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치매 극복 황혼 행복] <4>경북도내 예쁜 치매쉼터

노래·게임하는 '치매예방 유치원'…어르신들 얼굴엔 웃음꽃 만발

문경보건소에서 운영중인 \\
문경보건소에서 운영중인 \\'예쁜 치매쉼터\\'
청도·봉화·고령 보건소(사진 위에서) 운영중인 \\
청도·봉화·고령 보건소(사진 위에서) 운영중인 \\'예쁜 치매쉼터\\'
청송보건소 \
청송보건소 \'예쁜 치매쉼터\'
성주보건소 운영 \\
성주보건소 운영 \\'예쁜 치매쉼터\\' 동네 할머니들이 삼삼오오 모여 앉아 전래놀이, 퍼즐맞추기 등을 하며 즐거운 시간을 보내고 있다.

◇문경 상리1리 마을회관…"경증치매 할머니 6개월 만에 정상"

문경시 문경읍 상리1리 마을회관에 마련된 '예쁜 치매쉼터' 곳곳은 할머니들의 미술작품들로 가득했다. '치매쉼터'가 아니라 유치원에 찾아온 듯한 느낌이었다.

경로당 고참인 이명자(89) 할머니는 한때 경증치매 환자였다고 믿기 어려울 만큼 명랑하고 밝은 모습이었다. 60대 아들 부부와 함께 사는 이 할머니는 언제부터인가 방금 했던 얘기를 자꾸 반복했다. 주위 사람들은 쉬쉬 하면서 치매가 왔다며 걱정했다.

지난 2월 문경보건소 치매선별검사에서 경증치매증상을 확인했다. 이후 보건소는 가족 상담을 통해 인근 병원에서 꾸준히 치료받도록 했고, '예쁜 치매쉼터' 참여를 권유했다.

김혜숙 문경시보건소 치매담당은 "처음 주변 사람들은 '병원도 아니고 경로당에서 무슨 치매 치료를 하느냐'며 회의적이었는데, '예쁜 치매쉼터'를 6개월간 한 차례도 거르지 않고 참여한 결과 올초 보였던 이상 증상은 거의 사라졌다"고 했다.

이 할머니는 이날 잡지를 오려붙이는 놀이를 하면서 유난히 진주목걸이, 명품 핸드백, 화려한 옷들을 많이 오렸다. "어렸을 때 워낙 가난해서 고생만 했는데 이렇게라도 한 번 가져보고 싶어서 그랬다." 이를 본 보건소 직원들은 짠한 마음에 눈시울을 붉히기도 했다. 박애주 문경보건소 건강담당은 "할머니가 과거를 떠올릴 정도로 인지능력이 향상됐다"고 했다. 문경 고도현 기자 dory@msnet.co.kr

◇봉화군보건소 치매쉼터 9곳 운영…"퍼즐 맞추며 치료…수업날만 기다려요"

봉화군보건소 통합보건교육실. 우양구 보건소장과 직원들은 할머니 10여 명과 함께 칠교놀이(일곱조각으로 퍼즐 맞추기) 프로그램을 진행하느라 여념이 없었다.

"넓은 면이 어디로 가 있어요? 색깔을 보지 말고 모양을 맞추세요. 큰 삼각형 2개를 밑에 두고 작은 삼각형을 그 위에 올리세요." 신정희 봉화군 보건소 치매사례 관리사가 퍼즐 맞추기 순서와 방법을 자세히 설명하며 할머니들의 퍼즐 맞추기에 힘을 보탰다.

할머니들은 연신 "잘 안돼. 왜 이리 어려워!"라고 어려움을 호소했고 직원들은 곧바로 달려가 할머니들의 손을 잡고 그림표에 있는 순서대로 퍼즐을 맞춰나갔다.

류춘예(78) 할머니는 "퍼즐 맞추기는 힘들지만 에코백(가방) 만들기는 재미있다"며 "근데 학생이 학교 오는데 가방을 잊어버리고 안 가지고 왔다"며 깔깔 웃었다.

김순호(81) 할머니는 "수업시간이 매번 기다려진다"며 "선생님들이 좋고 친구들 만나는게 좋아서 매주 수업하러 오는 날만 손꼽아 기다린다"며 환하게 웃었다.

봉화군보건소가 지난 3월부터 치매 노인들을 보호하고 중증환자로 넘어가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 보건소'보건지소'보건진료소 등 9곳에서 운영하는 '예쁜 치매쉼터'의 풍경이다.

김순자 봉화군보건소 방문보건담당은 "신명나는 프로그램을 개발하고, 할아버지 참여를 이끄는 것이 어렵지만 어른신들의 고맙다는 말에 희망을 얻고 있다"고 했다.

봉화 마경대 기자 kdma@msnet.co.kr

◇청송군 진보면 '싱싱생생 두뇌학교'…"미로찾기·액자만들기 놀이로 자신감 향상"

"마음만큼 손이 안 따라가네. 미로찾기가 오늘 따라 더 복잡하네." 청송군 진보면 예쁜 치매쉼터인 '싱싱생생 두뇌학교'에 참여한 서옥자(83) 할머니가 '미로찾기'에 푹 빠져있다. 연필 쥐는 힘이 약해 선도 희미하고, 연필도 자주 떨어뜨렸다. 대개 1분도 채 안 걸리는 미로찾기지만 이곳 어르신들은 4, 5분은 족히 걸린다. 서 할머니는 "예전 같으면 한두 번 하다가 포기했는데 여기 수업을 계속 듣다가 보니 끈기도 생기고, 새삼 보람도 느낀다"고 했다.

나뭇조각과 씨앗 등을 이용해 나무액자도 만들었다. 재료가 대부분 성냥개비만큼 작아 손힘이 적은 할머니들은 꽤나 힘들어했다. 하지만 조용교(78) 할머니는 유난히 빠르게 액자를 완성해나가고 있었다. 둥근 나뭇조각 위로 작은 나뭇조각을 붙여 얼굴을 만들어갔다. 조 할머니는 "곱슬곱슬한 파마 머리를 만들고 있다. 빨간색을 좋아해서 단풍잎도 붙였다"고 했다.

지도 강사는 "조 할머니는 올초만 해도 손힘이 없어서 손바닥으로 연필을 감싸쥐어야 했다. 쉼터에 나온 뒤 자신감과 손힘이 생기고 열정도 대단해졌다"고 전했다.

이춘옥 청송군보건의료원 진보보건지소 간호담당은 "전반기 예쁜 치매쉼터에 참여한 할머니들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인지력과 기억력 등이 월등하게 향상됐다. 할머니들은 공부라기보다 놀이로 생각해 더 흥미를 얻는 것 같다"고 했다.

청송 전종훈 기자 cjh49@msnet.co.kr

◇청도 합천2리 '싱싱생생 두뇌학교'…"집 오가며 '열린 경로당' 치료 큰 효과

청도 화양읍 합천리 김수강(86) 할머니 집에는 그림 부채와 수를 놓은 지갑 등 20여 점의 작품이 집안 곳곳을 장식하고 있다. 모두 치매예방쉼터에서 만든 작품들.

딸 김봉주(55) 씨는 "엄마는 손재주가 있고 음식 잘 만든다고 소문이 자자했다. 무엇이든 야무지게 일하시던 모습이 기억난다"며 "약간 기억의 혼동이 있는 정도인 엄마가 치매예방 프로그램에 참여한 뒤 우울증 증세가 호전돼 자식들이 한시름 덜고 있다"고 했다.

김 할머니는 "일주일에 두 번씩 찾아주는 강사가 고생"이라며 "새로운 내용을 공부하고 몸을 마음껏 움직이게 해주니 수고가 얼마나 많겠느냐"며 고마워했다.

화양읍 합천2리 경로당에서 열린 '싱싱생생 두뇌학교 치매예방 쉼터'에선 할머니들의 승부욕(?)이 발동했다. 고무공과 탁구공으로 편을 갈라 옮기는 경기를 하며 할머니들은 시간 가는 줄도 모른 채 왁자지껄한 고함과 한바탕 웃음소리로 즐거운 한때를 가졌다.

김계화(81) 할머니와 유금조(86) 할머니는 "처음 공부 시작할 때만 해도 전부 못한다고 손사래를 치더니 지금은 모두 잘한다"며 친구들을 치켜세웠다. 청도보건소 은영희 씨는 "할머니들이 요양원처럼 닫힌 공간보다 집을 오가며 새로운 것을 배우는 프로그램을 좋아안다"고 했다.

청도 노진규 기자 jgroh@msnet.co.kr

◇성주 성산3리 경로당…"직접 만든 작품 전시…치매 진행도 늦춰"

"하하하! 순이 할매는 뽀글뽀글 파마까지 정말 잘 그렸네." 성주읍 성산3리 경로당에 마련된 성주군의 '우리마을 예쁜 치매쉼터'에 모인 어르신 10여 명이 거울을 보며 자기 얼굴 그리기에 한창이다. 서로 잘 그렸다고 자랑하면서 박장대소를 하더니 몸풀기 체조를 한다. 치매예방을 위해 이곳을 찾은 경우도 있고, 최근 경증치매 판정을 받은 어르신도 4명 있다.

이순득(90'성주읍) 할머니는 얼마 전 집에서 작은 작품 전시회를 열었다. 아들 류성윤(63) 씨는 "어머니가 치매쉼터에서 만든 작품들을 모아두었다. 평소 말수가 적어 어려움이 많았는데, 치매쉼터 이용 후부터 부쩍 말씀도 많아졌고, 손자들과 숙제도 함께한다"고 했다.

이 할머니는 지난 3월 치매쉼터 검사에서 경증치매 진단을 받았다. 치매진행을 늦추는 약을 먹고, 상반기에 치매쉼터를 이용하면서 몰라볼 만큼 호전됐다. 쉼터에 가는 매주 월'수요일만 기다린다. 숙제도 꼼꼼히 챙기고, 옷매무새도 유난히 단정하게 한다. 이 할머니는 "뒤늦게 공부도 시작하면서 비록 늦은 나이지만 새로운 세상을 만난 기분"이라며 즐거워했다.

성주군보건소는 상반기 치매쉼터 5곳을 운영했고, 하반기엔 9곳의 치매쉼터를 운영한다. 염석헌 성주보건소장은 "치매쉼터를 이용한 어르신들의 일상생활 능력, 삶의 질, 치매중증도 평가 등에서 상당히 개선됐다는 결과가 나왔다. 프로그램을 확대하겠다"고 했다. 성주 전병용 기자 yong126@msnet.co.kr

◇고령군보건소 '내 나이가 어때서'…"언니·동생 어울리며 사라진 기억 되찾아"

"예전엔 기억력이 깜박거리는 백열등이었는데, 치매쉼터에 온 뒤부터 LED등으로 바뀌어서 또렷또렷합니다." 윤증갑(80) 할머니는 고령군보건소가 마을회관에서 매주 목요일 운영하는 치매쉼터 '내 나이가 어때서'에 나간 뒤부터 제2의 삶을 살고 있다고 자랑했다.

윤 할머니는 매주 목요일만 기다린다. 쉼터에 가면 언니, 동생, 친구들이 항상 즐겁게 노래하고, 춤추고, 게임도 하고, 유치원에 다니는 손자처럼 그림그리기도 한다. 윤 할머니는 고령보건소에서 지난 2월 실시한 치매선별검사에서 정상으로 나왔지만 깜박거리는 기억력은 세월 앞에 어쩔 수 없었다. 그러나 쉼터를 이용한 뒤부터 정신이 아주 또렷해졌다고 한다.

"게임할 때는 할매들이 어디서 힘이 솟는지 서로 이기려고 아주 열심히 합니다. 치매쉼터를 이용하면서 우울증도 사라졌고, 지루했던 하루가 활기가 넘칩니다."

고령군보건소는 '내 나이가 어때서', '큰 구름 그루터기', '돌아온 내 청춘', '백세청춘' 등 치매쉼터를 운영한다. 정준홍 고령보건소장은 "쉼터마다 방문간호사들이 배치돼 어르신들의 건강 증진과 건강한 삶을 도와주고 있지만 치매를 전문적으로 예방'치료하는 작업치료사를 구하기가 어렵다"며 "내년부터는 올해 시행하지 못한 덕곡'개진면까지 확대할 예정"이라고 했다.

고령 전병용 기자 yong126@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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