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구 성서산업단지의 한 자동차부품업체에 다니던 A(35) 씨는 지난해 3월 회사가 월급 지급을 차일피일 미루는 바람에 사표를 냈다. A씨는 5개월치 밀린 월급(1천만원가량)을 받지 못해 법률구조공단을 통해 민사소송을 진행, 지난 4월 승소했다. 하지만 회사 대표가 법인재산을 다 빼돌리고 개인재산마저 타인 명의로 돌려놓아 밀린 임금을 받을 가능성이 희박하다. A씨는 "1년 넘게 밀린 임금을 받으려고 몇 차례 노동청과 법률구조공단, 법원 등을 찾아다녔지만 허사였다. 정부는 내 월급 문제로 회사에 벌금을 부과했지만, 나는 여태껏 월급 한 푼도 받지 못하고 있다"고 하소연했다.
올해 대구경북의 체불임금액이 지난해보다 늘어났다. 노동계는 노동당국의 소극적인 지도'단속과 '솜방망이' 처벌을 개선하지 않으면, 체불임금 문제를 해결하기 어렵다고 지적하고 있다.
대구지방고용노동청에 따르면 올 들어 지난달 말 기준 대구경북의 총 임금체불액은 558억1천534만원으로 지난해 같은 기간(461억8천476만원)보다 20.9% 늘었다. 일시적 경영악화나 도산'폐업에 따른 경우도 있지만, 고의'상습적인 악성 체불의 비중도 적지 않다는 것이 노동계의 주장이다.
노동계는 고의'상습적으로 임금 지급을 제때 주지 않는 악덕 사업주에 대한 처벌 수위가 약해 체불 피해가 줄지 않고 있다고 강조한다. 근로기준법(제109조)에 따르면 임금을 체불한 사업주에게는 3년 이하의 징역 또는 2천만원 이하의 벌금이 부과된다. 그러나 사회적 파문을 일으키지 않았다면 대부분 50만~500만원 정도의 벌금형이 고작이다. 고용노동부에 따르면 지난해 명단이 공개된 악덕 임금 체불 사업주 498명 가운데 98%가 벌금형을 받았다. 벌금형 가운데 47%가 100만원 미만이었고, 34.7%가 100만~500만원 미만으로 집계됐다.
대구의 A노무사는 "체임 관련 형사소송에서는 대체로 벌금형이 나오는데 벌금 액수가 체불임금의 10%를 초과하지 않는 경우가 많다. 이 때문에 '차라리 벌금 내고 말지'라고 생각하는 업주가 많다"고 했다.
피해 근로자가 밀린 임금을 받아내기 위해서는 민사소송을 해야 한다. 하지만 근로자 개인이 사업주의 재산 상황 등을 파악해야 하는데다, 소송 기간도 1년 남짓으로 길어 포기하는 경우가 많다. B노무사는 "체당금 제도가 있긴 하지만 법적 절차나 요건이 까다로워 근로자가 제대로 활용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며 "이런 이유로 근로자가 노동청에 체당금을 신청하러 가면 노동청 직원이 노무사를 선임해서 오라고 이야기할 정도이다"고 했다.
노동당국의 소극적인 근로감독도 문제다. 한국노총 대구본부 관계자는 "노동청이 일반 근로감독을 통해 위법 사실을 적발해도 시정 지시에 그치는 경우가 많다. 이런 이유로 악덕 사업주는 체불임금에 대한 노동청의 근로감독을 무서워하지 않는다"고 했다. 그는 또 "고용노동부는 명절을 앞두고 '특별 체불임금 청산 기간'을 정해 체불임금 청산에 적극 나선다고 하지만, 근로감독관이 보충되지 않고 한정된 상황에서는 '공염불'에 그친다"고 지적했다.
C노무사는 "벌금액을 대폭 올리고 상습범의 경우 징역형을 내려야 한다. '삼진아웃제도' 등을 도입할 필요도 있다"며 "대구의 경우 근로감독관 1명이 50~60건의 체불 임금 사건을 맡아 업무처리가 더디다. 근로감독관을 늘려야 한다"고 했다.
*키워드
체당금=근로자가 기업 도산 등을 이유로 임금이나 퇴직금을 받지 못할 경우, 근로복지공단이 사업주를 대신해 일정 한도 내에서 우선 지급해주는 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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