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화 시대에 반기고 환영해야 마땅한 일이지만, 경상북도와 실크로드의 '수상한 염문'은 그냥 넘어갈 수는 없는 일이다. 그들은 이상한 종교를 믿고 테러를 저지르고 여성학대도 예사로 한다는 소문이 난무하는데, 뼈대 있는 우리 경상도가 상대방 집안의 내력이라도 제대로 알아야 하지 않겠는가? 사실 실크로드의 끄트머리에는 아랍과 페르시아가 연결되어 있지만, 우리에게는 그저 아득한 저 너머의 공간이었을 뿐이다. 그곳은 우리의 역사 속에서도 '서천서역국'(西天西域國) 정도로 알려진 게 전부이고, 이승이 아닌 저승의 대명사이기도 했다.
사산조 페르시아(A.D. 226~651)만해도 그렇다. 상상의 공간에 지나지 않았던 그들은 신라와 이미 1천500년 전부터 염문이 있었다. 최근에 발견된 페르시아의 서사시 '쿠쉬나메'가 그것인데, 학계의 큰 주목을 받고 있다. 당시 내란을 피해 중국으로 도망을 온 한 무리의 페르시아인들이 있었다. 그러나 그들은 그곳에서도 환영을 받지 못하고 신라로 발길을 돌렸다. 그리고 그들의 지도자 아바틴은 신라의 공주 프라랑과 혼인을 하게 된다. 그들이 낳은 아들 파리둔은 용감하게 자라 아버지의 나라로 돌아가 역적들을 제압하고 왕위에 오르며, 어머니의 나라 신라와도 대를 이어 우호관계를 지속했다는 내용이다. 실크로드와 한반도는 오랫동안 비밀스레 이런저런 내통을 했다는 증거다.
흑해 연안에 자리 잡고 있는 그루지아에 스키타이계 언어를 사용하는 오세트족이 들려주는 이야기도 있다. 바다 신의 세 딸이 비둘기로 변신하여 사과를 쪼아 먹으러 나왔다가 변을 당했다. 그 중 한마리가 에후세르테구가 쏜 화살에 맞아 상처를 입고 바다에 빠진 것이다. 물속으로 따라 들어간 그는 비둘기 대신 예쁜 여인을 건져내 상처를 치료해주고 혼인을 했다. 그리고 우류즈메구와 해뮤쓰라는 쌍둥이 형제를 유복자로 남기고 먼 길을 떠났다.
아비 없이 자란 이 쌍둥이는 물 길러 나온 한 여인의 물동이를 화살로 쏘아 깨트리고, 그녀로부터 약한 자를 괴롭히는 게 부끄럽지도 않으냐는 질책을 받는다. 그제야 자신들이 누군지를 알기 위해 조상을 찾아 길을 떠난다는 내용이다. 프랑스의 신화학자 뒤메질이 채록한 영웅 서사시 '나르트'(Narthes)의 내용으로, 해모수와 유화, 그리고 주몽과 유리의 이야기에 다름 아니다.
고구려의 건국왕 주몽은 어릴 때부터 날아다니는 파리도 잡을 수 있을 만큼 '활을 잘 쏘는 사람'이었다. 그런데 우즈베키스탄과 카라칼팍, 카작 등 알타이 주변 부족들과 타직, 타타르 등의 민족들에게도 '활을 잘 쏘는 사람'이라는 뜻의 '알퍼므쉬'라는 이름을 가진 영웅이 있었다. 일곱 살의 어린 나이에 할아버지가 남겨준 엄청난 무게의 활을 들고 쏘아 아스카르산 꼭대기를 맞힐 정도였다. 민족 통일을 이룬 그의 이야기는 오늘날까지도 중앙아시아 일대에 걸쳐 음유시인인 '바흐쉬'들에 의해 서사시로 구전되고 있다.
그런가 하면, 중앙아시아 일대의 사람들은 굴렁쇠 굴리기, 공기놀이, 제기차기, 연날리기, 씨름, 그네타기, 줄넘기, 주사위 던지기 등 다양한 놀이를 우리의 조상들과 함께 즐겼다는 혐의도 있다. 중국 동북 3성 대흥안령에서 흑룡강을 따라 러시아 투바공화국을 비롯해 카스피해 연안 중앙아시아국가들에서도 한결같이 비슷한 놀이문화들이 발견되기 때문이다. 실크로드 문명의 그림자가 한반도에 이처럼 짙게 드리워져 있다는 사실에 우리는 전율하지 않을 수 없다.
이쯤 되면 한반도와 실크로드의 수상한 염문이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라는 사실을 짐작하고 남음이 있다. 어긋난 것을 바로 맞추고 잊어버렸던 것을 기억해내는 일은 쉽지 않으나 고귀한 일이다. 파헤칠수록 뚜렷해지는 문명의 흔적을 추적하는 일은 묘한 매력이 있어 인문학자들을 흥분시킨다. 용감한 자만이 미녀를 얻을 수 있다고 하지 않았던가? 경제교류가 시급하다며 당장 팔아먹을 물건부터 챙기는 성급함 대신, 한 지방자치단체가 문화교류를 앞세워 국가의 정책사업인 유라시아 프로젝트에 용감하게도 선봉장으로 나섰다. 경상북도가 실크로드와 함께 피워내는 수상한 염문은 이제 또 한 편의 멋진 '쿠쉬나메'를 엮어 낼지도 모를 일이다.
김중순/계명대 교수·한국문화정보학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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