 환상을 심어준다. 한때 인기를 끌었던 시트콤 '논스톱'은 대학 밴드 동아리의 모습을 그렸다. 음악 동아리라면 드럼과 기타, 멋진 장비를 갖춘 연습실과 동아리방은 있으리라 생각했다. 경북대 보컬 버스킹 동아리 '쌩목'은 이런 환상을 여지없이 깼다. 연습실은커녕 동아리방도 없다. 사방이 탁 트인 캠퍼스는 지붕 없는 연습실이다. 여기서 '버스킹'이 뭔지 짚고 넘어가야 한다. 버스킹은 길에서 연주하고 노래하는 것을 말한다. 이름에서 알 수 있듯, 필요한 것은 '목소리' 뿐이다.

쌩목의 역사는 짧다. 올해 3월, 노래를 좋아하는 김동일(24'물리학과 08학번'쌩목 회장) 씨가 나서서 만들었다. 동아리 첫 회원이었던 새내기 커플은 '쌩목'이라는 이름만 지은 뒤 떠났고, 지금은 사범대, 공대, 법대 등 노래를 좋아하는 다양한 전공생들이 신규 회원으로 들어왔다. 왜 하필 보컬 버스킹 동아리였을까. "밴드 동아리는 공연을 한 번 하려면 준비할 게 엄청나게 많아요. 기타, 베이스, 보컬, 한 명이라도 없으면 연습을 할 수 없고, 공연할 때도 무거운 앰프를 갖고 가서 설치해야 하잖아요. 무대도 따로 필요하고. 우리는 공연할 때 기타도 가끔 쓰지만 MR(반주 음악)을 주로 쓰기 때문에 혼자라도 연습할 수 있어요."

동아리 회원이 되는 방법도 특이하다. 버스킹 동아리 회원이 갖춰야 할 자격은 '용기'다. 거리 공연을 할 때 지원자를 불러 사람들 앞에서 노래를 시키고, 관중의 '호응도'에 따라 동아리 가입 여부가 결정된다. 김 씨는 "요즘 사람들의 듣는 귀는 냉철하다. 호응도가 낮아 떨어진 지원자도 있다"고 귀띔했다.

쌩목은 신규 회원 모집에 연연하지 않는다. 현재 활동 회원은 24명. 신입생 모집이 한창인 다른 동아리들과 달리 "이 정도 숫자면 충분하다"고 말하는 '쿨'한 동아리다. 쌩목 회원들이 한목소리로 외치는 장점은 '자유'다. 그 흔한 단체티도 없고, 정기 모임도 없다. 그래도 MT는 몇 차례 다녀왔다. 동아리를 탈퇴할 때도 카카오톡에 '그동안 고마웠다'고 회장에게 메시지를 보내면 'ㅇㅋ'(오케이) 하고 답장을 보낸다.

이들이 자주 서는 무대는 경북대 북문, 동성로 광장이다. 학교 정문 근처 잔디밭인 '센트럴 파크'는 자주 찾는 무대다. 하지만 동아리방과 연습실이 따로 없어 서러운 적도 종종 있다. 이종명(23'기계공학과 11학번) 씨는 "이 잔디밭이 '로스쿨'이랑 가깝다. 노래하고 있는데 어느 날 법대생이 찾아와서 '오늘은 도저히 못 참겠다. 조금만 조용히 해달라'고 말한 적이 있었다. 그래서 그날은 다른 연습실을 찾아 떠났다"고 당시 상황을 설명했다. 박성진(26'법학과 07학번) 씨도 "문제는 비가 올 때다. 정해진 연습실이 없으니 항상 지붕을 찾아다닌다. 그런 날 조금 서글퍼진다"고 덧붙였다.

버스킹 동아리를 인터뷰하면서 노래를 안 들어볼 수 없었다. 이날 무대는 캠퍼스 잔디밭이었다. 플라스틱 음료수 병은 마이크, 반주는 스마트폰에서 나오는 노래로 대체했다. 지나가던 학생 한 명이 노래 소리를 듣고 자연스레 벤치에 걸터앉았다. 이것이 청춘의 모습이다.

글 사진 황수영 기자 swimming@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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