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대구경북 근현대 名 건축기행] <40>반월당 마주보는 두 빌딩 -미래에셋사옥 & S타워

17년 세월 무색한 한 건축가 작품, 달구벌대로 지키는 장승처럼 우뚝

좋은 건축은 특정한 땅과 환경에 조우해야 하고 다양한 인간의 내외부적 활동과 감성에 지속적으로 즐거움을 줄 수 있어야 한다. 대구 반월당에 달구벌대로를 사이에 두고 마주 보고 서 있는 두 개의 건축물은 도심의 게이트에 남과 여로 선 장승처럼 친근하고 든든해 보인다.
좋은 건축은 특정한 땅과 환경에 조우해야 하고 다양한 인간의 내외부적 활동과 감성에 지속적으로 즐거움을 줄 수 있어야 한다. 대구 반월당에 달구벌대로를 사이에 두고 마주 보고 서 있는 두 개의 건축물은 도심의 게이트에 남과 여로 선 장승처럼 친근하고 든든해 보인다.
가로수를 중심으로 두 개의 건물이 좌우에 배치돼 있다.
가로수를 중심으로 두 개의 건물이 좌우에 배치돼 있다.
이정호 경북대 건축학부 교수
이정호 경북대 건축학부 교수

대구의 동서를 관통하는 달구벌대로에는 많은 건물이 있다. 그 중 반월당을 중심으로 한 주변에는 대구를 대표하는 백화점과 오피스 빌딩, 그리고 다양한 상업건물들로 다운타운을 형성하고 있다.

어느 도시나 다운타운에는 지역을 대표하는 볼거리와 즐길 거리가 많기 때문에 사람들이 모인다. 가로를 중심으로 건물과 건물 곳곳에서 어울려 생활하며 그 도시만의 독특한 분위기에 동화되는 건 대도시만이 갖는 특성이다. 그런 즐거움이 도시의 정체성과 이미지를 만들고 따라서 분위기 있는 공간과 장소의 조성은 좋은 건물에서 시작된다.

사실 서울처럼 대기업 본사나 행정부처 혹은 공공기관같이 규모와 상징성을 가진 대형건물이 없는 지방도시에서 인상적인 건물을 기대하는 일은 모든 것이 중앙집중화된 우리나라에서는 무리인지도 모른다.

마찬가지로 대구에서 다운타운뿐 아니라 시내 전체에서 인상적인 건물을 찾아보기란 쉽지 않지만 다행히 눈에 띄는 두 개의 건물이 있다. 하나는 미래에셋 사옥이고, 또 다른 하나는 그 맞은편의 S타워이다.

1. 장소의 가치를 살리고 조화를 이루며 살아 숨 쉬는 건물

필자는, 흔히 말하는 랜드마크로서 단순히 높기만 한 건물이나 외관만 화려한 건물을 인상 깊은(잘된) 건축으로 보지 않는다. 건물이 그 장소에 조화되게 서 있어 무엇보다 사람들을 우선적으로 배려하는지, 그 형태와 외관이 도시 전체의 이미지와 가로의 맥락에 맞는지, 그리고 건물의 기능과 용도에 적합하여 사용에 편리하고 공간 분위기가 매력적인지를 본 후에 판단한다. 일반적으로 건물은 특정한 땅과 환경에 조우해야 하고 다양한 인간의 내외부적 활동과 감성에 지속적으로 즐거움을 줄 수 있어야 좋은 건축이 되는 것이다. 그중 사무소 건축은 업무수행에 적합하고 쾌적한 환경에서 일한다는 자부심을 느끼게 해야 할 것이며 공간과 형태에서 개성 있는 아름다움이 있어 다른 건물과 차별화되어야 좋은 건축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2. 시대를 반영한 디자인, 도시 맥락에 맞는 형태

미래에셋사옥은 1995년 삼각형의 코너 부지에 학원 건물로 건설되었다. 당시 이름난 학원으로서 한 층에 두 개의 직사각형과 한 개의 원형코너를 가진 강의실이 적층된 12층 건물이지만 옥상에 정원을 조성하면서 가벽을 세워 13층으로 보인다.

이 건물은 상업용 건물이기에 당연히 최대한으로 지상면적을 활용해야 한다. 그래서 대지의 형태대로 삼각형의 덩어리가 될 수밖에 없다. 그런데 삼각형의 뾰족한 예각부가 도로와 만나는 모서리여서 도심의 동쪽에서 진입할 때 랜드마크 구실을 하게 된다. 그래서 건축가는 그곳을 하나의 수직성을 강조한 투명한 기둥으로 하면서 돌로 마감된 격자 패턴의 다른 면과 대비시켜 이 건물만의 개성을 부여하고 있다. 그러나 저층부 도로 부분은 같은 돌로 마감하여 곡면의 존재감을 강조하면서 기단부를 하나로 통합시키는 완결성을 보여준다. 이러한 완결성은 스카이라인을 독특하게 만들고 있는 가벽에서도 발견할 수 있다.

이는 주어진 상황하에서 완전함을 추구하려는 의지의 표상이다. 이러한 건축관은 거의 마주 보는 위치의 S타워에서도 볼 수 있다. 이 건물은 2012년에 완성되어 앞서 말한 건물과는 17년이란 긴 시차가 난다. 이 부지 역시 넓은 도로와 만나는 측면도로가 이루는 모서리가 예각삼각형이고 높이도 12층으로 앞 건물과 비슷한 규모다. 그러나 그 형태와 재료는 큰 차이가 난다. 단지 유리와 프레임으로만 구성된 투명함은, 내부에선 도시의 풍경을, 외부에선 사용자들의 움직임을 있는 그대로 보이게 한다. 이는 밖이 훤하게 보여 도시에서 잘 맛볼 수 없는 속 시원함과 함께 속을 완전히 드러내도 전혀 문제가 없다는 공간과 형태에 대한 건축가의 자신감으로 해석할 수도 있다. 이는 어쩌면 도시의 일상에 지친 사람들에게 건축을 보는 즐거움과 함께 살아 움직이는 유기체로 작동하여 기분을 좋게 할 것 같다. 또 건물 동측의 예각모서리 상부에 있는 원통 기둥은 앞서본 미래에셋사옥의 원통과 뭔가 일맥상통하는 이미지가 느껴지지 않는가? 차이는 부지 형태를 최대한 활용한 사다리꼴 덩어리의 코너부의 한 면 상부를 날렵하게 커팅해내고 그 빈 공허함을 적절한 크기와 재료로 바닥으로부터 솟아오른 듯한 원통을 심어 마치 균형 속의 파격을 연출하는 듯하다.

이 건물의 남다른 공간감을 제대로 느끼려면 옥상정원과 연결된 두 개 층의 수직으로 뚫린 공간과 옆 건물과의 사이에 숨어 있는 설비와 휴게를 위한 공간을 봐야만 한다. 전체 면에 세밀하게 조절된 수직 프레임의 간격과 그 두께와 단면 형상과 더불어 열리는 창문들의 규칙성은 물방울 화가 김창렬의 반짝이는 물방울처럼 영롱하다. 이뿐만 아니라 그 프레임들은 측면에서 보면 서로 겹쳐 하나의 빛나는 면으로 변신한다. 도시의 가로를 걸으면서 건물이 연출하는 다양한 변신을 즐기는 것이다. 여기서도 기단부는 굵기가 다른 전면의 원기둥으로 땅과 조우하지만 상부의 스카이라인에서는 하늘과 유리가 바로 만나는 투명성으로 공간 혹은 형태의 경계가 사라진 파격을 보여준다.

3. 세대를 뛰어넘는 건물과 세대를 연결하는 건축

앞의 글을 읽으면서 '두 건물의 설계자가 혹시 같은 사람일까'라고 생각해 봤다면, 맞다. 실제로 아버지가 설계를 의뢰한 건축가 이성관에게 그 아들이 17여 년이 지난 후 찾아와 또 설계를 부탁한 것이다. 두 세대가 지나서도 같은 건축가를 찾는다는 것은 시대의 급속한 변화에도 불구하고 먼저 지은 건물이 여전히 좋게 사용된다는 증거일 게다. 기능만이 아니라 그 형태도 유행과 무관하게 가치 있음이 아닐까? 그렇지 않았으면 이미 유행하는 스타일로 리모델링했을 테니까. 좋은 건축은 이미 우리가 알고 있듯이 세월이 흘러도 여전히 사랑받는, 지혜롭고 아름다운 현모양처 같은 여자라 할 수 있을까? 봉산네거리에서 반월당으로 갈 때 동시에 보이는 이 두 개의 건물은 도심의 게이트에 남과 여로 선 장승처럼, 혹은 아버지와 아들 두 세대가 각자의 개성을 존중하며 서로 사이좋게 서 있는 듯하다. 좋은 건축이 사람과 도시에 주는 영향은 금방 보이진 않지만 은근하게 오랫동안 작용한다. 좋은 자세와 태도로 설계된 건물은 세대를 뛰어넘는다.

글=이정호 경북대 건축학부 교수

사진=이성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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