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닝보(寧波)의 사업자들이 없으면 시장이 성립되지 않는다. 경제성장률 연평균 7%대를 구가하는 중국의 개혁'개방 정책의 성과를 보려면 닝보시를 보라."
중국 남동해안 항구도시로 예부터 외부세계와의 교역 관문이었으며 위야오(余姚), 츠시(慈溪), 펑화(奉化) 등 3개 자치도시와 샹산, 닝하이 등 2개 관할도시를 거느린 인구 1천여만 명의 닝보는 양쯔강 남쪽 자유경제의 중심지이다.
현재 닝보항은 세계 100여 개국 600여 항구도시와 물적'인적교류를 갖고 있으며 2013년 기준 운송량 4억9천600만t을 기록, 세계 6위의 컨테이너 물동량을 보유하고 있다. 또 중국 3대 의류 생산지 중 한 곳이며 가전제품, 플라스틱 금형기계, 문방사우의 생산지라는 명성과 세계 10대 국제회의와 전시회를 유치하는 국가지정 '위생, 정원, 환경보호, 모델' 도시로 유명세를 떨치고 있다.
지난달 20일부터 일주일간 닝보시 인민정부 초청 '외국기자단 닝보체험' 연수를 통해 '제2의 상하이를 꿈꾸는 닝보'의 속살을 들여다본다.
◆항저우만과해대교(杭州灣跨海大橋'Hangzhou Bay Sea-crossing Bridge)
2003년 착공, 2008년 완공한 항저우만과해대교(이하 대교)는 건설비 13조4천500억위안을 들여 총 길이 3만5천673m에 왕복 6차로 고속도로를 놓은 바다를 가로지르는 다리이다. 대교는 조수간만의 차이를 극복해야 하는 등 어려움이 많아 건설 당시부터 시진핑, 장쩌민, 원자바오 등 중국 고위급 지도자들의 많은 관심을 불러 일으켰고, 우리나라를 비롯해 미국, 영국, 일본, 싱가포르 등에서 공법을 배우기 위해 방문하기도 했다. 순수 자국기술로 완공해 현재 중국 과학기술의 총집합체로 여겨지는 대교는 이 때문에 중국인들에게 '중국의 힘을 세계에 과시했고 중국인의 근면성과 지혜를 구체화한 랜드마크'로 여겨지고 있다.
대교는 양쯔강 델타 지역을 중심으로 상하이, 닌징, 항저우, 닝보 등 양쯔강 남북의 주요 도시를 반나절 권역으로 묶는 경제적 효과에도 한몫한다. 대교는 상하이와 닝보의 거리를 120㎞ 단축함으로써 차로 3시간이면 두 도시를 잇기에 충분해졌으며 이로 인해 닝보는 해상과 육상의 물류 허브 도시로 발돋움하게 됐다.
공웨이웨이(孔瑋瑋) 닝보시인민정부 대외협력처 국장은 "닝보시가 역점을 두고 있는 국제화에 항저우만과해대교는 인적'물적 교류에 중요한 역할을 한다"면서 "대교는 단순한 다리가 아니라 경제'물류의 통로이며 문화'관광의 통로이기도 하다. 이로 인해 닝보는 상하이의 경제'산업'기술력을 한껏 흡수하게 됐다"고 평가했다.
◆인공섬 해천일주(海天一州)
'바다와 하늘을 하나로 잇는 땅'이란 뜻의 인공섬 해천일주는 대교 한가운데 4만1천700㎡의 면적에 세워졌으며 구조와 관광 두 기능을 한다. 플랫폼과 145.6m 높이의 관광탑이 우뚝 솟은 해천일주는 항저우만 양안 경제의 상징물로 '봉황이 날개를 펼쳐 날아가는 형상'을 띠고 있다. 플랫폼엔 대교의 설계부터 건설방식이 모형과 차트로 전시돼 있다.
관광탑 꼭대기에서 내려다본 대교는 다아이몬드형 더블탑 더블케이블과 스틸박스 거더현수교 형식으로 건설됐다. 이 같은 형식을 중국은 '장홍와파'(長虹臥波), 즉 '기다란 무지개가 파도 위에 누운 모양'으로 묘사하고 있다. 하지만 망망대해의 파도는 푸른색이 아니다. 항저우만으로 흘러드는 펑화, 위야오, 용(湧)강의 토사물로 인해 대교 아래 바다는 늘 짙은 황토색을 띤다.
◆교역의 관문, 닝보항
천혜의 항구 닝보항은 연중 약 350여 일 25만t급 화물선이 자유로이 드나든다. 만조 때는 30만t 화물선도 입항이 가능한 닝보항은 중국의 태평양 연안 해양수송의 전초기지이다.
주로 광물, 원유, 화학물 등 중국 국내 동부지역의 물류 집산지로 세계 컨테이너 물동량 세계 4위, 중국 내 3위의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
◆풍요로운 문화와 역사의 도시
중국 내 10위권 안에 드는 자유경제도시 닝보는 이에 걸맞은 문화와 역사의 유적이 풍부하다.
닝보시내 중심지에 자리한 천일각(天一閣)은 중국에서 가장 오래된 개인 서고이자 세계 3대 개인서고 중 한 곳이다.
명나라 때 병부우시랑(지금의 국방차관)을 지낸 판친(范欽)이 1561년부터 4년에 걸쳐 지은 천일각은 아름다운 정원과 전형적인 명대 건축양식을 보여주고 있으며 30만 권의 책을 소장하고 있다. 이 중 명대 지방연대기와 관리시험지 등 보물급 서적만도 8만여 권을 진열하고 있다.
천일각을 조금 벗어나면 닝보 도심 속 휴식공간인 월호(月湖)가 눈을 시원하게 한다. 월호는 시민들에게 휴식공간을 제공하기에 안성맞춤이다. 월호를 돌아 다다른 곳은 우리나라와 깊은 연관이 있는 고려사관이다. 겉보기엔 볼품없는(?) 고려사관이지만 정화 7년(1117년) 송나라 조정은 명주(明州'닝보의 옛 이름)에 이 고려사관(高麗使館)을 설립, 고려 관련 사무를 맡게 했으며 사절단에 왕래의 편리를 제공했다. 고려사관은 중국 고대 대외교류사의 꽃으로 해외문화교류의 창구역할을 했음을 오롯이 증명하고 있다. 이외에도 닝보는 우리나라 삼국시대와 고려 때 불교 전파의 중심지였다.
닝보시 베이룬(北侖)구에 자리한 닝보박물관은 닝보문화의 총집결지로 인간과 예술의 역사가 지닌 지리적 특성을 마치 하나의 연대기적 관람장처럼 꾸며 전시하고 있다. 박물관의 외형은 닝보시를 둘러싼 산세의 모양을 본떠 건축했다.
닝보시 외곽에 있는 항저우만 습지공원은 습지의 자연생태계를 그대로 옮겨온 곳으로 풍광이 아름다워 중국 드라마의 촬영장소로 유명한 곳이 되고 있다.
20세기 중국의 중요한 고고학적 발굴 중 하나로 꼽히는 허무두(河姆渡) 신석기 유적지는 중국 내에서 남방문화가 북방문화 못지않게 문명을 꽃피웠음을 보여준다. 이곳에서 발굴된 쌀알과 정교한 나무 노(櫓)는 일찍부터 발달한 닝보 지역의 농업과 항해술의 증거들이다.
당나라 때부터 닝보의 '항해표지 건물'로 시각을 알리기 위해 북을 쳤던 굴로지역의 북탑(Drum Tower)은 닝보가 '해상 실크로드'의 중요한 문화유산 도시였음을 알리는 문화유산이다.
닝보에서는 또 매년 10월 '패션주간'을 열어 유명 디자이너들의 패션쇼가 열리는가 하면, 많은 외국도시들과 경제'문화의 교류의 장을 마련하고 있다. 대구와는 2002년 우호협력도시협정을 체결했다.
'문화는 국민적 결속과 창조성의 원천이다.' 닝보시는 이 모토처럼 지금도 발 빠르게 문화와 역사 그리고 현재를 결합한 도시화와 국제화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중국 닝보에서 글 사진 우문기 기자 pody2@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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