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원도 안 되는 돌봄의 가격
자본주의 사회에서 가격은 가치를 나타낸다. 싼 물건보다는 비싼 물건이 '좋은' 것으로 통한다. '저렴한 명품'이라는 말은 모순이다. 명품의 가치는 통상 보통 사람이 쉽사리 살 엄두를 낼 수 없는 가격으로 표시된다. 노동의 가치와 가격도 크게 다르지 않다. 높은 임금이 보장되는 일자리가 가치 있는 노동으로 간주된다. 낮은 임금의 일자리에 아무리 아름다운 의미를 부여한들 그 노동의 가치가 사회적으로 인정되고 있다고 보기 어렵다. 상품의 가격은 가치의 표식이다. 노동의 가격 역시 마찬가지다. 그러나 우리 사회에서 상품의 가치와 가격, 노동의 가치와 가격은 드물지 않게 어긋난다. 그 대표적인 사례가 상품으로서의 '돌봄', 노동으로서의 '돌봄'이다.
돌보는 일(care)은 가족 내에서 여성의 전통적인 역할로 간주되어 왔다. 아이를 키우는 부모와 나이 든 부모를 돌보는 자녀로서의 역할은 가부장제 사회에서 여성이 도맡아 해왔다. 남성은 경제활동으로 가족을 부양하고 여성은 집안에서 가족을 돌보며 재생산노동을 전담해온 것이다. 미국의 경제학자 낸시 폴브레는 이라는 책을 통해 여성이 가족 관계 안에서 해온 돌봄 활동의 사회적 가치를 재조명한다. 돌봄이 사회적 재생산을 위해 필수불가결한 활동이며 가족 안의 여성에게 강제로 할당되어야 하는 성질의 것이 아니라 남성과 여성 모두 참여하고, 가족과 사회, 국가가 나눠 맡아야 할 사회적으로 가치 있는 활동이라는 것이다.
지난 몇 년간 우리나라에서 보육서비스가 보편적으로 확대되고, 노인장기요양보험제도가 도입되는 것을 보면 '돌봄의 사회화'는 다른 나라 이야기만이 아니라 우리의 현실임을 알 수 있다. 아이를 키우는 일은 더 이상 부모만의 개인적인 책임이 아니라 미래 사회를 위한 공동의 책임이라는 인식 변화가 있기에 조세가 보육서비스 확대에 쓰이게 되는 것이다. 게다가 65세 이후 노년의 삶에서 발생하는 위험이 당사자나 자녀들에게 맡겨둘 성질이 것이 아니라는 판단이 공유되었기에 노후소득보장과 노후건강에 대한 사회적 대책을 서둘러 도입한 것이리라.
그렇다면 개인의 책임과 가족이라는 공간을 넘어서서 '사회화된 돌봄'은 어떻게 인정되고 있을까? 가족 안에서 여성이 수행해온 돌봄은 사회적으로 인정되지 않는 활동이었다. 보상이 이루어지는 것도 아니고 오래한다고 경력이 인정되는 것도 아니었다. 이러한 사적 돌봄이 사회화되어 '노동'이라는 상품이 되었을 때 우리는 돌봄 노동에 매겨지는 가격을 통해 사회적으로 인정되는 가치를 가늠할 수 있게 된다.
한국노동연구원의 황덕순 박사가 2012년에 펴낸 에서는 한국의 사회서비스 직업 고용규모를 2011년 기준 76만 1천 명, 전체 취업자 대비 3.2%에 달하는 것으로 제시한다. 이들 중 가장 임금수준이 높은 유치원교사의 월평균 임금은 128만 원. 요양보호사나 간병인이 포함된 의료'복지서비스직은 88만 원, 가사'육아도우미의 경우 77만 원이다. 전체 여성노동자의 월평균 임금인 147만 원보다 모두 낮다. 2014년 2인 가구 최저생계비가 102만 7천 원이 약간 넘는 것을 감안했을 때 돌봄 노동을 직업으로 가지면 부양가족의 생계를 책임지기 어렵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상용직, 일용직, 임시직 등의 근무형태, 보육, 장기요양 등 분야를 망라하여 시간당 임금은 최저 4천632원, 최고 9천481원. 어떤 형태의 돌봄 노동도 시간당 1만 원을 넘지 않는다.
아이를 키우는 어머니, 치매노인을 돌보는 자식을 칭찬하지 않는 사회는 없다. 그런데 똑같은 그 일을 직업으로 대신하는 사람들에 대해서 우리 사회는 다른 잣대로 대한다. 사회화된 돌봄에 우리는 시간당 5천 원, 6천 원만을 지불할 따름이다. 돌봄은 돌봄의 대상이 되는 사람에 대한 관심과 사랑의 요소를 반드시 포함한다. 가족관계 바깥에서 이루어지는 돌봄 노동이라고 다르지 않다. 생계유지조차 어려운 보상 수준과 처우 속에서 과연 아이에 대한 사랑과 어르신에 대한 존중의 보살핌이 만들어질 수 있을까? 우리 사회의 돌봄 노동에 사회적 가치를 부여하고 높아진 돌봄의 가치를 보상 수준에 반영하는 일이 시급하다.
양난주/대구대 교수·사회복지학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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