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경부와 국립환경과학원이 대구 안심연료단지 인근 주민 2천980명을 대상으로 건강 영향 조사를 벌인 결과 28명의 진폐증 환자가 발견되었다. 이 중 8명은 진폐증을 일으킬 수 있는 직업에 종사한 적 없는 환경성(비직업성) 진폐증 환자로 대구에서는 처음 발견된 사례다.
진폐증은 폐 속으로 분진이 침착해 폐섬유화를 일으키는 질환이다. 질환의 진행을 멈추거나 완화시킬 수는 있지만 회복시킬 수 있는 방법은 아직 알려지지 않았다. 다행스럽게도 진행을 멈추거나 완화시키는 것은 큰 기술을 요하지 않는다. 환자들이 분진을 회피할 수 있도록 노출 원인을 제거하는 것이 가장 중요한 의학적 조치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전혀 특별할 것 없는 이러한 조치는, 주민들이 처음으로 연료단지 이전을 요구했던 1989년부터 25년간 답보 상태였다. 부동산 이권다툼 대책, 이전터 개발에 대한 전향적 태도, 사업장 간 합의 등이 선행되어야 하는데 어느 것도 선결된 것이 없기 때문이다. 문제는 진폐증만이 아니다. 정부 보고서에 따르면 천식, 만성폐쇄성 호흡기질환 등 호흡기 질환 비율과 미세먼지 양이 타지역에 비해 유의미하게 높게 나타났다. 지난 16일 대구시는 이 문제를 해결하겠다고 공언했지만 그것으로 환경성 진폐증 발병지라는 사실이 달라지지는 않는다.
치료하지 않으면 악화될 것이 분명한 환자를 의사가 25년간 방치했다면 고소고발과 비난이 파고처럼 일었을 것이다. 하지만 25년간 진폐증과 각종 호흡기 질환이 발생하는 것을 방치한 것에 대해 책임을 묻는 모습을 찾아보는 것은 쉽지 않다. 이유는 간단하다. 가치관이 전도되었기 때문이다. 건강과 생명보다 자본과 이권이 중요하며, 협력과 공생보다는 권력과 각자도생에 의존하기 때문이다. 이는 수사적 표현도, 과장된 언사도 아니다. 사례는 조금만 눈을 돌려도 차고 넘친다.
철저한 진상 규명과 국민의 안전보장을 목표로 하는 세월호 특별법은 150일 넘게 표류하고 있다. '특례입학'이나 '막대한 보상' 따위의 유가족 대책위는 언급한 적도 없는 허위사실이 유포되면서 피로감이 높아졌다. 이런 거짓이 만에 하나 사실이라도 씻지 못할 눈물을 닦아줄 계제가 아닐 텐데, '남의 이익이 곧 나의 불이익'이라는 괴이한 가치관의 전도가 이 사회의 부끄러운 민낯을 드러내게 한다.
직업현장은 어떠한가? 지난 13년간 3만 명에 달하는 사람들이 산업재해 사망으로 '인정'받았다. 그러나 통계에 잡히지 않는 산재 사망은 20배로 추정하는 것이 학계의 통례다. 특수고용 및 자영업 형태로 등록된 경우 서류상으로는 노동자가 아닌 것이 된다. 현장에서 사망자가 생겨도 앰뷸런스 대신 트럭으로 운구해 은폐하는 것도 관행이다. 형사처벌을 피하기 위해 합의를 종용하거나 협박을 하는 경우도 적지 않다. 형사처벌을 받는다 해도 법인에 벌금형만 부과하는 것이 대부분이다. 생명보다는 돈인 것이다.
극단적으로 영리를 추구한 몇몇 공장식 병의원에서 환자가 사망하는 사건이 일어난 지 얼마 지나지 않아 나온 투자활성화 방안도 예외는 아니다. 대학병원에 기술지주회사를 설립하고, 기술을 개발한 교수는 '스톡옵션'을 받을 수 있게 하자고 제안한다. 이런 기조라면 대학병원이 국민건강을 수호하는 의료학습의 장이었다는 것은 역사로 남을지 모른다.
또한 안정성 논란이 큰 줄기세포 치료제 연구에 대해 상업 임상시험 1상을 면제토록 제안하고, 아직 FDA에서 한 건도 허가받은 바 없는 유전자치료제에 대한 연구기준을 대폭 완화했다. 어떤 결과를 낳을지 모르는 의학 및 생명공학 기술을 투자와 자본의 논리만으로 접근하는 것은 지푸라기라도 잡고 싶은 위중한 환자들에게 상처를 남기고 엉뚱한 사람들만 이득 볼 수 있다는 것을 이미 황우석 스캔들을 통해 확인한 바 있다.
지난했던 근현대사를 거치며 한반도에 형성된 난민촌 의식은 '살아남는 자가 강하다', '불의에는 눈감고 불이익에는 참지 마라'는 슬로건 아래 인간의 건강과 생명보다 돈과 권력이 중요하다고 병리적으로 전도해 시대를 잠식하고 있다. 이런 전도를 언제, 어떻게 바로잡을 수 있는가에 대해서는 여전히 요원하기만 하다.
이현석/의사·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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