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섬서성의 화산(華山)에 가 본 사람이면 누구나 그 깎아지른 듯한 절벽과 험악한 산세에 압도된다고 한다. 또 어떤 이는 뼈대만을 자랑하는 화강암의 흰 표면이 여인의 속살 같다고 탄복하면서 우리 삶도 거추장스러운 수식은 다 빼고 사랑만 존재했으면 좋겠다고 말하기도 한다.
다 좋은 이야기다. 화산은 분명 해발 2,155m에 이르는 중국 5악의 하나로 암벽을 타듯 기어 올라가야 하는 경사 90도의 수직 돌계단과 오금을 저리게 하는 절벽 등산로, 황천길을 무색게 하는 '장공잔도'(長空棧道)로 전 세계 강심장들을 모으기에 손색이 없다.
그러나 한편 변변한 나무숲 하나 못 거느리는 바윗덩어리 산이 마냥 아름답기만 한 것일까 하는 의문이 들기도 한다. 산은 모름지기 살이 되는 흙과 그늘을 이루는 나무와 피가 되는 물이 어우러져야 하지 않을까. 그 어떤 연유로 스스로 폭발하여 단단한 암석이 되었는지 모르지만 바위로만 이루어진 산은 너무 완고하고 야박하지 않은가.
아찔한 절벽을 일터로 삼는 원주민 짐꾼들 또한 눈물겹다. 양쪽 어깨에 걸친 기다란 지게에 짐을 잔뜩 매달고 가는 그들을 보면 사람이 짐을 옮기는 건지 짐이 사람을 움직이는 건지 구별이 되지 않는다.
그 옆을 알록달록한 등산복 차림의 젊은이들이 화산 특유의 짜릿한 스릴에 도취하여 트레킹을 즐기고 있다. 연인들은 붉은 천으로 자물쇠를 묶어 난간에 매달고는 열쇠를 천 길 낭떠러지로 던져 버리는 치기를 보이기도 한다. 사랑의 맹세이다. 짐꾼에게는 생존인 무심한 산이 등산객에게는 낭만이 되고 있는 현장이다.
짐꾼도 젊은이도 아닌 나는 잠시 숨을 돌려 커피를 한 잔 마시기로 한다. 까마득히 내려다보이는 계곡을 보니 사는 동안 막막했던 순간들이 떠오른다. 삶은 곧 밀어도 밀어도 굴러 떨어지기만 하는 바윗덩어리를 또다시 밀어 올려야 하는 시지프스의 형벌이 아니던가. 저 산은 대체 그 무슨 운명으로 저리도 단단한 돌이 되고 말았을까. 제아무리 버티어봐야 수억 년 후에는 흙으로 풍화되고 말 것을.
바람결에 피리 소리가 들려온다. 휴식 동안 짐꾼이 부는 구슬픈 가락이다. 피리 소리는 산골짜기를 어루만지다가 계곡을 돌아 등산객들의 마음 언저리를 헤매다 그친다. 누군가가 스마트폰을 들이댔기 때문이다. 그가 사진기 앞에서 찡그렸다 웃었다 하는 모습을 저무는 해가 물끄러미 내려다보고 있다.
소진/에세이 아카데미 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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