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음반 읽어주는 남자] 지명으로 읽는 대중가요(3편)

조영남의 화개장터는 경남 하동과 전남 구례를 잇는 노랫말로 단지 군부 정권에 의해 지역 갈등이 조장됐을 뿐인 영호남 간의 평화를 염원했다. 또 김혜연의 '서울 대전 대구 부산'은 임 찾아 전국 어디든 누빌 수 있다는 노랫말로 서울뿐만 아니라 팔도 어느 곳에서든 드라마틱한 애정의 서사가 펼쳐질 수 있음을 나타냈다. 두 곡 모두 1991년 지방자치제 부활 전후로 등장했다. 그 의미가 현재 제대로 전해지고 있는지 모르겠다.(그런데 '서울 대전 대구 부산'이라는 제목에 왜 호남'강원'제주지역 도시는 없느냐고 물으신다면? 제목에는 없지만 노랫말에는 광주와 목포가 등장하고, 김혜연이 강원도와 제주도에 공연하러 가서는 노랫말을 개사해 춘천, 강릉, 제주 등의 지명을 넣어줬다고 하니 참고하시길)

◆지명 담은 대중가요는 인문지리적 자산

특히 대구경북의 지명은 더더욱 눈에 띄지 않는다. 최근 곡인 버스커버스커의 '여수 밤바다'(2012)는 전국의 수많은 관광객을 전남 여수로 불러 모으고 있다. 대구경북에도 여수 밤바다 못지않은 경치와 분위기를 지닌 곳이 많은데, 그렇다고 지역 홍보를 위해 인기 가수에게 억지로 시켜 노래를 부르라 하기는 힘든 일이고, 지자체에서 만드는 일명 '우리 고장 홍보송'은 그다지 귀에 끌리지 않는 것이 현실이다.(물론 인기 아이돌 그룹 '소녀시대'와 '슈퍼주니어'가 2009년에 함께 부른 서울시 홍보송 'Seoul'은 예외다. 세련되게 잘 만들어서다)

결국 뮤지션이 어떤 지역의 매력을 접하고 마음이 동해야 그 지역을 소재로 한 좋은 곡이 나올 수 있다. 대표 사례가 있다. 최성원의 '제주도의 푸른 밤'(1988'사진)이다. '떠나요. 제주도 푸른 밤 하늘 아래로. 낑깡 밭 일구고, 감귤도 우리 둘이 가꿔 봐요.' 이 노랫말대로 현재 최성원은 제주도에서 귀농 생활을 하고 있다고 한다.

사실 대구경북 곳곳의 지명도 과거에는 대중가요와 꽤 인연이 있었다. 특히 가수 현인, 작곡가 박시춘, 작사가 유호와는 보통 인연이 아니다. '비 내리는 고모령'은 물론, 경주가 배경인 '신라의 달밤'(1947)도 박시춘이 곡을 쓰고, 유호가 노랫말을 짓고, 현인이 불러 오늘날 한국 대중가요사의 명곡으로 남았다.

'곡'이라는 매체는 영상과 글이 할 수 없는 기록을 해낸다. 창법과 연주 그리고 노랫말로 어떤 추상적인 정서를 구체화하는 것이다. 또 공간과 그 속에 사는 사람들의 삶도 기록하는데, 그 '색인'(index)이 바로 곡 제목과 노랫말 속 '지명'이다. 색인은 그 자체로 색인이 가리키는 대상에 대한 관심을 불러일으키는 마중물 역할을 하고, 그 관심의 양과 수준을 가늠하는 지표도 된다. 훗날 이런 색인이 풍부한 고장과 빈약한 고장의 인문지리적 격차도 분명 나타날 것이다. 내가 살았던 고장은 꼭 전자였으면 한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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