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세 유럽의 붕괴와 잉카제국의 멸망 사이에는 공통점이 있다. 전염병으로 인한 인명피해가 너무나 커서 중세 유럽 및 잉카제국의 사회공동체가 파멸에 이르렀다는 사실이다. 14세기 중엽의 서양에서 무서운 전염병인 페스트 때문에 엄청난 수의 사람들이 목숨을 빼앗겼다. 흑사병으로 불리는 페스트는 1346년 크림반도 남쪽 연안에서 발생하여 전 유럽에 퍼져 나가면서 사람들을 공포 속으로 몰아넣었다. 페스트에 걸린 사람들은 춥고 떨리고 고열이 나고 의식이 흐릿해지면서 죽었다. 그 당시 프랑스 파리에는 15만 명이 살았는데 이 병으로 5만 명 이상이나 죽었다는 기록이 있다.
그때는 오늘날과 같이 의료 기술이 발달하지도 않았고, 치료약도 없던 때여서 환자가 생기면 집에 못질을 하고 불태워 버리는 것이 고작이었다. 결과적으로 유럽 인구의 3분의 1 정도가 감소해 봉건제가 무너지는 결과를 낳았다.
잉카 문명의 붕괴 원인으로는 스페인 정복자와 그들이 가지고 온 천연두를 꼽을 수 있다. 구대륙의 전염병인 천연두는 오늘날의 도미니카와 아이티를 시작으로 푸에르토리코와 쿠바를 거쳐 아메리카 대륙 전체로 퍼져 나갔다. 그 결과 잉카 제국 전체 인구의 4분의 1이 사망했다. 천연두가 나라 전체로 퍼지면서 찬란했던 잉카문명은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져야만 했다.
최근 에볼라 바이러스 공포가 전 세계적으로 급속히 번지고 있다. 에볼라 바이러스는 급성 열성감염을 일으키는 바이러스로 올 3월 서아프리카의 기니에서 환자가 발생한 이후 불과 몇 달 만에 전 세계를 위협하는 대역병(大疫病)으로 위세를 떨치고 있다.
세계보건기구(WHO)에 따르면 지난달 현재 전 세계 에볼라 바이러스 감염자 수는 1만 명이 넘었고, 사망자는 5천 명에 달한다. 특히 지난달 들어 방역체계가 잘 갖춰진 미국과 유럽 등에서도 사망자와 감염자가 잇따르면서 에볼라가 전 지구적 재앙이 될 것이라는 공포, 즉 '에볼라 공포'(Fearbola'Fear+Ebola)가 확산되고 있다.
20세기 과학문명의 발달로 질병의 원인을 알아내고 치료 약제를 개발함으로써 인류는 전염병의 공포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그러나 최근 문제가 되는 전염병은 아프리카와 같은 저개발국가에서 발생하며 이동 수단의 발달로 인해 전 세계적으로 급속히 번진다. 이제 전염병은 국가 단위의 대책으로는 한계가 있으며 국제적 의료공조와 체계적인 방역대책이 필요하게 됐다.
우리 정부도 국제의료단체와 적극적인 공조를 통해 또 다른 '에볼라 공포'에서 벗어날 수 있도록 국제적 책무에 힘써야 한다. 국제적 공조에서 얻어지는 임상 경험과 질병에 대한 과학적 지식은 결국 우리 국민의 보건안전에 귀중한 자산이 될 것이다.
고석봉 대구가톨릭대병원 산부인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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