몇 해 전 만년설 코타키나발루 명산이 하늘로 치솟아 날고 있는 동말레이시아 포도스라는 작은 마을에 자원 봉사를 갔었다. 60여 가구가 살고 있는 그림 같은 마을이었지만 곳곳에 쓰레기가 제멋대로 널브러져 있고 배고픈 개들이 우글거렸다. 마침 방학 중이라 학생들이 공부하는 모습은 볼 수 없었지만 낡은 책걸상의 배치를 보니 한 분의 선생님이 학년대로 몇몇 앉혀 놓고 가르치고 있는 것 같았다. 우리가 여장을 푼 학교 곁으로 지저분한 물이 흘러가는 시내가 있었는데 빨래와 목욕을 한 그 물이 또한 그곳 주민들의 식수가 되고 있었다.
우리 대원들의 할 일은 한 시간 남짓 걸음의 밀림 산을 넘어 폭포수로 떨어져 흐르는 특급 청정수를 끌어 산 중턱에 커다란 물탱크를 만들고 파이프를 연결해서 학교와 마을 곳곳에 공동수도를 놓아주는 일이다. 항공료는 자비지만 나머지 경비는 아드라(ADRA)의 자금이었다. 남자대원들은 땅을 파서 파이프를 묻고 여자대원들은 흙을 덮어서 밟아준다. 여름뿐인 한 철의 나라, 예고 없이 쏟아지는 소나기에 젖었다 말랐다 하는 옷을 뚫고 모기떼는 맛있는 우리들 피를 인정사정없이 빨아댔다. 밀림 속에서 먹는 주먹밥은 세상에 둘도 없는 최고의 만찬이었다. 곯아떨어진 밤이면 도마뱀들이 벽과 천장에서 자장가를 불러주었다. 처음에는 기절할 듯 소리쳤지만 며칠 지나니 도마뱀도 귀여운 친구가 되었다.
우리가 유일하게 쉬는 시간은 마을을 청소하는 시간이다. 깨끗해진 포도스마을은 엽서 속의 예쁜 그림 같았다. 주민들이 맛있는 열대 과일을 따서 가져오고 봉사에 동참하기 시작했다. 말은 잘 통하지 않지만 이내 친해져서 매일매일 곤한 줄을 몰랐다. 마지막 날 질서정연하게 차례를 기다리는 그들에게 의료진들은 환자들을 진료하고 우리는 의약품, 생필품, 의류들을 골고루 나누어주었다. 그들은 우리 대원들의 이름을 새긴 예쁜 돌비를 공동수도 곁에 세워주었다.
말레이시아 징소리 장단에 맞춰 그들 전통춤과 우리 막춤이 어우러진 절정의 순간, 수도꼭지에서 폭포수였던 특급 청정수가 콸콸 쏟아져 나왔다. 와!~ 서로를 얼싸안고 펄쩍펄쩍 뛰었던 그 감동의 시간, 저 순박한 사람들이 맑고 맑은 저 물로 건강해질 수 있다고 생각하니 가슴이 벅차올랐다. 9박10일간의 이별 아침. 우리를 배웅하러 와서 먼저 울어버린 주민들과 그들을 두고 차마 돌아설 수 없었던 길고 긴 눈물의 악수, 우리가 탄 차가 보이지 않을 때까지 손을 흔들며 눈물을 훔치는 그 순박한 사람들과, 구름을 휘감고 활짝 웃어주는 코타키나발루를 보면서 생각했었다.
풍요 속을 멋대로 달려가는 나의 세상에 '동작 그만'이 올 때 내게 달려와 나의 등을 토닥여주는 것은 봉사의 그날들이 아닐까?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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