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무명칼럼] 승부수 던진 대구의 대타협

골든 타임을 살려 수술은 잘됐다는데, 제대로 의식을 차렸다는 소식은 들려주지 않는 삼성그룹 이건희 회장은 현 위치에 대한 정확한 파악이 경쟁력의 출발이라고 강조했다. 이 회장은 '생각 좀 하며 세상을 보자'는 에세이집에서 누구나 자신의 강'약점을 객관적으로 아는 것만으로도 변화에 필요한 자극을 얻을 수 있다고 했다. 일상을 변화시키는 것만이 밝은 미래를 보장한다고 본 이 회장은 기업 경영에서 '변화 3계명(誡命)'을 잊지 않고 적용했다.

변화의 첫째 계명은 나부터 시작한다는 것이다. "나는 준비됐으니 너부터 변해라"는 방관자적 자세나, "나는 열심히 뛰는데 너는 편히 쉬느냐"는 남탓놀이, "나는 걷는데, 너만 왜 뛰어가냐"고 뒷다리 잡기는 변화의 걸림돌이다. 변화의 둘째 계명은 같은 방향을 보라는 것이다. 머리로는 변해야 한다고 믿지만, 습관적으로 변화가 몰고 올 불편'불이익이 마땅찮아 겉으로는 찬성, 속으로는 반대하는 이중 태도를 취하거나 '총론 찬성, 각론 반대'의 일관성없는 저항은 금물이다. 이때 변화의 방향타를 꽉 잡고, 속도를 조절하는 것은 변화의 관제탑이라고 할 수 있는 지도자의 역할이다. 마지막 변화 계명은 간단하고 쉬운 변화부터 차곡차곡 쌓아 올라가야 한다는 것이다. 아무리 실력 있는 등산가라도 팔공산 인수봉 북한산을 두루 오른 뒤, 자신감이 붙어야 에베레스트 정복에 오른다는 것이다. 결국 한꺼번에 모든 변화를 이루려고 기대하지 말고, 변화의 좋은 기운을 느끼고 변할 수 있다는 자신감을 확인하는 것이 관건이라는 것이다. 그러나 이 회장은 프랑크푸르트 선언처럼 마누리와 자식 빼고는 다 바꾸라는 180도 돌아서기 변화를 요구하기도 했다.

대구가 큰 변화를 시도하고 있다. 전 세계 70억 인구의 약 70%가 모여 사는 도시, 250만 시민이 함께 사는 대구의 미래를 쉽게 예측할 수는 없다. 변화를 통해 대구의 미래를 만들어가야 하는 것이다. 대구는 언제부턴가 GRDP 꼴찌라는 낙인이 찍혀 있다. 노벨상 수상자 밀턴 프리드먼은 "많은 시민이 앞으로 나아가고 있다는 느낌을 한번 상실하면 사회가 경직과 불관용으로 후퇴하는 것을 막을 수 없다"고 했다.

일리가 없는 말은 아니지만, 대구는 과감하게 그를 떨치고 일어서고 있다. '혁신에 목숨 걸겠다'는 말 한마디로 대구광역시장을 거머쥐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닌 50대 초반의 권영진 대구시장은 대구시민들이 절대 보수가 아니라고 했다. 실제로 대구 테크노폴리스에 국가산단을 조성하면서 그 일대에 땅이 수용된 지주들은 두 부류다. 한 부류는 1차에 보상받았고, 다른 부류는 아직 보상받지 못했다. 주변 땅값은 다락같이 오르는데 열불이 난 미보상 지주들이 국가산단 지정 철회를 요구할 정도로 성질이 났다. 그러나 신임 대구시장이 찾아가서 머리를 조아리고, "이 국가산단 조성에 성공하지 못하면 대구는 영원히 용지 확보가 어렵다. 죄송하지만 조금만 더 기다려달라"고 호소하자 삿대질을 그치고, 받아들였다. 선공후사의 대구정신을 발휘한 것이다.

그런 대구가 무파업도시를 선포했다. 노(勞)'사(使)'정(政)이 손을 맞잡고, 무분규를 선언한 대구의 대타협에 전국이 놀라고 있다. 안정적 기업 운영의 이니시어티브를 던지며, 대구가 기업 유치와 청년 일자리 창출에 한마음이 됐다. 노사정 평화 대타협 선포라는 변화의 승부수가 대구에 얼마나 상승기류를 몰고 올까? 전국 어디로든 2시간 이내 다 도달할 수 있는 사통팔달 교통 요충지 대구가 파업 무풍지대를 선포했으니 대구로 와달라는 표현에 기업들은 내심 환영하고 있다.

노사분규의 씨를 말려, 기업인 누구나 안심하고 투자할 수 있는 여건을 다 함께 만들어가겠노라는 250만 대구시민의 약속을 5천만 국민이 지켜보고 있다. 힘든 길이라도 그 길을 반드시 걸어가서 대구는 새 역사를 써야 한다. 그러나 전제조건이 있다. 언젠가 대구경북연구원이 시민을 대상으로 '대구 발전 제약요인'에 대한 의식조사를 해보니 정치'행정적 요인 23.2%, 지도층 리더십 부족 16.7% 등 약 40%가 지도층 잘못이라는 견해를 보였다. 시민이 변하는데 공무원이 뒷다리 잡는 일, 절대 용납할 수 없다. 대구시 공무원들이 변화에 동참해야 한다. 수백억짜리 프로젝트 이우환과 그 친구들 미술관을 추진하면서 계약서 하나 제대로 갖지 못하는 대구시, 육상센터를 건립하면서 국제 규격에 맞지 않게 짓는 일 등이 되풀이되어서는 안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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