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표준화·첨단화·상품화‥'과학' 옷 입고 세계로 '인술'

한국한방산업진흥원은 한의약을 활용해 신물질을 개발, 보급하고 있다. 한국한방산업진흥원 제공
한국한방산업진흥원은 한의약을 활용해 신물질을 개발, 보급하고 있다. 한국한방산업진흥원 제공

한의학에서 가장 중요한 개념은 '조화'다. 인간은 우주와 자연의 일부이며 인체는 오장육부가 상호작용하며 생명을 유지한다. 사람마다 기질과 체질이 다르기에 같은 증상에 다른 처방을 내리기도 한다. 자연과학에 기반을 둔 서양의학은 가시적인 원인과 결과를 연구하지만, 한의학은 보이지 않는 기능적인 현상을 중시한다. 한의학이 표준화, 계량화되지 않은 이유다.

그러나 최근 들어 한의학에 대한 인식도 변화하고 있다. 다양한 한방 처방을 현대과학으로 재해석하거나 양방에서 사용하는 다양한 첨단장비를 도입하는 사례가 확산되고 있는 것이다. 한약재의 성분을 분석해 효능을 입증하고 각종 진단 장비를 통해 환자의 상태를 확인함으로써 경쟁력을 높이고 있다. 이는 한방의료가 낯선 외국인들도 거부감없이 한의학을 받아들이게 하는 효과를 거두고 있다.

◆현대화'표준화되는 한의약

보건복지부와 대구시, 경상북도가 공동으로 설립한 한국한방산업진흥원은 한의약의 현대화와 산업화를 이끌고 있다. 세계 최초로 국화과 한약재인 '선복화'를 이용해 천식치료제를 개발, 유한양행에 기술을 이전했고, 우방자(우엉 추출물)를 이용한 주름개선 및 피부노화 억제, 피부 재생 효과를 가진 기능성 한방화장품을 ㈜코리아나 화장품과 공동 개발해 시판하고 있다.

최근 가장 중점적으로 추진하는 사업은 '천연물 물질은행 구축사업'과 '한약제제 제형 현대화사업' '한방 바이오소재은행 구축 사업' 등이다. 천연물 물질은행 구축사업은 유용한 천연 단일 성분들을 한약재로부터 대량 분리, 정제해 천연물질 신약 및 제품 개발에 활용할 수 있도록 기업, 대학 및 연구기관에 보급하는 사업이다. 총사업비 64억원이 투입됐으며 지난해 250개 천연물의 분리 및 정제에 성공했다. 올 연말까지 800여 개 물질을 확보하는 게 목표다. 정제 천연물질은 한의약 제품개발을 활성화하고 개발 기간을 단축시키는 효과가 있다. 또한 표준화된 한의약 제품 개발이 가능해 해외시장 진출에도 큰 도움이 된다.

한약제제 제형 현대화사업은 기존의 한약 탕제를 복용과 보관, 휴대가 편리한 알약이나 과립제 등 현대적인 의약품 형태로 만드는 사업이다. 오는 2016년까지 80억원을 투입해 약효의 변화없이 약제의 형태를 바꾸는데 초점을 맞추고 있다. 한방 탕약을 알약으로 만들 경우 한약제제 시장의 활성화와 고품질화 및 선진화가 가능하고 일정한 품질의 한약제제를 공급할 수 있게 된다.

또한 오는 2018년까지 50억원을 투입해 한방 바이오소재은행을 구축하는 사업도 추진 중이다. 한약재의 성분을 추출한 뒤 효소 등 생물을 활용해 지금까지 존재하지 않았던 새로운 물질을 개발하는 방식이다. 이렇게 개발된 새로운 활성물질은 암이나 대사성 질환 치료제 등 천연물 의약산업과 노화억제, 면역강화, 성인병 예방 등의 효능을 갖춘 기능성 식품, 기능성 화장품, 친환경 농약 등을 개발하는 데 사용된다.

한국한방산업진흥원 홍종흠 홍보협력팀 연구위원은 "한의약이 세계화되려면 과학적으로 효능을 입증하고 표준화가 되어야 한다"면서 "현대과학으로 한의약을 재해석해 기술화하고 약효와 함유량 등에 대해 표준화해야 산업화, 세계화가 가능하다"고 말했다.

◆첨단 진단 장비로 한의학 신뢰도 높여

최근 척추나 관절질환을 다루는 한의원을 중심으로 전통적인 한의원에서 보기 힘들었던 첨단 진단장비가 확산되고 있다. 진맥이나 문진, 눈으로 보는 망진 등에 의존하지 않고 정확한 원인을 찾아 적합한 치료를 하기 위해서다. 대구 수성구 경희예한의원의 경우 위장음을 주파수로 수치화해 위장의 근육운동과 신경조절을 진단하는 검사를 하고 있다. 이는 위장 근육이 정상적으로 작동하는지 판단해 근육에 노폐물인 담적이 쌓였는지를 확인하기 위해서다. 이 같은 진단은 역류성식도염 등 내시경으로 잘 나타나지 않는 소화기 질환의 원인을 파악하는 데 도움이 된다. 관절 인대와 척추질환을 다루는 대구 수성구 프롤로한의원의 경우 양한방 통합 치료로 환자들의 만족도가 높다. 영상 장비를 통해 튀어나온 척추 디스크를 제거하는 디스크 내 수핵감압술을 시술하고 디지털 엑스레이와 초음파 유도로 관절 내부를 들여다보며 척추 치료를 한다. 정확한 부위에 약물을 주입할 수 있어 치료 효과를 높이고 있다.

척추교정을 하는 동구 시온한의원의 경우 환자들이 영상의학과에서 촬영한 엑스레이나 컴퓨터단층촬영(CT) 사진을 바탕으로 진단과 치료 방법을 결정한다. 치료에 들어가기 전에 환자들에게 현재 상태를 정확하게 보여주고 치료 후에도 촬영해 증상이 어떻게 호전됐는지 볼 수 있도록 한다는 것. 내과 질환을 치료할 때는 초음파 검사와 혈액검사 결과를 토대로 정확한 처방을 내리는 점이 특징이다. 이곳 이은철 원장은 "치료는 한의학에 기반을 두지만 진단 방법을 보다 과학화함으로써 환자의 신뢰도를 더욱 높이는 효과가 있다"면서 "다만 의료법상 한의사가 방사선사를 고용할 수 없기 때문에 단순한 엑스레이 촬영도 영상의학과로 보내야 하는 등 진단 기기 사용조차 막고 있어 개선이 시급하다"고 지적했다.

◆한방, 의료관광의 가능성 찾는다

지난달 22일 대구한의대 부속 대구한방병원 한방의료체험센터에 일본인들이 우르르 들어섰다. 올 연말 대구 방문을 앞두고 한방 피부 미용을 체험하기 위해 한방의료체험센터를 찾은 일본 시네마현립대학 간호과 학생들이다. 이들은 한방차를 음미한 후 한방을 이용한 성형술인 미소안면침과 한방약실(매선) 시술을 받았다. 외과 수술 없이도 주름을 개선하고 피부 탄력을 높이며 얼굴의 비대칭을 교정하는 시술이다. 특히 침에 약실을 달아 얼굴 안에 삽입하는 매선 시술을 보며 감탄사를 연발했다. 매선은 근육과 근막을 자극해 피부 탄력을 높이고 처진 얼굴 살을 팽팽하게 만든다. 학생들을 인솔한 아가와 게이코(46) 교수는 "한방침으로 얼굴을 성형할 수 있다는데 놀랐고 효과도 좋았다"면서 "일본에 돌아가면 주변에 한방침의 효능에 대해 알릴 것"이라고 말했다.

한방의료체험센터는 대구를 찾는 외국인 관광객들의 필수 코스로 꼽힌다. 단순한 진료 위주의 프로그램이 아닌 쉽고 재미있게 받을 수 있는 다양한 한방 성형 프로그램 덕분이다. 대구한방병원에 따르면 올 8월 말 현재 한방의료체험센터를 찾은 외국인은 331명으로 나타났다. 최근 3년간 이곳을 찾은 외국인은 569명이다. 중국인 관광객이 136명으로 가장 많았고, 미국 96명, 인도 94명, 우즈베키스탄 55명 등의 순이었다.

이곳에는 한방피부미용 클리닉을 비롯해 한방 여드름 클리닉, 한방 비만클리닉, 한방 안면홍조 클리닉, 한방 탈모클리닉 등이 개설돼 있다. 한방피부미용 클리닉은 전문의가 피부 건강을 진단하고 한약재 추출물과 미소안면침 등을 활용해 기미와 주근깨, 색소침착 등을 치료하다. 고주파 치료 등으로 지방 분해와 피부재생력 강화, 주름 개선 등의 효과도 볼 수 있다. 특히 한약과 침구 치료를 통해 여드름의 원인이 되는 몸의 불균형을 바로잡고, 한방 약초로 여드름을 제거한다. 비만클리닉에서는 한'양방 건강진단과 체질 진단을 통해 비만의 원인을 분석하고 맞춤형 한약과 비감환, 지방분해침 등으로 체중 감량 효과를 볼 수 있다. 한약과 두피강화침, 뜸 등 한방치료를 통해 오장육부의 허실을 다스려 탈모의 원인을 제거하는 탈모클리닉도 운영 중이다. 특히 동양의학을 기초로 체질과 건강 상태에 따라 음식을 제공하는 약선 체험의 인기가 높다.

대구한방병원 관계자는 "외국인 관광객들은 '음식과 약의 근원이 같다'는 한방의 원리에 놀라워한다"면서 "외국인 의료 방문객의 수도 해마다 늘고 있는 추세"라고 말했다.

장성현 기자 jacksoul@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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