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데스크 칼럼] 활주로 하나뿐인 국제공항은 'NO'

최근 본사를 방문한 정부의 남부권 신공항 추진 최고 실무책임자와 장시간 대화를 나눌 기회가 있었다. 공항 건설 핵심 관계자들이 대구와 부산의 민심을 탐방하기 위해 찾아온 것이었다.

정부는 아주 답답해했다. 불과 4년 전 '경제성이 없다'며 무산시켰던 것과는 달리 '수요가 있다'는 권위 있는 기관의 조사 결과에 따라 다음 단계인 '사전 타당성 검토 용역'을 하려 하지만 부산과 대구경북을 비롯한 다른 4개 시도의 팽팽한 줄다리기가 계속되고 있어서다. 내 지역에 공항을 건설해야 하겠다는 고집이 변하지 않으니 어떻게 다독거려서 공항을 만들지 묘안이 떠오르지 않는다고 했다.

20억 원의 타당성 검토 용역비를 확보한 정부는 올해 내에 사전 타당성 검토에 들어가야 내년 예비 타당성 검토를 거쳐 공항 건설에 박차를 가할 수 있다. 전문기관의 분석대로라면 10년 이내 김해공항은 포화상태에 이르게 된다. 그전에 공항이 건설돼야 한다. 그러려면 사전 타당성 조사가 급하다. 여기에 대한 전제조건이 영남권 5개 시도의 합의다. 결과에 대한 승복을 명시해놓지 않으면 딴소리가 터져 나올 게 뻔하니 협의를 종용하면서 해당 지역의 여론 동향을 점검하려는 것이다.

정부는 현재 공항은 반드시 만들겠다는 입장이다. 그러니 믿고 따라와 달라고 했다. 지금까지 대구경북은 정부의 요구에 순응했다. 끝까지 가덕도를 전제로 한 신공항 건설에서 물러서지 않는 부산과 달리 대구경북은 남부권에 신공항이 건설돼야 한다는 대명제 앞에 유연한 대처를 했다.

이러다 보니 문제가 생겼다. 정부가 고집을 고수하는 부산의 입장으로 기우는듯한 모습을 보이고 있는 것이다. 그게 활주로 1개만 있는 국제공항론이다. 물론 정부가 이쪽으로 방향을 잡은 것은 아니지만 모든 가능성을 열어두고 사전 타당성 검토를 하겠다고 하는 속내에는 분명 여기에 대한 선호도가 감지된다.

활주로 1개만 있는 국제공항은 부산이 차선책으로 지향하는 바와 같다. 가덕도 신공항이 되지 않는다면 현재의 김해공항을 활용하고 가덕도에 국제선 활주로 1개를 더 만들어 공항건설 경비를 대폭 줄이자는 것이다. 정부는 대신 기존 도시 공항(대구 포항 울산 사천)들은 그대로 운용하면 된다는 생각을 갖고 있다. 부산시 역내에 공항을 건설해야 되겠다는 주장에서 한 발짝도 물러서지 않는 부산을 달래려는 듯한 모습이다.

수도권론자들과 남부권 신공항 반대론자들은 지방에 또 국제공항을 만드는 것이 얼마나 바보 같은 짓인가를 설명하면서 전남 무안'강원 양양 국제공항을 예로 든다. 이용객이 거의 없는 곳에 공항을 만들어 놓으니 텅 빈 청사만 있다는 것이다. 정부가 이런 국제공항을 또 만들겠다고 하고 있다. 예산 낭비가 불을 보듯 뻔한데도 말이다.

인천국제공항은 활주로가 3개나 된다. 당초 출발은 2개로 시작했지만 수요가 폭증하다 보니 제3활주로까지 만들었다. 반면 김해나 제주를 제외한 다른 국제공항들은 활주로가 1개에 불과하다. 길이도 인천공항은 최대 기종이 이착륙할 수 있는 F급인 반면 무안 등은 E급에 불과하다. 그런 공항을 하나 더 만들어놓고 생색을 내겠다는 정부의 발상에 기가 막힌다.

남부권 주민들은 좀 더 빠르고 쉽게 외국 주요 도시들과 교류할 수 있는 관문공항을 원한다. 그러려면 활주로가 최소한 2개는 돼야 한다. 승객 300명 이상 수송이 가능한 대형 여객기 이착륙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당장 인천공항 수준에 도달하지는 못하겠지만 항공 수요가 충분하다는 결론이 난 만큼 공항의 크기는 일정 규모 이상을 갖춰야 하는 것이 상식이다.

정부는 사전 타당성 검토에서 분명히 이 점에 대한 가중치를 부여해야 하며, 지방 국제공항 하나 더 만드는 우를 범하는 시도는 시작도 말아야 한다.

부산은 가덕도만을 고집하지만 우리는 대구에서 1시간 이내 거리면 어디든 상관없다. 부산은 더 잘 살기 위해 부산국제공항을 원하지만 대구경북은 도시가 생존하기 위해 국제공항을 염원한다. 하늘길과 바닷길이 동시에 열려 있는 부산. 가덕도가 되든 밀양이 되든 어디든지 1시간 이내에 공항에 갈 수 있다. 오히려 밀양에 더 가깝게 사는 시민들이 많다. 반면 하늘길'바닷길이 다 막혀 있어 하늘길만이라도 1시간 이내에 갈 수 있도록 해달라는 대구. 어느 쪽 주장이 더 설득력이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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