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력고사 세대들이 요즘 학교의 시험 문제를 볼 때 가장 어려워하는 것 중 하나가 문제에 대한 지시인 문두가 지나치게 길고 어렵다는 것이다. "윗글을 바탕으로 의 ㉠이 함축하는 바를 설명한 것으로 가장 적절한 것은?"과 같은 문제를 보면 문제를 풀기도 전에 지친다. 예전에는 객관식 문제를 내면서 "다음 중 답인 것은?"이라고 문제를 내도 아무런 문제가 없었다. 주로 지식에 대한 평가를 하다 보니 교사가 가르쳐 준 것이 답이라는 암묵적인 동의가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주어진 자료를 가지고 해석하고 판단하는 적성 검사 형식의 수능이 도입되면서 문제를 그렇게 낼 수 없게 되었다. 그래서 예전에는 필요하지 않았던 여러 가지 장치들이 사용된다.
먼저 예전에는 '올바른 것은?' '틀린 것은?'이라는 말을 많이 사용했지만 현재는 '적절한 것은?'이라는 말을 가장 많이 사용한다. 왜냐하면 답이 항상 맞거나 틀리는 것이 아니라 주어진 조건하에서 맞거나 틀릴 수 있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한용운의 '님의 침묵'을 이성에 대한 구애의 시로 보는 것은 틀린 것이 아니다. 그렇지만 독립운동가인 작가, 일제 치하라는 상황을 고려한 해석을 할 때는 적절한 해석이 아니다. 그리고 예전에는 필요가 없었지만 현재는 많이 사용하는 표현이 '가장'이라는 것이다. 정설로 굳어진 확고한 해석이 없는 경우에는 다양한 관점들이 인정될 수 있다. 그럴 때 출제자가 의도한 해석 외에 다양한 관점과 해석이 있을 수 있는데, 이럴 경우 다수가 인정할 수 있는 상식적이고, 보편적으로 인정받을 수 있는 견해를 답으로 한정해 주기 위해서 '가장'을 넣는 것이다.
수능에서는 '가장 적절한 것은?'이라는 말은 사용하지만 '가장 적절하지 않은 것은?'이라는 말은 사용하지 않는다. 그 이유는 '가장 적절하지 않은 것'은 '가장 (적절하지 않은)'으로 묶이면 답이 하나가 되지만, '(가장 적절하지) 않은'으로 묶일 경우에는 가장 적절한 것을 제외한 나머지 네 개가 답이 되기 때문이다. 그리고 다수가 인정하기 어려운 소수의 견해라면 그것은 적절한 것으로 보기 어렵기 때문에 굳이 '가장'을 써 줄 필요가 없는 것이다.
학생들은 때론 무식하게 기발하다. '적절한 것을 모두 고르시오'라는 문제의 답이 ㉠㉡인데 ㉠㉡㉢을 답해 놓고는 "적절한 것을 모두 골랐잖아요"라고 말한다. 또 답이 ㉠㉡㉢인데 ㉠㉡을 선택해 놓고는 "제가 고른 것은 모두 적절하잖아요"라고 한다. 그러면서 객관식 문제에 부분 점수를 달라고 우기기도 한다. 수능 시험 문제에서 1번 ㉠㉡, 2번 ㉠㉣과 같이 답 개수가 같을 때는 '적절한 것끼리 짝지은 것은?'이라고 하고, 1번 ㉠, 2번 ㉠㉡처럼 답 개수가 다를 때는 '적절한 것만을 있는 대로 고른 것은?'이라고 쓰는 이유는 바로 그런 이의 제기를 미연에 방지하기 위함이라고 할 수 있다.
능인고 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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