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첫 늙음 서툴지만…잘 늙고 싶던 선인의 비결

노년의 풍경/김미영 외 7명 지음/글 항아리 펴냄

옛 사람들은 늙음을 어떻게 인식했을까? 이 책은 동양의 인물, 그림, 풍속, 고전을 통해 노년의 풍경을 살펴본다. 노인이 된다는 것은 과연 현자에 도달하는 길인가. 아니면 한 존재가 밑바닥으로 곤두박질 치는 것인가.

'노인의 열 가지 좌절이란, 대낮에는 꾸벅꾸벅 졸음이 오고 밤에는 잠이 오지 않으며, 곡할 때에는 눈물이 없고, 웃을 때에는 눈물이 흐르며, 30년 전의 일은 모두 기억나는데 눈앞의 일은 문득 잊어버리며, 고기를 먹으면 뱃속에 들어가는 것은 없고, 모두 이 사이에 끼며, 흰 얼굴은 도리어 검어지고, 검은 머리는 도리어 희어지는 것이다.'

성호 이익(1681~1763)은 '노인의 좌절 열 가지'를 통해 노년을 서글픈 현상으로 보았다. 그러면서 그는 젊음이 늙음을 경멸하는 것은 '과거시험'에서 비롯되었다고 지적했다.

'소년으로 등과하는 것은 여러 사람이 다 원하고 부럽게 여겨, 미천한 자들이 우러러볼 뿐만 아니라 (젊어서 등과할 경우) 자기 집 부형까지도 억눌리게 된다. 진실로 이렇게 되지 못하면 (제아무리 덕행이 있다고 한들) 사람들이 얕볼 뿐만 아니라 자기의 처첩이 먼저 업신여기게 되니, 어찌 세도가 무너지지 않을 수 있겠는가.'

여헌 장현광(1554∼1637)은 '입술과 혀와 어금니와 이빨과 목구멍의 다섯 소리가 갖추어진 뒤에야 음운이 구비되어 언어가 이루어지는 데, 어금니가 빠지고 이빨이 빠짐에 이르면 다섯 소리 가운데 두 소리를 이미 잃게 된다. 이는 음성의 변화다. (중략) 마주한 사람의 안면을 살피지 못하고, 가까이 있는 사람의 말을 듣지 못하는 것은 이목의 변화며, 당(堂)과 뜰을 오르내림에 숨이 가쁘고, 응접하여 절할 때 넘어지는 것은 기력의 변화다. 오래전부터 알던 사람의 이름을 잊고, 옛날에 외우던 문장을 모르니 이는 정신과 혼백의 변화다'라고 했다.

장현광은 노년을 탄식하거나 늙은 모습을 희화화하기보다는 어떻게 보내야 할지 말했다.

'사무를 정지하고, 경영을 그치며, 출입과 왕래를 끊고, 응접을 적게 하며, 억지로 사려와 청력, 언어, 동작을 쓰려고 하지 말아야 하고, 앉고 눕기를 때에 따라 하고 음식을 적절히 해야 한다.' 그는 몸이 변하면 삶도 변화시켜야 한다고 말함으로써 늙음을 자연스러운 현상으로 받아들이려고 했다.

그런가 하면 조선시대 그림에는 노인이 자주 등장한다. 산수 속을 유유자적 거니는 노인, 수염 희끗한 노인 남성의 초상, 성성한 백발과 흰 수염을 휘날리는 신선 노인 등의 모습이 청년이나 여인 혹은 아이들에 비해 월등히 많다.

이익과 장현광의 예에서 보듯 문장이나 문학에서는 늙음을 벗과 가족의 상실, 안질, 기침, 쇠약, 통탄 등 불행이나 추한 형상으로 묘사하는데 반해 그림에서는 오히려 건강한 이미지, 공경 받아 마땅한 이미지로 본 경우가 많다. 이에 대해 이 책의 공동 지은이인 고연희(연세대 강사) 씨는 '늙음의 이상적 구현상을 보여준다는 점, 늙음으로써 기대한 내용을 보여준다는 점에서 오히려 결핍과 소망을 숨겨두고 있다'고 말한다.

책은 총 8장으로 구성돼 있다. 8명의 필자가 각각 다양한 장르의 자료를 통해 노년을 들여다보는 형식이다. 조선시대뿐만 아니라 중국과 일본의 노년 모습까지 다채롭게 보여준다. 이에 따르면 늙은 후에도 '아직 팔팔하다'며 자신감을 보인 사람도 있고, 젊음을 그리워하고 현재를 안타까워하며 살아간 사람도 있다. 젊은 시절 사회적 명성을 얻은 덕분에 늙어서는 '거장'으로 또 한편의 새로운 드라마를 쓴 사람도 있고, 일찌감치 은퇴하고 자연친화적인 삶을 살다간 사람들도 있다.

동양적 사유에서 늙어간다는 것은 자아의 완성인 동시에 군자와 진인을 향한 여정이었다. 동양의 옛사람들은 늙음을 안타까워하면서도 동시에 자연스럽게 받아들이고자 했다. 늙어감이 쓸모없음에 이르는 것이 아니라 덕이 깊어지고 성숙해가는 과정으로 인식했던 것이다. 특히 도가에서는 죽음과 삶을 단절로 보지 않았다. 장자는 "삶이 변하여 죽음이 되었으니 이는 춘하추동의 사계절이 순환하는 것"이라며 "삶과 죽음이 가지런히 같다"는 세계관을 제시했다. 우리나라 전통적인 사상에서는 '늙음을 슬퍼하지만 말고 스스로가 늙어가는 풍경을 바라보며 제대로 늙어가는 것이야말로 가장 훌륭한 죽음인 고종명(考終命'천명을 다 살고 죽음을 맞이함)에 이르는 길로 보았다.

책은, 태어난 자는 누구도 늙고 죽는 것을 피할 수 없다. 옛날에도 그랬고, 현재도, 앞으로도 마찬가지다. 그것은 사람이 어찌할 수 있는 일이 아니다. 사람이 어찌할 수 있는 것은 '어떻게 늙고 죽느냐'라고 말한다. 옛 사람들의 늙음과 죽음에 관한 인식을 굳이 책으로 펴낸 까닭이기도 하다. 352쪽, 2만5천원.

조두진 기자 earful@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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