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매일춘추] 플라니 앓이

'칼 폴라니'(Karl Polanyi)는 경제가 이기심이나 무한 경쟁만을 동력으로 삼고 있지 않다고 주장한 학자였다. 그는 시장은 인간의 삶에 부수적인 요소라 말하면서, 물질보다는 사회적 연대를 더 강조한 사람이었다. 나는 처음 그를 읽었을 때 그의 이론에 정확하게 부합되는 공동체 속에 살고 있었다. 그곳은 '호혜'와 '교환'과, '재분배'가 완벽하게 작동되는 부족사회였다.

내가 그 부족에 처음 들어가자, 그들은 나와 동기들을 '새내기'라 불렀다. 추장은 막걸리와 김밥, 튀김 등의 값진 선물들을 늘어놓으며 우리를 환대했는데, 때로 그 '포틀래치'(potlatch)는 과격하게 흘러 사발식 -미개사회의 환대는 종종 위험을 수반한다-과 같은 위험한 통과의례로 이어지기도 하였다. 추장을 비롯한 소위 '선배'라 불리는 자들의 그러한 선물공세는 4년 내내 지속되었는데, 이것은 분명 그들의 경제적 이익과는 전혀 상관이 없는 '호혜적 제공'이었다.

1년이 지나자 나와 동기들 앞에 '후배'라 불리는 새로운 부족원들이 등장했다. 우리 역시 별다른 계산 없이 그들에게 호혜적 제공을 시작한다. 물론 동기부여가 전혀 없었던 것은 아니다. 단백질과 알코올 제공을 많이 하는 선배가 되면 부족 내에서 명성이 상승하는 동시에 이성의 부족원들과 광란의 리츄얼(ritual)을 벌일 수 있는 기회도 늘어났기 때문이다.

부족원들은 생존을 위해서 학점 수렵에 나서야 하는데 그러기 위해서는 '족보'라는 부적과 '노트필기'라는 무기 등이 '교환'돼야 했다. 만약 부족 내에서 얻어먹기만 하고 베풀지 않는 자가 있다면 그는 이 교환의 고리에서 도태되어 험난한 외부 환경과 홀로 맞서야 한다. 때로 훌륭한 사냥꾼이 있어 심지어 '대리 사냥'을 해 주는 경우까지 있었는데 이러한 '재분배'에 대해서 불만을 가지는 구성원은 거의 없었다. 왜냐하면 당시에는 A학점이 지천에 널려 있어, 굳이 그것을 사유화해 냉장고에 보관해 둘 필요가 없었기 때문이었다.

이 아름다운 부족사회의 민족지는 이제 전설로만 남겨졌다. 대학은 현명하게도 학부제와 자율전공부를 도입해 '호혜'를 무력화시키고, 동시에 상대평가제를 도입해 '교환'과 '재분배'를 부도덕한 행위로 만들어 버렸다. 잔디밭에서의 리츄얼은 금지되었고, 학생들은 이제 서로를 떠밀치며 A학점을 쟁탈하고 있다. 아이러니한 것은 이러한 시대에 지식인들이 난데없이 '폴라니 앓이'를 다시 시작했다는 사실이다. 50년 전에 죽은 귀신이 다시 한 번 대유행의 국면에 접어든 것은 분명 이 험악한 각자도생 시대의 피로가 '공동체'를 꿈꾸는 전염성을 훨씬 더 크게 만들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박지형 문화평론가

◆칼 폴라니(1886~1964) 전통적인 경제 사조에 반대한, 헝가리 지식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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