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야고부] 닝보(寧波) 유감(遺憾)

조선 성종 때 관원으로 제주도에 부임한 최부(崔溥)는 이듬해 부친상을 당해 배를 타고 육지로 향하다 풍랑을 만나 표류했다. 일행과 함께 해류를 타고 천신만고 끝에 상륙한 곳이 중국 닝보 해안이었다. 조선의 관직을 가진 선비임을 당당히 밝히며 명나라 관원의 호송으로 연안과 내륙의 주요 도시를 지나 북경에 도착, 황제를 만났다. 그리고 산해관과 요동을 지나 압록강을 건너 한양으로 돌아왔는데, 당시 기나긴 여정의 기록이 바로 표해록(漂海錄)이다.

한반도의 서남해안에서 물길 따라 당도할 수 있는 곳인 닝보가 오랜 국제무역항이 된 까닭을 알 만하다. 우리말로 영파(寧波)라는 지명 그대로 파도가 잔잔한 항구를 끼고 있어 바다를 기반으로 한 해상무역의 역사가 깊은 곳이다. 당나라 때부터 해상 비단길의 출발점이었으며, 한반도와 왕래도 빈번했다. 통일신라 때 해상왕국을 건설했던 장보고 선단의 교역 중심지였고, 고려 때 송나라에 유학한 대각국사 의천의 활약상도 전한다.

또 닝보 앞바다에는 션자먼(沈家門)이라는 작은 어항(漁港)이 있는데 중국판 심청전의 고향이라고 한다. 닝보로 들어가는 바다 길목에는 신라초(新羅礁)라는 바위도 있다. 장보고의 선단과 신라의 배들이 드나들며 부딪치곤 해서 붙은 이름이라고 한다. 닝보시가 한'중 우호 강화와 문화교류 확대를 위해 복원'개관한 고려사관(高麗使館) 또한 그 생생한 증거이다.

그렇게 말로만 듣던 닝보 앞바다에 서서 멀리 동북쪽 한반도를 바라보는 감회는 실로 벅차다. 저장성(浙江省)의 대표적인 무역도시로 항저우(杭州) 다음으로 큰 경제규모를 가진 닝보는 해상 실크로드의 요람답게 최근에는 디자인산업 발전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디자인 전문단지를 조성하고 디자인센터도 개설했다. 경쟁력 있는 한국의 디자인관련 업체들이 진출할 수 있는 가능성을 열어두고 있는 것이다.

대구경북디자인센터와 닝보디자인센터 간 협력과 정부의 지방대 특성화 사업에 선정된 영남대 시각디자인학과 등 지역대 디자인계열과의 교류가 이루어지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데 현지에서 들은 닝보디자인센터와 부산디자인센터 간 업무협약과 디자인 교류행사 소식에 낭패감을 감출 수가 없었다. 닝보시와 10년도 넘게 교류해온 대구시는 그동안 무엇을 한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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