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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의 '불' 냄새 내 삶 소명 이끌어…세 식구 한솥밥 이유미 소방교

아버지와 딸, 그리고 사위도 소방관으로서 재난 현장을 누비는 가족이 있다. 이구백(58
아버지와 딸, 그리고 사위도 소방관으로서 재난 현장을 누비는 가족이 있다. 이구백(58'소방정'사진 맨 오른쪽) 경산소방서장, 이유미(30'고령소방서 근무'사진 가운데) 소방교, 이경우(32'대구 달서소방서 근무) 소방교 가족이 그 주인공이다. 경북도 제공

"오랜 세월 소방관의 가족으로 살았지만 얼마나 힘든 직업인지를 잘 몰랐습니다. 하지만 제가 소방관이 되고 나니 이제 겨우 아버지가 어떤 삶을 살았는지 알게 됐습니다."

이유미(30'고령소방서 근무) 소방교는 소방관의 딸이다. 어린 시절 하루걸러 집에 들어오지 못하는 '바쁜' 아버지를 보면서 소방관이라는 직업이 그저 밉기도 했다.

하지만 소방공무원 5년차를 맞은 지금, 그는 자신의 직업이 자랑스럽기만 하다. 여전히 힘들고 고단한 생활이지만 자부심을 갖고 보람도 느낀다. 아버지의 직업이 원망스럽다던 딸은 커서 아버지의 길을 그대로 따라 걷게 됐고, 평생의 반려자까지 소방관을 선택했다.

이 소방교의 아버지는 이구백(58'소방정) 경산소방서장이고, 남편 이경우(32'소방교) 씨는 대구 달서소방서에 근무한다. 한 가족 3명이 소방관으로 봉직하고 있다.

1980년 임용돼 35년 가까이 온갖 재난현장을 누빈 아버지 이구백 소방서장은 경북 최고의 베테랑 소방관으로 꼽힌다. 대통령 표창을 비롯해 셀 수 없이 많은 상을 받았다. 특히 지난 2012년 구미 불산누출사고 당시 구미소방서장으로 근무하면서 불산에 직접 노출되는 위험한 상황에서도 현장을 지휘했다. 몸을 사리지 않고 불산 확산을 막은 공로로 그는 그 해 녹조근정훈장을 받았다.

"다른 친구들과 달리 저는 아버지 얼굴 뵙기도 힘들었어요. 어릴 때는 원망도 많이 했어요. 그런데 또렷한 기억이 있습니다. 잠든 사이에 느껴지는 아버지 몸에서 나는 불 냄새였습니다. 화재진압을 하도 많이 다녀서 투박해진 손길로 저를 쓰다듬던 기억이 납니다."

이 소방교는 어려서부터 아버지의 치열한 직업의식을 느껴왔다고 했다. 이 소방교는 대학 졸업 후 진로를 고민하던 중 "네가 할 수 있는 것보다는 하고 싶은 것을 하라"라는 아버지의 충고를 듣고는 그동안 아버지의 모습을 보며 자연스레 접했던 소방관의 길을 걷게 됐다. 남편도 함께 소방관 시험을 준비하면서 만나 사랑을 키워, 지난 2012년에 결혼식을 올렸다.

이구백 소방서장은 "어렵고 힘든 길을 택한 딸이 걱정이 됐지만, 저 역시 소방관으로서의 보람을 알기에 말릴 수는 없었다"면서 "이제는 사위와 함께 누구보다도 서로 마음을 잘 이해해 주는 든든한 후원자가 되어주고 있다"고 말했다. 최근 아들을 낳은 이유미 소방교는 "아들이 자라서 원한다면 소방관의 길을 말리지 않겠다"며 3대 소방관 가문의 희망도 얘기했다.

최경철 기자 koala@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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