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피규어 컬렉터 조웅 씨와 CW 갤러리 내부 모습. 1만여 점의 피규어가 전시되어 있다. 사진 CW갤러리 제공
위키피디아에서 키덜트는 '몸은 성인이지만 행동이나 취향은 어린아이 같은 부분이 있는 사람들을 가리키는 용어'라고 정의하고 있다. 1985년 뉴욕타임스에 처음 등장한 키덜트(Kidult)는 키드(Kid'아이)와 어덜트(adult'어른)의 합성어로 어른이 됐는데도 여전히 어린 시절의 감성을 가진 성인을 말한다. 우리말로는 '어린이'와 '어른'을 합쳐 '어른이'라고도 한다. 키덜트는 어린 시절의 향수를 잊지 못하고 그 경험들을 다시 소비하고자 하는 특징을 보인다. 이러한 현상은 영화, 소설, 패션, 애니메이션 등 소비문화 전 영역에서 나타난다. 전문가들은 "누구나 가진 어린 시절의 동심을 성인이 된 후에도 즐기려고 하는 것은 각박한 현실에서 벗어나 포근한 동심에서 위안을 얻으려는 심리"라고 설명한다. 키덜트 문화란 어떤 것인지, 대구의 키덜트들은 어떤 이들이 있는지 알아본다.
경산시 CW갤러리 조웅(36) 대표는 자타공인 '성공한 키덜트'다. 수차례 매체에 등장한 덕에 알려진 얼굴과 그가 보유한 1만 점이 넘는 피규어만이 그를 '성공했다'고 부르는 이유는 아니다. 그는 키덜트 문화 대중화에 힘썼다. 그동안 '피규어 수집'은 소수의 취미로만 여겨짐과 동시에 '오타쿠'(オタク'애니메이션, SF영화 등 특정 취미에 깊은 관심을 가지고 있으나, 다른 분야 지식이 부족하고 사교성이 결여된 인물)라는 부정적인 이미지가 강했다. 조 씨는 이런 고정관념을 무너뜨렸다. 그는 자신이 수집한 1만여 점이 넘는 피규어를 대중들이 즐길 수 있도록 갤러리를 만들었다. '피규어 수집'에 부정적인 시각을 가졌던 사람들도 CW라는 공간 안에서는 피규어의 매력에 빠진다.
사람들의 시선이 두려워 키덜트임을 밝히지 못하는 이들에게 조 씨는 희망이다. 조 씨를 만나 한국 사회의 '키덜트 문화'에 대해 들어봤다.
-'키덜트 문화'에 대해 할 말이 많을 것 같다. '키덜트'를 들으면 어떤 느낌이 드나?
▶키덜트보다는 '컬렉터'(수집가)라는 말을 더 좋아하지만 키덜트도 반갑다. 피규어 수집 만 13년이 넘었다. 수집을 시작할 당시만 해도 주변 아무에게도 알리지 않았을 정도로 인식이 좋지 않았다. 가까운 친구들조차 몰랐다. '오타쿠'라는 말보다는 긍정적인 뉘앙스가 느껴지지 않나?
-'키덜트 문화'란 어떤 것인가?
▶간단하게 말해서 취미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그렇게 때문에 "키덜트란 이런 것이다"라고 규정지을 말이 없는 것 같다. 취미생활이 개인에게 갖는 의미가 다 다르기 때문이다. 취미생활이 누군가에게는 잠시 머리를 식히는 시간에 불과할 수도 있고 혹은 가장 행복한 시간일 수도 있다. 혹은 나처럼 인생의 전부일 수도 있다. 캐릭터를 좋아하고 피규어를 수집한다고 해서 특별한 의미가 있지는 않다.
-흔히 만화, 캐릭터, 장난감 등은 어린이들의 영역이라 생각하기 쉽다. 어른들도 관심을 갖고 취미로 삼는 심리는 무엇이라 생각하나?
▶어린 시절, 누구나 한 번쯤 문방구에 있는 갖고 싶은 장난감 앞에서 시간을 보내본 적이 있을 것이다. 나도 부모님이 원하는 걸 다 사주는 분들이 아니었기 때문에 학창시절에도 힘들게 돈을 모아 원하는 장난감을 사야 했다. 어른이 되고 나서 스스로 구매력이 생기니까 그 시절 갖지 못했던 것들에 눈길이 갔다. 물론 그때와 똑같은 물건은 아니겠지만 지금 원하는 걸 내가 번 돈으로 사보니 어린 시절의 욕구가 해소되는 걸 느꼈다. 그러면서 자연스럽게 어린 시절 생각도 나고, 동심에 젖었다. 각박한 삶 속에서 이보다 더 좋은 오아시스가 있을까? 키덜트들의 심리도 같다고 생각한다.
-'피규어 대통령'으로 불릴 만큼 키덜트 문화의 정점에 있는 것 같다. 보통 어떤 과정을 거쳐 키덜트로 성장한다고 보나?
▶물 흐르듯 자연스럽게 흘러갔던 터라 1단계, 2단계 등으로 나누기는 어렵다.(웃음) 굳이 나눠보자면 눈으로 보는 게 시작이다. 말로만 듣던 '피규어'를 눈으로 직접 보면 그 디테일에 놀라게 돼 있다. 특히 자신이 좋아하던 캐릭터를 실물로 보면 반하지 않을 사람이 드물다. 그 후 집에 와서 인터넷으로 검색하게 되고 그러다 보면 피규어를 구입하게 된다. 피규어 하나를 사는 이 단계가 가장 강력하다. 하나를 손에 넣으면 그다음에는 남들에게 자랑하고, 남들과 공유하고 싶어진다. 카페나 지역 소모임에 가입하고 정보를 공유하다 보면 어느새 키덜트족으로 성장해 있다. 나도 12년 전 외국 여행 중 피규어 숍에서 샀던 영화 '나이트매어'(nightmare)의 '프레디'(Freddy) 피규어를 시작으로 여기까지 온 것이다.
-아직 한국 사회에서는 '키덜트 문화'에 부정적인 이미지가 있는 것 같다. 예를 들면 '오타쿠'와 비교되기도 한다. 오타쿠와 키덜트의 차이는 어디에 있나?
▶오타쿠와 키덜트의 차이점은 주변에 피해를 주느냐 아니냐에 있다고 본다. 소득에 비해 과하게 지출을 한다거나, 자신의 인생을 포기하면서 피규어 등에 집착하면 흔히 말하는 '오타쿠'다. 자신의 소득에 맞게 피규어를 사 모으는 사람들은 건전한 취미생활을 하는 키덜트다.
-한국 사람들이 '키덜트'를 바라보는 시선도 여전히 부정적인 것 같다.
▶한국에는 애니메이션을 좋아하는 것만으로도 선입견을 갖는 사람들이 꽤 많다. 그런 점에서 선입견이 없는 외국의 키덜트 문화가 부럽기도 하다. 예전에 일본에서 충격을 받은 적이 있다. 한 할머니가 지하철에서 만화책 열 권을 쌓아 두고 읽는 모습을 봤다. 그 모습에 놀라 할머니를 뚫어져라 쳐다봤는데 지하철 안에서 놀란 사람은 나 한 사람이더라. 우리나라였으면 쳐다보거나 수군거리면서 할머니의 취미생활을 방해하는 사람들이 있었을 것이다. 일본 피규어 숍에는 젊은 남녀 커플이 같이 와 서로 원하는 피규어를 각자 사기도 한다. 우리나라에서는 아직도 대부분 여성들이 '피규어 모으는 남자친구'를 색안경을 끼고 보는 것 같다.
-어떻게 바뀌어야 할까?
▶해법은 간단하다. 처음에도 말했듯 취미로 받아들이면 된다. 자신의 취미생활이 소중하듯 키덜트의 취미도 인정해야 한다. 또 전체 '키덜트'를 소수 '오타쿠'로 일반화해서는 안 된다.
-키덜트들에게 전하고 싶은 응원(?)의 메시지를 부탁한다.
▶나도 처음 수집을 시작했을 때 주변의 시선이 가장 힘들었다. 아버지는 내가 하는 모든 일을 응원해주시던 분이었는데 유일하게 피규어 수집에는 반대하셨다. 하지만 "10년 안에 인정받겠다"는 말로 설득했다. 지금 생각해보면 단순히 그 말 한마디에 아버지 마음이 움직였던 것 같지는 않다. 그 후로 자신감 있는 모습, 열심히 사는 모습을 보여드렸기에 아버지께서 믿으신 것 같다.
남들의 시선을 내 힘으로 바꿀 수는 없겠지만 행동으로는 보여줄 수 있다. 과하게 소비하지 않고 취미 생활과 더불어 내 생활, 주변 사람도 챙기는 모습을 보여주면 남들도 '키덜트'를 고운 시선으로 바라볼 것이다. 그래도 힘들면 지인과 우리 갤러리를 방문해라.(웃음) 커플들끼리 와서 여자가 피규어에 반하지 않고 돌아가는 경우는 잘 없었다.
김의정 기자 ejkim90@msnet.co.kr
※키덜트란?
1985년 뉴욕타임스에 처음 등장한 키덜트(Kidult)는 키드(Kid'아이)와 어덜트(adult'어른)의 합성어로 어른이 됐는데도 여전히 어린 시절의 감성을 가진 성인을 말한다. 키덜트는 어린 시절의 향수를 잊지 못하고 그 경험들을 다시 소비하고자 하는 특징을 보인다. 이러한 현상은 영화, 소설, 패션, 애니메이션 등 소비문화 전 영역에서 나타난다. 전문가들은 "누구나 가진 어린 시절의 동심을 성인이 된 후에도 즐기려고 하는 것은 각박한 현실에서 벗어나 포근한 동심에서 위안을 얻으려는 심리"라고 설명한다.
김의정 기자 ejkim90@msnet.co.kr
※조웅 대표는
조웅(36) CW갤러리 대표는 어린 시절 아버지와 영화관에서 '스타워즈'를 보고 디자이너의 꿈을 키웠다. 꿈은 이루어졌지만 더 큰 꿈을 품었다. 국내 광고회사에서 그래픽디자이너로 활동하던 때였다. 미국 여행 도중 들른 한 매장에서 피규어를 만난 것이다. 살아 숨 쉬는 듯한 영화 속 캐릭터들의 매력에 빠지면서 피규어 모으는 데 공을 들이기 시작한다. 그렇게 13년 동안 모은 피규어가 1만 점이 넘는다.(다 셀 수 없어 정확한 개수는 아니다) 조 씨는 2012년, 경산시 대평동에 영화테마공간이라는 의미를 가진 CW(Cinema World)를 열었다. 조 씨는 현재 국내 키덜트들에게는 '피규어 대통령'으로 불리고, 피규어에 관심이 없던 사람들에게는 '피규어 전도사' 역할을 하고 있다. 조 씨는 "어린이들에게는 꿈을 심어주고, 어른들에게는 잊고 지내던 추억을 살려주는 공간을 만들고 싶다"고 한다.
김의정 기자 ejkim90@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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