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대장암 수술을 받고 병상에 누워있는 윤성임(가명'53) 씨. 바짝 말라버린 몸으로 죽 한 숟가락도 제대로 먹지 못하는 윤 씨의 눈에는 항상 눈물이 맺혀 있다. 윤 씨의 옆에는 몸이 마르고 함께 눈물을 흘리는 남편 김진수(가명'62) 씨가 있다. 남편은 없는 형편에 치료조차 맘 놓고 받게 해주지 못한다는 사실에 마음이 무겁다.
"상처를 많이 받은 사람끼리 만나 서로 기대며 살아왔는데 아내가 덜컥 아프니 버티기가 힘들어요. 남편이라는 사람이 옆에 있는 것 외에는 해줄 수 있는 게 없어 아내 얼굴 쳐다보기도 미안하죠."
◆서로의 상처를 감싸 안은 부부
두 사람이 처음 만난 건 5년 전쯤. 상처 많은 삶을 살아왔다는 사실에 두 사람은 마음을 열기 시작했다.
남편 김 씨는 어린 시절부터 정신질환을 앓아왔다. 초등학교 시절 어머니의 외도 장면을 목격한 후 불안증과 자해 등 일상생활을 하기 어려울 정도의 정신과적 문제가 김 씨의 삶 전체를 집어삼켰다. 성인이 된 이후에는 치료를 받으려고 노력했지만, 변변한 직장 없이 하루 벌어 하루 먹고살던 김 씨에게 의료비는 너무 큰 부담이었다.
"고등학교 시절부터 자해를 했어요. 저도 모르게 칼로 제 살을 파기까지 하니 직장을 구하는 일도 쉽지 않았죠. 치료를 하려고 해도 정신과 치료는 비용부담이 너무 커서…."
젊은 시절, 어렵사리 가정을 꾸렸지만 어린 시절 겪었던 상처가 다시 한 번 김 씨를 괴롭혔다. 전처가 어머니처럼 외도한 사실을 알게 된 것. 이혼을 하면서 김 씨는 둘 사이의 아들에 대한 친자확인 요청을 했고, 이 과정에서 아들과의 관계도 멀어지게 됐다.
"어머니로 인한 상처 때문인지 외도에 대한 강박 같은 게 생겨버린 거죠. 아들에게는 그랬으면 안 됐는데…."
그런 김 씨 앞에 나타난 지금의 아내 윤 씨는 자신 못지않게 상처입은 사람이었다. 윤 씨는 어린 시절부터 어머니 없이 아버지와 지냈다. 아버지가 재혼하자 겨우 7살이었던 윤 씨는 아들만 7명이 있는 지인의 집에서 자라게 됐다. 그 집에서 윤 씨는 그저 '식모'일 뿐이었다. 학교 문턱은 밟아보지도 못했고 집안일은 윤 씨가 도맡아 해야 했다.
섬유회사에 취직하면서 윤 씨는 더 큰 상처를 입었다. 회사 동료에게 성폭행을 당했고, 당시 사회 분위기와 주변 시선 때문에 결국 그 동료와 결혼까지 하게 된 것. 30년 가까운 결혼 생활을 하며 윤 씨는 끊임없는 폭력에 시달려왔다. 하지만 아이들 때문에 그 긴 세월을 참아야만 했다. 그러다 성인이 된 첫째딸이 어린 시절부터 전 남편에게 성폭행을 당했다는 사실을 알게 됐고, 갈수록 심해지는 폭력에 집에서 도망쳐 나왔다.
"아이들이 어렸다면 도망치지 못했겠죠. 배운 게 없어 도망칠 수밖에 없었던 게 너무 미안해요. 그 결정 때문에 결국 아이들은 모두 등을 돌려버렸으니…."
◆아내의 암 투병으로 망가져 버린 부부의 삶
두 사람은 말을 하지 않아도 마음을 알 수 있을 정도로 서로의 상처에 깊이 공감했다. 하지만 두 사람의 사랑과 달리 현실은 참담했다. 변변한 일자리가 없었던 부부는 지난 몇 년간 생활고에 시달려왔다. 남편은 정신과적 문제 때문에 한 달에 하루이틀 정도밖에 일하지 못했고, 아내가 식당일을 하면서 겨우 생계를 꾸려왔다.
살 곳조차 없던 두 사람은 처음 만나 떠돌이 생활을 하다 남편의 사촌동생 소유의 집이 비어 있다는 소식을 듣고 그곳에서 생활을 시작했다. 비어 있던 시골집은 남루했다. 재래식 화장실에다 방에는 벌레가 들끓었다. 그마저도 사촌 동생이 집의 소유권을 주장하면서 쫓겨날 위기에 처했다.
"지네가 나와서 물렸던 일도 많았죠. 사촌 동생이 집을 쓰지 말라고 하는 통에 한동안은 집 앞 공터에서 노숙생활을 해야 했어요."
노숙생활을 하는 부부의 모습에 동네주민들은 사촌 동생을 설득해 방 한 칸을 사용할 수 있도록 도왔다. 하지만 비오는 날에는 누수로 전기를 쓸 수 없고, 벽면 곰팡이가 심해지면서 주거환경은 점점 열악해졌다.
"그래도 비 피할 곳이 있다는 것만으로 감사하고 살았죠. 고생하다 보면 좋은 날도 오겠지라며 서로 위로하면서 지냈어요."
하지만 두 사람의 좋은 날은 점점 멀어졌다. 식당일을 하던 아내가 올 초 갑자기 배가 아프다며 병원을 찾게 된 것. 병원에서는 심상치 않은 증상에 정밀검사를 권했지만 부부에게는 검사받을 만한 돈이 없어 돌아서야만 했다. 이후 고통이 점점 심해져만 갔다.
아내가 아파 식당일을 하지 못하자 당장 두 사람은 끼니를 해결하기조차 어려워졌다. 아내는 하혈과 극심한 고통에 시달리다 연탄을 피워 목숨을 포기하려고까지 했다.
"얼마나 힘들었으면 그런 일까지 저질렀을까 생각하면 가슴이 미어지죠. 다 제가 능력이 없는 탓인 것 같아 눈물만 났어요."
결국 아내는 정밀검사를 받았고, 대장암 진단을 받았다. 다행히 아내는 힘든 수술을 잘 견뎌냈고 항암치료를 기다리고 있다. 하지만 두 사람의 얼굴에는 어둠이 가득하다. 의료급여가 적용되지 않아 1천만원이 훌쩍 넘는 수술비 걱정 때문이다. 하루하루 살이 빠지고 눈에는 눈물이 마르지 않는다.
"아내가 건강해지는 게 우선이지만 저도 아내도 병원비 걱정이 앞서요. 아픈 사람이라 좋은 생각만 하고 좋은 것만 먹어도 모자랄 판인데…."
김봄이 기자 bom@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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