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계산동에서] 국회 해산?

얼마 전 한가위를 맞아 지역구를 방문했다 상경한 대구경북 국회의원들은 저마다 '성난 민심'을 들었다고 했다. 일부 의원은 '차라리 국회를 해산하라' '국회를 폭파하겠다'는 얘기까지 들었단다. 세월호 참사 이후 다섯 달이 넘게 국회가 손을 놓다시피 하고 있는 상황에 진절머리가 난다는 민심일 것이다.

지난주엔 박근혜 대통령께서도 한마디를 하셨다. 박 대통령은 16일 국무회의에서 "세비는 국민 세금에서 나가는 것이므로 만약 그 임무를 행하지 못하면 국민에게 그 의무를 반납하고 세비도 돌려 드려야 한다"고 했다. 물론 행정부의 수반인 대통령이 국민의 대표인 국회의원을 향해 적절치 못한 이야기를 했다는 해석도 나오지만 얼마나 국회가 답답하고 안타깝게 보였으면 그런 말까지 했을까.

실제 5월 이후 국회의 현실을 따져보면 초라하다. 본회의 통과 법안은 '제로'다. 9월 17일 현재 국회의원의 무노동 일수만 124일이다. 의원의 하루 세비가 27만7천978원(연 보수 1억3천796만원)임을 고려하면 무노동'무임금이라는 원칙을 적용했을 때 국회의원 1인당 4천686만여원의 세비를 반납해야 할 처지다.

문제는 국회가 개점휴업에 들어가면서 민생까지 파탄이 날 지경이다. 민생경제 법안 19개가 국회에서 400일 이상 잠을 자고 있다. 서비스산업발전기본법은 2012년 7월 발의됐는데 이후 무려 800일이 다 돼 간다. 이 정도면 대통령의 말에 대해 '민주주의 근간을, 3권분립의 정신을 무너뜨린다'고 토를 달 것이 아니라 반드시 곱씹어 봐야 할 대목이다.

이 꼴이 난 책임은 여야 모두에게 있다고 봐야 한다. 새누리당도, 새정치민주연합도 원인을 밝혀 이러한 참사의 재발을 방지해야 한다는 본분은 잊고 정치적 계산만 앞세우기 때문이라는 게 정치평론가들의 일관된 얘기다.

1995년 대구지하철 공사장 가스폭발 참사 당시에도 여당인 민자당과 야당인 민주당의 모습은 지금과 별반 다르지 않았다. 사고 후 민자당과 민주당은 임시국회 의사일정을 합의하지 못했다. 민주당은 대구 사고를 최우선으로 다뤄야 한다고 주장했지만, 민자당은 선거법 개정안만 다루자면서 팽팽히 맞섰기 때문이다. 결국, 민자당은 단독 임시국회를 강행해 통합선거법 개정안을 단독처리하면서 정국은 급랭했다. 아울러 정부가 사고 뒤처리 차원에서 마련한 재난법안을 정치싸움 하느라 심의조차 못 해 연이어 터진 삼풍백화점 붕괴사고 대응에 영향을 줬다는 비판을 받았다.

19년이 지난 지금도 국회는 그 모습 그대로다. 한 정치평론가는 "변화가 없으니 매번 대형 사고가 터질 때마다 국회는 제 할 일을 못 하게 된다"면서 "위기 상황에서 국회는 사고의 원인을 밝혀내 재발방지책을 마련하는 일이 본연의 역할임을 국회의원 모두 인지해야 한다"고 했다.

지난 일은 얘기해 봐야 소용없다. 앞으로가 문제다. 여야가 더는 말싸움에만 얽매이지 말고 진정 서민들이 뭘 원하는지, 국민의 먹고사는 문제를 어떻게 해결해야 할지 머리를 맞댔으면 한다. 세비 반납하라는 대통령의 말을 아프게 들었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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