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야고부] 소나무 유인트랩

'추운 겨울이 닥쳐온 후에라야 송백이 늦게 시든다는 것을 알게 된다'(歲寒然後知松柏之後凋)는 논어 자한(子罕) 편의 말은 유교적 윤리규범을 중요하게 여기는 우리나라의 선비뿐 아니라 스승과 제자 사이, 남편과 아내 사이에도 중요하게 적용되는 절의와 지조의 상징이다.

추사 김정희(1786~1856)는 제주도에서 귀양살이할 때 '세한도'(국보 180호)라는 불후의 명작을 남겼다. 제주 유배 5년째 종이에 수묵으로 그린 세한도는 몰락한 추사를 외면하는 지인들과는 달리 남의 눈을 개의치 않은 문하 이상적에게 선물로 그려준 것이다.

추사뿐 아니라 조선 후기 서화가 이인상(1710~1760)은 백설을 인 겨울 소나무의 꼿꼿함을 통해 선비의 지조를 표현한 '설송도'를, 이보다 조금 늦은 시기 이재관(1783∼1837)은 한 그루 낙락장송 아래서 바깥세상을 바라보는 처사의 핍진한 모습을 통해 은거지에서 지조를 지키는 선비정신을 '송하처사도'에 담았다.

작품 속 소나무만이 아니라 애국가에 등장하는 '남산 위의 저 소나무…'도 수천 년 동안 겨레의 얼과 정신을 상징해왔다. 소나무와 우리 정서는 떼려야 뗄 수 없는 가치를 지녔기에 도심 가로나 유명 음식점에도 헬리콥터로 낙락장송을 옮겨와서 심을 정도이고, 굽은 소나무가 고향을 지킨다는 말도 있다. 그만큼 북풍한설을 버텨온 소나무는 절개와 충절을 나타낸다.

세계 역사상 전쟁 이후 벌건 민둥산에서 단기간에 산림녹화에 성공한 유일한 사례를 남긴 대한민국 산림 630만㏊의 21%인 134만㏊를 차지하는 소나무가 중병을 앓고 있는지 오래다. 1988년 부산 금정산에서 처음 발견된 소나무재선충병 때문이다. 소나무재선충병은 제주도'경남'울산을 초토화시켰고, 경상북도에서 확산일로를 걷고 있다.

경북도의 경우 2001년 구미에서 소나무재선충병이 발견된 이래 지금까지 80만 본 이상의 고사목이 발생했고, 올해 전국에서 300만 그루 이상이 고사할 것이라는 분석까지 나왔다. 경북도는 12개 시군에서 방제작업을 펴고 있고, 천 년 고도 경주 왕릉 주변과 울진 금강소나무 군락지 보호를 위해 전쟁을 치르고 있다. 다행스럽게 최근 경북 포항에서 소나무재선충 방제에 유인트랩을 써서 어느 정도 효과를 보고 있다. 소나무재선충 박멸의 마지막 전투에서 승리하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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