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스-로마 시대 때는 말을 잘하는 것이 최고의 덕목으로 손꼽히기도 했지만, 말은 적게 할수록 낫다는 것은 동서고금이 비슷하다. 또한, '아 다르고 어 다르다' '말 한마디로 천냥 빚을 갚는다'는 말이 있듯, 같은 값이면 좋은 말을 하는 것이 낫다는 것도 대개 옳다. 그러나 강렬한 뜻을 담은 직설적인 말이 효과적일 때도 잦다.
'통석(痛惜)의 염(念)'이라는 말이 유행한 적이 있다. 1990년 5월 일본을 방문한 노태우 전 대통령 환영 만찬에서 아키히토 일왕(日王)이 과거사 문제를 언급하며 한 말이다. 사죄를 기대했던 우리로서는 사전에도 없는 '통석'에 헷갈렸다. 외교적 성과가 필요했던 정부는 당연히 '뼛속 깊이 뉘우친다'는 사죄의 뜻으로 해석했다.
그러나 한자인 '통석'에는 여러 가지 뜻이 있다. 가장 가까운 것은 '애석하고 안타깝다'는 것으로 사죄와는 거리가 있다. 더욱이 '내 것을 잃어 버린 것에 대해 애통하다'는 뜻도 있다. 이 때문에 일본 정부가 일본인도 잘 쓰지 않는 낱말로 비아냥거렸다는 비판도 있었다.
박근혜 대통령이 UN 총회 기조연설에서 우리나라 대통령으로는 처음으로 '위안부 문제'를 공식 거론했다는 보도가 있었다. 그러나 이는 정부와 일부 언론의 자의적 해석일 뿐, 연설문 어느 곳에서도 '위안부'라는 낱말은 없었다. 8분이 넘는 연설 가운데 "대한민국은 분쟁지역에서 고난을 겪는 여성과 아동들의 인도주의적 피해를 방지하는 데도 큰 관심을 기울이고 있다. 전시 여성에 대한 성폭력은 어느 시대, 어떤 지역을 막론하고 분명히 인권과 인도주의에 반하는 행위"라고 언급한 것이 전부다. UN 총회장이라는 상징성과 외교적 관례, 또는 대일 관계개선 문제 등을 감안하더라도 이를 두고 일본에 위안부 문제 해결을 압박했다고 평가하기는 무리다.
이런 해석은 총회장에 있었던 각국 대표는 물론, 이 연설을 접한 세계인들이 모두 한국과 일본의 역사적 관계와 전시여성에 대한 성폭력이 구체적으로 무엇을 의미하는지를 잘 알고 있을 때만 유효하다. 우리끼리의 해석은 아무 의미가 없다는 뜻이다. 차라리 위안부(Comfort Woman)가 아닌 성노예(Sexual Slave)라는 직설적인 낱말로 표현했으면 어땠을까 싶다. 최소한 독도와 과거사와 관련한 것은 모든 것을 뒤엎는 일본에는 확실히 효과적이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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