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낡은 장비 입고 불구덩이로, 그마저도… 52돌 소방의 날

대구 화재진압 펌프차 66대, 18대는 사용연한 10년 넘어

9일 '소방의 날'이 52주년을 맞지만, 소방관들의 열악한 처우와 근무조건은 크게 나아지지 않고 있다. 국가는 지방사무라며 예산부담을 지방자치단체에 떠넘기고, 지방자치단체는 열악한 재정을 이유로 소방장비 투자에 소극적이다. 여야가 최근 '소방방재청 해체'와 '소방관의 단계적 국가직 전환' 등의 내용을 담은 정부조직법 개정안에 합의했지만, 일선 소방관들은 여전히 근무환경 개선 가능성에 회의적이다.

◆낡고 부족한 장비로 위험에 맞서다

대구 소방관들은 낡고 부족한 장비를 사용하는 등 열악한 근무환경에 놓여 있다.

소방방재청에 따르면 대구에는 소방 관련 차량(헬기 포함)이 모두 311대가 필요하다. 이 중 지난해 말 기준으로 95.8%인 298대를 보유하고 있어 겉보기엔 그다지 문제가 없어 보인다.

하지만 속을 들여다보면 상황은 심각하다. 소방활동에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는 펌프차는 97대가 필요하지만 66대(68%)밖에 없다. 소'중'대형 크기별로 보면 대형펌프차 15대가 있어야 하지만 1대(6.7%)뿐이고, 소형펌프차도 19대 중 4대(21.1%)만 보유하고 있다. 화학물질 누출 같은 사고에 대비할 화학차는 15대 중 11대(73.3%), 고성능화학차는 7대를 갖춰야 하지만 2대(28.6%)뿐이다. 화재진화에 필수인 물탱크차도 46대가 있어야 하지만 38대(82.6%)만 있다.

이에 반해 순찰차는 8대가 필요하지만 21대가 더 많은 29대가 있고, 오토바이는 수요가 없음에도 6대가 있다. 이 밖에도 구급차와 지휘차는 각각 7대와 2대, 보트운반 트레일러는 5대 등을 초과 보유하고 있다.

노후 차량 문제는 더 심각하다. 주력 소방차 219대 중 52대(23.7%)가 사용연한이 지났다. 특히 보유율이 떨어지는 펌프차는 노후율도 높다. 펌프차 66대 중 18대(27.3%)가 사용연한 10년을 넘어섰다. 가장 오래된 펌프차는 1999년에 도입한 2대가 있고, 이듬해인 2000년에 들여온 것도 6대나 된다. 사다리차(사용연한 12년)인 고가차와 굴절차의 노후율은 각각 42.9%(7대 중 3대)와 25%(8대 중 2대)에 달했고, 굴절차 가운데 1대는 1997년에 도입한 것도 있다.

소방관이 현장에서 직접 사용하는 진압 및 보호장비 중에는 낡은 것이 더 많다. 전기사고나 재난현장에서 감전을 막는 고무재질로 된 보호복인 '내전복'은 278개가 필요하지만 16개(5.8%)밖에 없고, 이 중에서도 12개(75%)가 사용연한이 지났다. 열로부터 소방관을 보호할 방열복도 556개를 보유해야 하지만 228개(41%)만 갖췄고, 이마저도 116개(50.9%)가 노후한 것으로 나타났다.

◆소방 지원에 눈감은 정부

소방장비가 모자라거나 낡은 이유는 정부가 소방예산을 지방자치단체에 떠맡겼기 때문이다. 2014년 전체 소방예산은 3조2천162억원으로 이 가운데 국가예산(소방방재청)은 1천157억원(3.6%)에 불과하다. 나머지 3조1천5억원은 지방예산(소방본부)에서 충당하는데, 이 중에서도 국고보조금은 고작 556억원(1.8%)뿐이다.

지자체는 예산 부담 때문에 빠듯한 지방비를 쪼개 소방장비를 마련하고 있다. 대구소방안전본부는 올해 펌프차와 물탱크차, 구조차 등 소방장비를 보강할 계획으로 43억1천만원을 책정했는데, 이 중 36억8천만원(85.4%)이 지방비다. 지난해 장비 보강에 들인 21억6천만원은 모두 지방비(보조금 지방비 예산 포함)였다. 이렇다 보니 지난해 들여온 장비는 24대에 불과했다. 이는 지난해 부족한 차와 노후화된 차가 각각 17대와 47대인 것을 고려하면 턱없이 모자란 숫자다. 보강이 절실한 대형펌프차와 고성능화학차, 사다리차 등은 1대도 도입하지 못했다.

이에 반해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들의 소방예산 가운데 국고보조금 지원율(2010년 기준)은 평균 73.6%에 이른다. 우리나라의 40배다. 국가별로 보면 뉴질랜드가 98.9%로 가장 높고, 러시아(96.9%), 영국(95%), 헝가리(92.8%), 오스트리아(86.1%), 스웨덴(81.9%) 등의 순이다. 우리나라와 달리 OECD 국가 대부분은 소방업무를 국가의 몫으로 받아들이고 있다.

◆소방방재청 해체, 단계적 국가직 전환 등에 의구심

지난달 31일 여야가 정부조직법 개정안에 합의하면서 소방방재청이 해체돼 국민안전처로 흡수되게 됐다. 이 개정안에는 지방직 공무원인 소방관을 단계적으로 국가직 공무원으로 전환한다는 내용도 포함돼 있다.

하지만 소방관들은 개정안에 대해 회의적인 반응을 보였다. 이들은 "소방방재청 업무가 국민안전처로 옮겨져도 중앙과 지방(시'도)의 이중 지휘체계는 그대로이고, 국가직 전환도 구체적인 계획이 없어 공염불에 그칠 것"이라고 입을 모았다.

소방공무원으로 11년을 근무한 대구의 한 소방관은 "중앙의 명령으로 계절마다 각종 화재'재난 업무를 해야 하고, 더불어 예산을 주는 각 시'도의 요구에 따라 각종 실적 쌓기 점검과 행사에 동원되고 있는 형편"이라며 "소방방재청이든 국민안전처든 행정직 공무원이 주도권을 쥐고 있기 때문에 소방업무의 전문성과 독립성을 보장하기 힘들다"고 말했다.

대구 수성구의 한 119안전센터에서 근무하는 소방관은 "국가직 전환을 결정할 권한이 있는 안전행정부가 기존 반대 입장을 전혀 바꾸지 않는 상황이고, 구체적인 로드맵도 없어서 실현 가능성이 낮다"며 "단계적 국가직 전환 계획은 소방방재청을 해체하면서 불거진 소방공무원들의 반발을 누그러뜨리기 위한 유인책이라는 의구심이 든다"고 했다.

공하성 경일대 소방방재학과 교수는 "정부는 소방관의 국가직 전환에 의지가 있다면 내년이나 2016년부터 전환을 시작하겠다는 구체적인 안을 내놔야 한다"며 "시'도에서 소방'안전업무를 담당하는 과를 인천시처럼 소방본부와 통합해 부처 간의 벽을 허무는 등 원활한 지휘와 업무협조가 이뤄질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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