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문화속으로] 노벨문학상의 길

지난달 9일, 금년도 노벨문학상 수상자가 발표되었다. 111번째 영광의 주인공은 프랑스 출신 소설가 파트릭 모디아노다. 영국 도박 사이트 래드브록스가 올해 가장 유력한 수상자로 케냐 작가 응구기와 시옹오, 일본 작가 무라카미 하루키, 벨라루스 작가 스베틀라나 알렉시예비치를 점쳤지만, 수상의 영광은 그에게로 돌아갔다. 수상 소식을 접한 그가 "기쁘지만 의아하다. 스웨덴 한림원에서 왜 나를 뽑았는지 빨리 그 이유를 듣고 싶다"라고 소회를 밝힐 정도로 그 역시 수상을 크게 기대하지 않았던 듯하다.

그러나 그의 수상이 새삼스럽거나 그리 놀랄 일은 아니다. 프랑스 최고 권위의 공쿠르상을 받은 바 있는 그는 이미 몇 년 전부터 잠재적 수상 후보로 주목받고 있었다. 그는 우리에게도 낯설지 않은 인물이다. 그의 출세작이자 공쿠르상 수상작인『어두운 상점들의 거리』를 비롯하여 여러 작품이 번역 출간되어 있기 때문이다. 주인공의 옛 주소이기도 한『어두운 상점들의 거리』는 기억상실자인 주인공 롤랑이 부고(訃告)와 몇 장의 사진을 단서로 자신의 과거를 추적하는 과정을 그린 소설이다. 스키 강사 베송과 러시아인 브레데의 꾐에 빠져 연인 드니즈와 함께 스위스 국경을 넘으려다 눈 속에 버려지는 장면(기억 상실의 단초)은 압권이다.

그의 수상으로 프랑스는 이제 15명의 수상자를 갖게 되었다. 11명을 배출한 미국이나 9명과 8명을 배출한 영국과 독일을 저만큼 앞지른 형국이다. 아직 1명도 배출하지 못한 우리로서는 여간 부러운 일이 아니다. 작가의 역량이나 작품 수준이 결코 그들에 비해 밑지지 않는데도 말이다. 더구나 일본은 이미 2명을 배출한 데다 유력한 수상 후보자를 보유하고 있고 중국도 2012년에 수상자를 배출했으니 1988년 프랑스로 귀화한 가오싱젠(2000년 수상자)까지 합치면 2명이 된다.

흔히 우리나라가 수상하지 못하는 이유로 열악한 번역 환경을 꼽는다. 한 작가가 수상 후보의 반열에 오르려면 기본적으로 작품 수준이 뛰어나야 하지만, 그에 못지않게 중요한 것이 국제적인 인지도인데, 이런 번역 환경으로는 국제적인 인지도를 높이기가 쉽지 않다는 것이다. 옳은 말이다. 고은 시인이 그나마 매년 수상 후보자로 거론되고 있는 것도 이와 무관하지 않다. 한국문학번역원의 자료에 의하면 최근 10년간 노벨문학상 수상 작가의 스웨덴어 번역 출간 권수가 평균 6.6권인데 비해 우리나라의 경우는 고은 시인이 4권, 황석영과 이문열 작가가 각각 2권 정도에 불과하다.

그러나 실상 번역 환경보다 더 우려되는 것은 독서 환경이다. 지난해 문화체육관광부가 조사한 국민 독서 실태를 보면 우리나라 성인 연평균 독서량은 9.2권으로, 한 달에 한 권이 채 안 된다. 그것도 같은 기관에서 조사한 2011년보다 0.8권이나 감소한 수치다.

더 큰 문제는 매년 감소 추세를 보이고 있는 독서량보다 독서의 질이다. '2014년 국립 10개 대학 도서관 대출 상위 30개 도서' 자료에 의하면 문학 관련 서적의 비중이 2004년 1학기 87.7%에서 올해 1학기 51.3%로 크게 준 반면, 심리'자기계발'자격증 관련 서적의 비중은 1%에서 7.7%로 증가했다. 문학 관련 서적도 흥미 위주의 판타지나 무협 소설이 상위권을 차지한다. 이런 독서 풍토로는 번역 환경을 개선할 수 없다. 아무리 훌륭한 작품이 나와도 자국 국민이 읽어주지 않으면 외국의 유력 출판사들이 주목할 까닭이 없기 때문이다.

프랑스에서는 문학상을 받은 자국의 작품을 고교생들이 읽도록 하는 사회적 분위기가 형성되어 있다고 한다. 우리도 독서량과 함께 독서 수준을 높이는 사회적 분위기와 대책이 마련되어야 한다. 그래야만 머잖은 장래에 노벨문학상을 기대해 볼 수 있다.

이연주/소설가·정화여고 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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