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내 인생의 멘토] <12>김영만 군위군수-선친 김휘상 씨

"가난하다고 무시 말고, 부자라고 칭송 말라" 가르침 못 잊어

김영만 군위군수는 평소 바쁜 군정 업무 속에서도, 수시로 선친의 영정 사진을 보며 생전 선친의 가르침을 가슴 속에 아로새긴다. 김 군수는 매일 선친의 가르침을 실천해나가고 있다고 했다.
김영만 군위군수는 평소 바쁜 군정 업무 속에서도, 수시로 선친의 영정 사진을 보며 생전 선친의 가르침을 가슴 속에 아로새긴다. 김 군수는 매일 선친의 가르침을 실천해나가고 있다고 했다.

김영만 군위군수는 지난 6'4 지방선거에서 도내에서는 유일하게 무소속으로 출마, 당선된 입지전적인 인물이다. 3번 도전 끝에 당선을 거머쥐었다. '오뚝이 인생'이라는 애칭도 듣고 있다. 한편으론 그만큼 뚝심도 있다는 얘기다.

새누리당 공천은 곧 당선이라는 공식이 성립돼 있는 경북에서, 더군다나 현직 군수라는 프리미엄까지 안고 있는 막강한 상대 후보에게 압승을 거두게 된 것은 뭐니 뭐니 해도 선친 김휘상(1999년 교통사고로 작고) 씨로부터 가업(상업)을 물려받는 과정에서 받은 혹독한 훈련 덕분이었다. 이때 쌓은 '내공'이 군수 당선의 밑거름이 됐다는 게 김 군수는 물론 주변 사람들의 평가다.

밑바닥 표심을 냉철하게 읽어낼 줄 아는 탁월한 감각과 '불가능은 없다'는 평소의 좌우명을 내건 채 끝까지 군위군민을 믿고 지역을 지켜온 우직함도 김 군수의 장점이다. 김 군수가 주변의 수많은 멘토 중에서도 선친을 최고의 멘토로 꼽는 가장 큰 이유다.

◆부유했던 어린 시절

김 군수는 비교적 부유한 집안에서 태어났다. 선친이 군위읍에서 대한통운 대리점과 건재상을 했었기에 군위에서는 손꼽히는 부자였다. 이 때문에 김 군수는 초등학교 때부터 고등학교까지를 줄곧 대구에서 다녔다.

고등학교 시절에는 대학보다 운동이나 사관학교 진학을 준비했다. 그러나 선천성 심장질환으로 모든 것을 포기할 수밖에 없었다.

결국 고등학교를 졸업하자마자 곧바로 선친의 일을 돕기 위해 군위로 돌아와야 했다. 김 군수의 인생이 달라지는 순간이었다. 김 군수는 이후 단 한 번도 군위를 떠나본 적이 없다.

어느 날 선친은 "대형 화물차를 대구에 가서 팔아오라"고 했다. 영문을 모르는 김 군수는 대구에 가서 대형 화물차를 팔고 이틀 후 군위로 돌아왔다. 자동차를 팔고 난 뒤 돈을 한 푼도 쓰지 않은 것은 물론이다.

나중에 누나들로부터 들은 이야기지만, 이때 선친은 김 군수를 테스트해본 것이었다고. 대구에 가서 대형 화물차를 판 돈으로 마음껏 쓰면서 몇 달은 돌아오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했는데 김 군수가 돈을 한 푼도 쓰지 않고 집으로 돌아오자 선친은 이때부터 김 군수를 신임하기 시작했다.

김 군수는 "이 일 이후부터 선친은 모든 일들을 처리하는 과정에서 절대 간섭하지 않고 묵묵히 지켜보기만 했고, 본격적인 가업 승계 교육을 받았다"고 했다.

◆선친의 가르침

김 군수는 '어른을 찾아 뵐 때는 빈손으로 가지 마라'고 했던 선친의 '어른 공경' 가르침을 지금도 그대로 실천하고 있다. 또 선친은 "절대 외상값 때문에 싸우거나 얼굴을 붉히는 일 없이 웃는 얼굴로 대하라"고 가르쳤다. 자칫 외상값 시비로 인해 송사 등이 발생할 수 있고, 장사꾼이라는 속된 말을 들을 수 있다는 점을 경계했던 것이다.

김 군수는 "실제로 송사가 시작되면 경제적 시간적으로 엄청난 낭비가 뒤따르고, 인생을 살아가면서 이웃들을 원수로 만들 수 있기 때문에 선친이 이를 우려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선친은 또 평소 '3대 가난뱅이 없고, 3대 부자 없다' '가난하고 어렵게 살아가는 이웃들의 인격을 무시하지 말고, 부자라고 무조건 칭송하지 마라'고 가르쳤다.

김 군수는 "아버지께서는 지금은 가난하지만, 후손들이 잘살 수 있고, 지금은 부자이지만 후손들이 가난뱅이가 될 수 있다는 것을 가르치신 것"이라며 지금도 선친의 '상대방의 인격을 존중하라'는 말씀을 가슴속 깊이 새기고 실천하고 있다.

김 군수의 선친은 1999년 3월 교통사고로 숨졌다. 김 군수는 "당시 교통사고로 선친이 돌아가셨을 때 가해 운전자의 가정형편이 너무 어렵다는 소식을 접하고, 생전 선친의 유지를 받들어 일체의 보상 없이 운전자를 용서해줬다"고 했다.

◆선친의 유지를 새기고 있다

김 군수는 "4년 동안 군민들을 받들고 모신다는 생각으로 군정을 펼칠 각오"라고 했다. 그는 출향인들에게 "군위에 계신 어르신들은 군수가 모신다고 말씀드리고 싶다"며 "어르신들 걱정 말고 군위 발전을 위해 많은 투자와 성원을 부탁한다"고 했다.

"군위의 모든 공직자는 지역 발전과 군민 행복을 위해 열심히 일하고 있습니다. 공직자들은 창의'창조적인 마인드로 군민들에게 질 높은 행정서비스를 제공할 수 있도록 다각적인 정책을 추진하고 있습니다."

그는 군위의 앞산이나 다름없는 팔공산을 복합관광지로 개발할 복안을 밝혔다. 팔공산 정상까지 자동차길은 이미 확보했으며 팔공산 정상을 개발해 원효대사가 참선했던 오도암을 구도의 길로 만들고 산악자전거길, 힐링코스, 조각공원을 조성하겠다는 것이다. 또 부계 창평리 일대에는 동양 최대의 식물원 등을 조성, 주변 제2석굴암 온천과 연계한 개발을 통해 도시민들에게 볼거리와 휴식거리를 제공할 계획을 세웠다고 김 군수는 말했다.

김 군수는 "중앙선 복선전철화 사업, 구미~군위 4차로 도로, 팔공산 터널, 상주~영천고속도로 사업 등이 2, 3년 내 모두 마무리되면 군위는 사통팔달의 도로망을 갖추게 된다"며 "팔공산, 아미산 등의 아름다운 산과 계곡이 만들어내는 시원한 풍경과 함께 다양한 지역의 관광자원을 활용해 맞춤형 문화'관광벨트를 적극 조성하겠다"고 했다.

이 밖에도 조만간 착공할 예정인 군위군의 최대 국책사업인 삼국유사 가온누리사업을 성공적으로 추진해 다양한 콘텐츠와 문화산업을 접목한 테마공원을 만들어낼 방침이다. 이 테마공원은 한국 문화 5천 년을 담는 그릇으로서의 삼국유사 문화콘텐츠를 세계화하고 한류 문화를 주도하는 삼국유사가 될 수 있도록 하는 역할을 할 것으로 보인다. 전국 학생들의 수학여행 코스는 물론 전국 최대의 역사공원이 될 것이라는 게 김 군수의 설명이다.

김수환 추기경 생가 일대 성역화도 빼놓은 수 없는 대목이다. 김 추기경의 숭고한 사랑과 나눔, 봉사 정신을 계승'확산시킬 수 있는 교육의 장으로 추기경 생가를 변모시켜 나갈 계획을 김 군수는 세우고 있다.

"이런 과정이 끝나면 이제 군위가 확 달라집니다. 얼마 남지 않았습니다. 기대하셔도 됩니다. 저는 군위의 변화를 확신합니다." 김 군수는 관광 군위의 획기적인 발판이 마련됐다고 했다.

군위 이희대 기자 hdlee@msnet.co.kr

최신 기사

많이 본 뉴스

일간
주간
월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