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역사 속의 인물] 휴전을 끝까지 반대한 이승만 대통령

1950년 6월 25일 발발한 한국전쟁은 참전국을 합쳐 200만 명의 사망자를 냈고, 우리 경제에도 엄청난 타격을 줬다. 주택은 약 60만 가구가 파손됐고, 철도는 전체 시설의 47%가 파괴됐다. 도로와 교량 등 사회간접자본의 훼손도 매우 심해 한국 경제는 회복 불능의 상황에 직면했다.

전쟁 피해가 심각해지는 것과는 별개로 미국과 소련은 전쟁 장기화에 따른 부담과 자국의 부정적 여론을 의식, 휴전을 추진했지만 이승만 대통령은 절대 불가 입장을 고수했다. 조금만 더 노력하면 휴전선을 넘어 북진통일이 가능하다고 여긴 것이다.

하지만 중공군의 계속적인 개입과 소련의 지원 속에서 예상보다 북진이 쉽지 않았고 미국과 UN의 압력도 심해 1951년 오늘 이 대통령은 중공군 철수, 북한 무장해제, UN 감시하 총선거 등 4개 항의 전제 조건을 달고 휴전을 제시했다.

마지못해 휴전 협상에 임한 이승만 대통령이지만 미국의 요구에 호락호락 응하지 않아 미국의 분노를 샀고 급기야 미국은 이 대통령을 제거할 계획까지 세운 것으로 알려졌다. 한반도 휴전은 우여곡절 끝에 1953년 7월 27일 이뤄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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