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데스크 칼럼] 무상 복지의 허와 실

여야가 연말 예산 편성을 앞두고 무상 복지 논쟁에 몰두하고 있다.

논란의 핵심은 무상 보육이 먼저인가 무상 급식이 우선인가를 두고다. 경제 성장률이 침체되면서 세수가 줄어들고 이에 따라 무상 복지에 쓸 돈이 바닥났기 때문이다.

지난 총선과 대선을 거치면서 새누리당은 무상 보육(누리 과정)을, 새정치민주연합은 무상 급식을 공약으로 내걸었다. 여야는 또 여타 공약에 앞서 거침없이 무상 복지 정책을 시행해 왔다.

하지만 몇 년 지나지 않아 무상 복지 정책은 '재원 부족'이라는 피할 수 없는 현실에 직면해 있다. 지난해 국세수입 부족분은 무려 8조 5천억 원에 이른다. 올해 세수 부족분은 역대 최고치인 10조 원을 넘어설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국민과의 약속인 무상 보육과 무상 급식을 어떻게 할 것인가를 두고 여야는 '내 정책은 고수', '네 정책은 포기'를 주장하고 있다. 무상 복지 논쟁은 재원 마련을 위한 부자 증세로까지 이어지고 있다. 법인세를 올려 이 재원으로 무상 복지 예산을 마련하자는 주장이다. 올해 누리 과정(3~5살) 보육료 지원에 투입된 보상 보육 예산은 3조 4천여억 원이며 무상 급식 예산은 2조 6천여억 원에 이른다.

정부가 국가 백년대계를 위해 없는 돈 쪼개가며 아이들에게 밥을 먹여주고 교육 시켜주는 제도에 대해 시비를 삼을 국민은 없다.

문제는 무상 복지 정책의 현실성과 효율성이다. 한국은 엄청난 사교육비와 어린이 비만에 시달리는 국가다.

통계청이 전국 1천여 개 초'중등학교 학부모와 학생 7만 8천 명을 대상으로 조사한'2013년 사교육비'의식조사'에 따르면 사교육비 총 규모는 18조 5천960억 원으로 조사됐다. 우리나라 국내총생산(GDP)의 2%에 해당하는 것으로 선진국 0.5%의 4배나 된다. 전년도보다 사교육비 규모는 4천억 원 감소했지만 이 또한 우울하게도 저출산율에 따라 학생 수가 전국적으로 25만 명이 감소한 탓이다.

아동'청소년 비만도 국가적 문제 중 하나다.

질병관리본부의 2013년 국민건강영양조사에 따르면 우리나라 만 5∼17세 남아 가운데 비만을 포함한 과체중 비율은 25%로 OECD 평균 23%보다 높다. 아동'청소년 전체 비만 순위는 OECD 조사대상 40개국 중 12위로 나타났다.

무상 급식이 늘면서 남긴 음식 처리에 드는 비용도 2010년 85억 원에서 지난해에는 124억 원으로 증가했다. 잔반 처리 비용 증가는 공짜로 주는 음식을 남기는 아이들이 많은 탓이다.

무상 보육이나 무상 급식 모두 무상이란 꼬리표를 달고 있지만 결국은 학부모 주머니에서 나온 돈 들이다.

공교육이 무너진 탓에 사교육비 부담으로 학부모 허리가 휘는 나라에서 무상 교육을 위해 엄청난 돈을 쏟아붓는 게 우리의 현실이다. 어린이 비만 문제가 국가적 과제인 나라에서 무상 급식 재원이 없어 여야가 정쟁을 벌이는 것이 현재 우리의 모습이다. 전 세계적으로 무상 급식을 실시하는 국가는 스웨덴과 핀란드밖에 없다. 두 나라 모두 국내총생산이 2008년 기준으로 한국의 2.7배에 이른다. 미국이나 대다수 유럽 국가들이 무상 급식이나 무상 보육 제도를 시행하지 않고 있다.

상당수 선진국들은 학부모 소득에 따라 보육료와 급식료를 내고 있다. 우리는 한강의 기적을 이룬 나라다. 전 세계가 부러워할 만큼 경제 발전에서는 속도를 냈지만 국가 재원이 바닥날 만큼 복지 정책에서 과속할 필요가 없다. 차근차근 계단을 밟아가며 가장 큰 효율을 얻을 수 있는 복지 정책을 마련해야 한다.

재원도 없는 상황에서 오늘도 여야는 무상 보육이 우선인지 무상 급식이 우선인지 정답 없는 입씨름을 이어가고 있다.

무상 보육과 무상 급식의 혜택을 받고 자란 아이들이 10~20년 후에 현재의 복지 정책을 어떻게 평가할까 고민해 보자. 여야가 인기몰이식 정쟁의 덫에서 벗어나 출발부터 이상하게 꼬여버린 무상 복지 정책을 원점에서 다시 점검하길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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