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데스크 칼럼] 서울공화국주의가 나라를 망친다!

헌법재판소가 지난달 30일 국회의원 선거에서 선거구별 인구 편차 비율이 2대1을 넘어서지 말아야 한다는 결정을 내렸다. 헌재의 이런 결정에 대해 우리 대구경북 지역민들은, 우리나라 국민들은 어떤 생각을 하고 있을까?

대한민국 국민이 국회의원 선거에서 행사하는 투표권은 어느 곳에 살든 '똑같은 가치'를 갖는 것이 원칙이고, 행정구역이나 생활권 등의 문제 때문에 일정한 편차가 생길 수밖에 없다고 하더라도 그 범위가 '2대1'을 넘어서는 안 된다는 헌재의 다수 의견에 공감하는 사람도 적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비수도권 지방에 사는 사람이라면, 좀 다른 생각이 먼저 드는 것이 일반적인 것 같다.

"선거구가 통폐합되는 지역에서 치열한 감투싸움이 벌어지겠네"라든지, 또는 지금도 모든 것이 서울과 수도권에 집중되어 있는데 앞으로 더욱 수도권 일극화가 심화할 것을 우려하는 분도 많았다. 그러나 헌재의 결정에 대해 '분노' 하는 목소리는 작고, '어쩔 수 없이 받아들여야 하는 현실'로 여기는 사람이 지방에서도 오히려 더 많은 게 아닌가 하는 느낌이 든다.

분노해야 하는 상황에서 분노가 아니라 걱정만 하는 것이 우리의 모습이다. 헌재의 결정이 가지고 올 결과를 보자. 헌재가 지적한 인구 상한초과 선거구를 모두 분할하고, 인구 하한미달 선거구를 전부 통합한다고 가정하면, 서울을 포함한 수도권 의석은 19대 112석에서 20대에는 134석으로 증가한다. 국회의 전체 지역구 의석이 246석인 점을 고려하면, 수도권의 비중은 45.5%에서 51.9%로 과반을 넘게 된다. 이미 경제'사회'문화 등 거의 모든 것의 중심이 된 수도권이 정치권력마저 완전히 장악하게 되는 상징적인 선언이 바로 '10월 30일 헌재의 결정'이다.

유권자들의 1인당 투표 가치가 똑같은 대통령선거에서 인구 규모가 절대적으로 큰 수도권이 최대 승부처가 된 지는 이미 오래다. 이에 덧붙여, 향후 수도권 국회의원의 의석이 증가하게 되면 여야의 선거전략과 공약개발 등이 모두 수도권에만 집중적으로 맞춰질 수밖에 없게 된다. 헌법이나 선거제도에 근본적인 손질을 가하지 않는 한 '서울공화국 대한민국에 지방은 없다'는 냉혹한 정치적 현실을 피할 수 없다.

이런 측면에서 이번 결정을 내린 헌법 재판관들은 법률 전문가일지는 모르지만, 대한민국의 헌법을 수호하는 책임에 적합한 역사의식과 사회적 문제의식을 갖췄다고 하기 어렵다. 그들은 철저한 '서울공화국주의자'에 불과하다. 이런 서울 중심주의가 우리 사회의 헤게모니를 장악하고 있어, 분노해야 할 지방민들조차 분노하지 않고 걱정만 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헌재는 인구 격차 비율과 관련, 1995년 '4대1 위헌', 2001년 '3대1 초과 헌법 불합치', 그리고 2014년 '2대1 초과 헌법 불합치' 결정을 잇달아 내렸다. 수도권과 지방 간 표의 가치는 점점 등가에 가까워지고 있는 반면에, 경제, 사회, 문화 등의 격차는 오히려 급속히 확대됐다. 국가균형발전을 위해 지방이 낼 수 있는 정치적 목소리를 헌재가 '헌법 불합치'란 명목으로 옥죄어온 셈이다.

주민대표성과 지역대표성을 함께 갖는 우리나라 국회의원의 특성을 희석시키기 위해 현실의 지방자치를 교묘하게 왜곡하기도 했다. 헌재는 지방자치가 정착되면서 국회의원의 지역대표성 문제가 어느 정도 해소됐다는 것을 이번 결정의 근거 중 하나로 삼았다. 각종 법령에 의해 심각하게 제한받고 있는 조례제정권과 열악한 지방재정이라는 현실적 문제로 인해 껍데기뿐인 지방자치의 현실은 외면한 채, 형식 논리만을 도입해 대한민국을 서울공화국으로 만드는 데 확실한 정점을 찍었다. 지방조차 포용하지 못하는 서울공화국주의로 통일한국의 미래를 기대할 수는 없다.

대한민국은 법치국가이다. 헌법은 그 법체계의 가장 높은 곳에 위치해 있으며, 이 헌법에 대한 최종적 해석과 판단은 헌법재판소가 한다. 그런 헌재가 대한민국을 서울공화국화 하는 역할에 앞장서고 있다.

이제 대한민국 전체 국민의 행복과 통일한국의 내일을 위해 선택할 수 있는 길은 주권자인 국민이 헌법을 시대에 맞게 새롭게 만드는 일이라는 생각이 든다. 최근 서울서 열린 '국가 개조와 지방분권 개헌' 토론회가 남다른 의미로 다가오는 것도 이 때문이다. 해방 이후 산업화와 민주화를 거친 대한민국이 이제는 새로운 패러다임을 갖춰야만 선진국으로 도약할 수 있다는 믿음이 더욱 강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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