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원전·방폐장 다 받은 경북 "이젠 열매 내놔야…"

국내 17개 원전 연구시설 서울·대전·부산 등에 뺏겨

경상북도는 국내 원자력발전소의 절반이 몰려 있는 곳이다. 전국 23기 원전 가운데 11기가 경북에 있다.

게다가 무려 20년 가까운 세월동안 입지를 찾지 못했던 중'저준위 방사성폐기물처분시설(방폐장)을 경북은 받았다. 경주에 방폐장을 만든 것이다.

가장 강력한 방사선이 나온다는 고준위 방사성폐기물(사용 후 핵연료) 처분시설 후보지 가운데도 경북 울진과 경주가 포함된 사실도 확인됐다. 이와 관련해 정부 산하 '사용 후 핵연료 공론화위원회'는 주민 의견을 알아본다며 울진을 최근 방문했다.

이명박 대통령 시절 정부는 "원전이 많은 경북에 원전 관련 연구개발 기능을 주겠다"는 약속을 해왔다. 하지만 지켜진 것이 없다. 발전소에다 폐기물 처리장까지, 경북은 '핵 쓰레기' 등 온갖 것을 다 받아냈지만 알곡은 떨어지지 않았다.

이 때문에 고준위 방사성폐기물 처분장 입지를 찾고 있는 중앙정부가 '이제는 달라져야 한다'는 지역민들의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우리 지역이 당연히 받아야 할 것을 이제 챙겨야겠다는 것이다.

◆받을 만큼 받았다

국내 발전소들이 생산하는 전력의 상당 부분을 서울을 비롯한 수도권이 쓴다. 하지만 발전소, 특히 안전문제로 인해 항상 위험성을 안고 있는 원자력발전소는 모두 수도권에서 멀찍이 떨어진 곳에 있다. '수도권과 멀찍이 떨어진' 대표적 지역이 경북이다. 경북에 전국 원전의 절반이 자리하고 있는 것이다.

원전 6기가 가동되고 있는 울진의 경우, 원전이 처음 착공된 때가 1981년이다. 당시 주민들은 깨끗하고 연기도 안 나는 큰 공장이 들어온다는 정도로만 원전에 대해 알고 있었다. 정부가 원전에 대해 주민들에게 알려주는 것도 없었다.

주민들은 원전이 뭔지도 몰랐다. 이곳 주민들은 "원전이 무서운지는 1986년 체르노빌 사고가 터지면서 알았다"고 입을 모은다.

경북은 중'저준위 방사성폐기물 처분시설도 받았다. 경주 양북면 봉길리다. 부지면적 약 210만㎡로 국내에서 발생하는 중'저준위 방폐물 80만 드럼을 처분한다.

1단계 동굴처분시설은 10만 드럼 규모로 지하 80~130m에 건설했으며 이미 지난 6월 준공했다.

현재 고리, 영광, 울진원자력발전소에서 보관 중인 방사성폐기물은 운반 선박을 통해 경주로 온다. 경주 처분시설 바로 옆에 위치한 월성원전 방사성폐기물 역시 이곳으로 온다.

이런 가운데 고준위 방사성폐기물 처분시설 후보지로도 경주와 울진이 들어갔다. 또다시 경북에 '핵 쓰레기장'이 들어올 가능성이 커진 것이다.

◆알곡은 없었다

정부는 지난 2005년 11월 방폐장을 유치한 경주시에 방폐장 유치 지역 지원사업으로 55개 사업에 3조4천290억원의 지원을 약속했다.

그러나 방폐장을 유치한 이후 9년 가까이 흐른 현재 상황에서 지원사업 이행률은 40%대에 머문다. 10개 약속 가운데 4개만 지킨 셈이다. 한국수력원자력㈜ 본사 이전 외에는 지역민들이 피부로 느낄 만한 변화가 없다.

김관용 경상북도지사는 "원전 집적지인데 원전 연구개발 기능을 전혀 주지 않고 있다. 국책사업으로 주겠다고 약속했지만 정부는 이를 지키지 않고 있다"고 발끈했다.

김 지사의 말처럼 원자력 관련 연구개발시설은 경북에 전무하다. 한국원자력연구원 등 원자력 안전 및 연구개발 관련 시설은 국내에 17개나 있지만 경북엔 하나도 없다.

경북도가 "우리 지역에 원전이 많으니 경북을 원자력클러스터로 만들겠다"고 했지만 중앙정부 지원은 연구용역비 몇억원이 전부다.

원전과 관련한 중앙정부의 지역 외면은 심각한 수준이다.

경북도 한 고위 관계자는 "지방에 원전이 있지만 중앙부처는 지방정부와의 협의를 전혀 하지 않는다"며 불만을 토로했다.

일본의 경우, 원전 가동 권한을 자치단체가 가지고 있는데 우리나라는 철저하게 지방정부가 소외되고 있다는 것이 경북도의 주장이다. 원전 절반이 몰려 있는 경북인데 경북도는 원전에 대해 어떠한 권리도, 정보도 갖고 있지 않다는 것이다.

◆원자력 해체기술 종합연구센터 반드시 경북에

현재 세계적으로 해체 대기 중인 원전은 120여 기에 이른다. 원자력 해체 시장 규모가 2030년에는 500조원, 2050년에는 1천조원에 이를 것으로 전망되면서 각 지역이 원자력 해체기술 종합연구센터 유치에 열을 올리고 있다.

우리나라도 지난 1970년대 후반부터 시작한 상용 원자력 발전이 원자로 설계 수명 기한인 30년을 넘어섰다. 고리원자력본부의 고리원전 1호기가 법적 수명을 다하는 오는 2017년 이후부터 국내 원자력발전소의 해체사업이 본격적으로 추진될 전망이다.

원전 23기 중 수명을 연장하지 않는다고 가정할 때 오는 2020년까지 12기가 영구 정지되고 향후 70년간 14조원의 원전 해체 비용이 소요될 것으로 보인다.

이와 관련, 미래창조과학부는 향후 예상되는 국내외 원자력 발전소 해체에 대비해 '원자력시설 해체기술 종합연구사업(약칭 원해연)'을 추진하고 있다. 이 사업은 오는 2019년까지 모두 1천473억원을 들여 원전 해체에 필요한 핵심기술의 연구개발과 성능을 검증할 수 있는 시설'장비 등 기반 구축을 하는 것이다.

이에 따라 경북도는 목소리를 키우고 있다. 원전 절반을, 방폐장까지 받은 경북이 이제는 '원자력 해체기술 종합연구센터'라는 알곡을 받아야겠다는 것이다.

원해연 경주유치에 대한 공감대가 점차 확산하고 있는 가운데 최양식 경주시장과 권영길 경주시의회 의장 일행은 21일 주관부처인 미래창조과학부 이석준 차관을 찾아가 "원해연은 방폐장이 들어온 경주에 반드시 설립되어야 한다"며 원해연 유치에 대한 경주시의 강력한 의지를 전달했다.

경북 경주시의회는 같은 날 임시회 본회의를 열고 '원자력 해체기술 종합연구센터 경주유치 촉구 결의문'을 채택했다.

경주시와 경주시의회는 "정부는 경주가 원자력산업 발전에 중추 역할을 해온 집적지로 원자력 수출국의 위상을 확보하는데 시민의 절대적인 희생과 협조가 있었음을 결코 잊어서는 안 될 것"이라며 중앙정부를 압박하고 나섰다.

경북도는 이미 원전 관련 산'학'연'관 협력체계를 구축했으며 용역을 거쳐 연계산업 육성방안, 연구센터 유치전략을 마련해둔 상태다.

미래부는 올해 말 완료 목표로 예비타당성 조사를 진행하면서 부지선정 절차를 병행하고 있다. 최근 부지선정 평가지표 마련을 위한 용역에도 착수했다.

이인선 경북도 정무부지사는 "경북도는 산업계에서 한국원자력환경공단'한전KPS㈜'한국전력기술㈜'두산중공업㈜, 학계에서는 포스텍'동국대(경주)'영남대와, 연구기관으로는 한전KPS 기술연구원'한국전력기술'미래전력기술연구소'두산중공업 기술연구원 등과 이미 파트너십을 갖췄다"며 "경북도가 원해연의 최적 입지이며 산학연 네트워크를 확실히 갖춘 곳에 원해연이 오는 것은 당연하다"고 밝혔다.

경주 이채수 기자 cslee@msnet.co.kr 최경철 기자 koala@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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