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고맙다·1 -김희정(1967~ )
이 말 곱씹어 보면 바람이 입 속에서 툭 터지고 구름이 입 밖으로 뭉게뭉게 나오고 빗물이 눈에 그렁그렁하다
-시집 『아들아, 딸아 아빠는 말이야』, 화남, 2012.
--------------------------
말은 음성과 의미의 결합으로 구성된다. '고맙다'라는 음성에는 듣는 사람이 말하는 사람에게 베풀어준 일에 대한 감사의 뜻이 담겨 있다. 사람은 혼자서 사는 존재가 아니라 다른 사람과의 관계 맺음으로 살아가는 존재다. 남에게 도움을 주기도 하고 남의 도움을 받기도 하면서 살아간다. 의도하지 않더라도 그렇게 살 수밖에 없는 존재가 사람이다. 그러하기에 늘 고마운 마음을 갖게 되고 고맙다는 말을 하게 된다. '고맙다'는 말은 일상생활에서 습관처럼 자주 쓰는 말이기에 그 의미에 대해 깊이 생각하지 않고 지나치기 쉽다.
시인은 '고맙다'는 말을 곱씹어 보고 그 시니피에*를 시인의 상상력으로 복원하고 있다. 시인이기에 가능한 일일 것이다. 시인은 고맙다는 말 속에 바람이 있고 구름이 있고 빗물이 있다고 했다. 바람은 따뜻한 봄바람일 것이다. 구름은 솜이불처럼 포근할 것이다. 빗물은 눈물이고 연민이다. 고맙다는 세 음절의 말에 이렇게 풍성한 의미와 울림이 있음을 깨닫게 한다.
플로베르는 어떤 의미를 표현하는 데 가장 적합한 언어는 하나밖에 없다고 했다. 언어가 가장 적절한 자리에 쓰이면 감동을 불러온다. 그러나 언어가 제자리를 잃고 엉뚱한 곳에 쓰이면 재앙이다. 거짓말이 그러하다.
고객에게 상품을 파는 것이 목적이면서 '고객님, 사랑합니다'라고 말하는 건 거짓이다. 후보자가 당선되기 위해 장밋빛 약속을 하고 당선된 뒤에 약속을 지키지 않는 것도 거짓이다. 거짓의 언어가 보편적으로 쓰이는 사회는 위태롭다. 가끔 보고 싶다고 먼 길 오기도 하며 전화를 걸어서 안부를 묻는 김희정 시인에게 말한다. 고맙다.
(시인)
*시니피에=기의(記意). 기호나 사물이 의미하는 본래의 성질이나 개념.
댓글 많은 뉴스
[단독] 경주에 근무했던 일부 기관장들 경주신라CC에서 부킹·그린피 '특혜 라운딩'
최재해 감사원장 탄핵소추 전원일치 기각…즉시 업무 복귀
"TK신공항, 전북 전주에 밀렸다"…국토위 파행, 여야 대치에 '영호남' 소환
헌재, 감사원장·검사 탄핵 '전원일치' 기각…尹 사건 가늠자 될까
계명대에서도 울려펴진 '탄핵 반대' 목소리…"국가 존립 위기 맞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