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3040 광장] 부족<部族>정치의 명줄

박영선의 3일 항명이 빚어낸 것은 결국 부족장 비대위였다. 친노(親盧)에서 범노(汎盧)와 여러 비노(非盧)까지 알 만한 부족의 수장들이 면면을 채웠다. 더 이상 물러설 곳이 없으니 실권자들이 나선 셈이다. 중도파도 지분을 달라고 떼를 써보지만 들어 먹힐 리 없다. 부족 명함이 없거니와 결속력도 떨어지기 때문이다. 부족장 비대위의 관리자는 전직 비대위원장 출신이다. 부족정치를 연명하기 위한 궁색한 선택의 결과다.

지난해 문희상 비대위원장의 첫 일성은 당을 재건축 수준으로 환골탈태시키겠다는 것이었다. 대선에서 연패하고 새누리당에게 10년 집권의 길을 터주었으니 그래야만 했다. 그러나 그 호언장담은 이내 부족들 간의 혈투로 엿 바꿔 먹었다. 해가 바뀌어도 비대위원장의 심기일전은 한결같다. 부족장 회의에서의 첫 일성이 '부족 청산'이다. 이런 코미디가 없다.

솔직해지자. 청산이 아니라 땜질이 부족장 비대위의 역할이다. 그것이 부족정치의 생리임을 링 밖의 관객들은 꿰고 있다. 한편으로는 다행스러운 면도 있다. 부족 따위는 없다고 강변해오던 민낯이 드러났다. 친노 부족장은 새정치민주연합이 자영업자들의 담합정당이라고 토로한다.

백번 지당한 말이고, 진즉에 이렇게 고백했어야 했다. 그런데 성찰의 목소리가 아니다. 친노가 패권 부족이라는 점에는 동의할 수 없다는 것이다. 세간의 인식과 너무나 동떨어진 논변이다. 새정치연합의 부족은 '친노'를 중심으로 '반노'와 '비노'로 족보를 달리한다. 중심 부족이 누구인지는 뻔하다. 노무현 전 대통령 탄핵을 기화로 친노 부족은 변방의 협객에서 개혁의 견인차로 부상했다. 그러나 10년이 지난 지금 그들은 야당의 기득권 세력으로 퇴행했다. 개혁의 주체가 아니라 대상이 되었다는 것이다.

부족정치의 본색은 외부 비대위원장 영입 실패에서 역력하게 드러났다. 개혁 보수 성향의 이상돈 교수 영입을 좌절시킨 것이 꼭 이념이나 자존심 문제 때문이었을까? 새정치연합 의원들 중에는 이 교수보다 보수적인 인물이 적지 않다. 그가 새누리당 비대위원 출신이라는 점도 불쾌해야 할 일만은 아니다. 오히려 새누리당이 민주당 출신의 김종인 전 의원을 앞세워 집권한 점은 반면교사로 삼아야 할 일이다.

부연하면 현대정치의 특징 중 하나가 다 잡기(catch-all) 전략이다. 집권을 위해서는 이념을 탈색하고 상대의 정책과 인사를 적극적으로 활용한다는 것이다. 이런 점에서 새정치연합의 협량(狹量)은 반등할 기회를 차버렸다. 나아가 더 심각한 문제는 영입된 외부인사의 개혁으로 자기 부족이 쇠락할 수 있다는 위기의식이 이 당에 만연해 있다는 것이다.

부족장 비대위의 관심은 응당 염불보다 잿밥에 가 있을 것이다. 부족의 영속을 위해서 당장 다음 총선 공천권을 쥐는 당권에 사활을 걸어야 한다. 벌써 전당대회 규칙을 둘러싸고 한바탕 설전도 치렀다. 친노 부족은 말썽 많은 모바일 투표를 다시 들고 나왔다. 정치학 교과서에도 없는 네트워크 정당까지 운운하면서 말이다. 손학규 부족이 퇴장하고 안철수 부족은 똬리도 못 틀었으니 규칙만 도와주면 당권은 따 놓은 당상이다. 대권으로 가는 길도 더 수월할 것이다. 그러니 다른 부족들이 극구 반대하는 건 당연지사다. 이들은 당 외곽의 지지층이 엷어서 열패감이 크다.

그런데 모바일 투표는 지난해 문희상 비대위가 대선평가를 통해서 폐기한 경기 규칙이다. 네트워크 정당도 자파 지지층을 규합하기 위한 유령정당에 불과하다. 혁신과 공감 따위는 뒷전이고, 부족은 있어도 당원과 당심은 안중에 없다.

새정치연합은 이런 부족정치 이벤트로 오랫동안 선거에서 패배했고, 지난 대선에서는 완전히 쪽박을 찼다. 그런데도 여전히 이 당은 정신을 못 차렸다. 이런 식으로 부족 담합을 연장하느니, 차라리 살림을 따로 차리는 것도 고민해볼 일이다. 최근 여론조사에서 무당파가 40%쯤 되니 희망을 가지지 못할 법도 없다. 그러나 어떤 식이 되었든 부족정치의 명줄이 그리 길 것 같지는 않다. 문명사회와 부족정치는 전혀 어울리지 않는다. 더욱이 유권자들의 피로와 실망도 임계점에 이르렀기 때문이다.

장우영/대구가톨릭대 교수·정치외교학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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