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한테 맞지 않은 옷을 입어 사람들이 불편해하고, '염정아는 미스 캐스팅 아니야?'라는 소리를 하면 어쩌나 걱정했는데 그런 얘기를 듣지 않는 게 얼마나 기쁜지 몰라요."
배우 염정아(42)는 솔직히 걱정했다. 대형마트 비정규직 직원들이 부당해고를 당한 후 이에 맞서면서 벌어지는 이야기를 그린 영화 '카트'(감독 부지영, 13일 개봉) 속 선희는 그가 최근 맡았던 역할들과는 전혀 달랐기 때문이다. 도도하고 세련된 인물을 많이 맡았던 그에게 형편을 걱정해야 하는 가정주부 역할이라니…. 또 사춘기 아들을 둔 엄마라는 설정도 왠지 거리감이 있어 보일 수 있었다.
하지만 염정아는 완벽히 선희가 됐다. 이전의 다른 캐릭터는 생각나지 않을 정도다. 잔업을 더하라는 등 회사의 부당한 요구에도 말 한마디 못하고 소극적으로 일만 했던 선희는 하루아침에 해고 노동자가 되고, 투쟁 일선에 서게 된다.
염정아는 선희의 변화를 관객이 자연스럽게 이해하게 해야 했다. 그는 "다행히 순서대로 촬영이 진행돼 자연스럽게 선희와 동화됐다"며 "노동 운동을 한다고 해도 내 캐릭터를 버리고 갑자기 투사가 될 수는 없었다. 그 지점을 잘 표현하려고 노력했다"고 회상했다.
그 변화 과정은 튀지 않기에 더 현실적이다. 관객의 몰입을 방해하지 않는다. 염정아는 자신의 화려한 이미지를 제거하고, 주변에서 흔히 만날 수 있는 아줌마처럼 보이게 노력했다. 짧은 머리의 파마, 기미, 구부정한 자세 등을 설정했다. 살도 3kg을 찌웠다.
염정아는 '카트'에 참여하면서 자신이 너무나 사회와 정치에 몰랐음을 느꼈다고 고백했다. 충무로 시나리오에서 흔히 볼 수 없는 여자들의 이야기라는 점이 더 크게 와 닿아 참여했는데, 그 이후에 이 여성들의 투쟁에 감동했다. 비정규직에 부당한 일이 이렇게나 많은지 알지 못했고, 해결이 안 되는 것도 몰랐다.
"인물들 하나하나의 이야기가 마음이 아팠다"고 한 그는 꽤 많은 것을 깨달았다. 비록 계산원 아르바이트, 청소원 등의 일을 한 적은 없지만 주변 이야기를 들으면서 '내 얘기같이 표현할 수 있겠다'는 생각을 했다. 진심을 담으려 했는데 현재까진 통한 것 같다. 일반 관객에게 와 닿는 지점이 꽤 많기 때문이다. 비정규직 노동자의 설움과 투쟁은 염정아와 동료들을 통해 고스란히 표현됐다.
1991년 미스코리아 선이었던 염정아는 '카트' 안에서는 아름다운 외모를 보일 수 없었다. 염정아뿐 아니라 다른 모든 등장인물이 그랬다. 또한 흔히 여성 출연진은 예쁘게 보이기 위해서라든가 더 많은 비중을 차지하기 위해서라든가, 어떤 기 싸움이 있다고 하는데 이 현장에서는 전혀 찾을 수 없었다고 한다.
염정아는 "기 싸움은 없고 동지애 같은 게 있었다"고 웃었다. "대부분이 여성 출연진이라 편했어요. 먹을 때도, 쉴 때도 편했죠. 촬영 날 아침 전부 운동복 차림으로 나타났거든요. 분장도 10분~15분 만에 끝냈죠. 저는 집이 가까워서 출퇴근했는데, 다른 분들은 숙소에서 거의 매일 술판이 벌어지기도 했대요." (웃음)
얼마나 돈독해졌는지, 부지영 감독은 예상치도 않았던 장면을 맞닥뜨리기도 했다. 극 중 마트 직원들이 투쟁하는 가운데, 가정을 돌봐야 하는 현실에 타협한 직원 몇몇이 복귀하는 신이 있다. 3명이 복귀하는 건 이미 결정 났는데 그 비율을 높이기 위해 3명을 더 뽑아야 했다. 하지만 아무도 원하지 않았던 것. 염정아는 "'한마음으로 싸우자'였다"고 웃었다.
염정아는 아들'딸로 나온 그룹 엑소의 도경수와 아역배우 김수안 양의 칭찬도 잊지 않았다. "요즘은 타고난 연기자 애들이 많은 것 같아요. 부럽죠. 편하게 자기를 드러내는 것 같아요. 그런 게 연기에서 보인다니까요. 솔직히 경수는 연기를 한 번도 안 한 친구라고 해서 걱정을 했지만 잘하더라고요. 무대에서 표정을 보면 끼부리는 것만으로 생각했는데, 실제 만난 경수의 느낌은 또 달랐죠. 감독님이 옆에서 잘 지도해줬고, 저는 '경수가 연기를 편하게 할 수 있게만 해주면 되겠구나'라는 생각만 하면 됐고요. 수안이요? 말이 필요 없죠. 연기 잘 하지 않아요?"
도경수와 관련해 깜짝 놀랐던 일화도 전했다. 지난 10월 끝난 부산국제영화제에 초청된 '카트'는 야외극장에서 행사를 진행했다. 좌석의 많은 부분을 엑소 팬들이 채웠고, 극 중 아들 태영으로 나오는 도경수의 뺨을 때리는 장면에서 팬들은 안타까워하는 한숨과 신음을 냈다. 염정아는 "솔직히 엑소도 몰랐고, 아이돌의 인기가 그 정도인 줄은 이번에 처음 느꼈다. 깜짝 놀랐다"고 떠올렸다. 도경수의 뺨을 때린 것과 관련해 걱정됐겠다고 하니 "팬들은 당연히 연기라고 생각하고 받아들인 것 같다"고 웃었다. 그러면서 악덕 편의점장을 연기한 김희원을 언급, "저는 엄마니깐 괜찮겠죠. 편의점 주인이 걱정일 뿐"이라고 웃었다.
새로운 도전에 무척이나 만족해한 염정아. 벌써 다음 모습이 기대된다.
염정아는 "항상 새로운 역을 기다리고 있다"고 했다. 하지만 "액션은 못한다"고 선을 그었다. "깡은 있는데 체력이 안 된다"는 그는 최근 인기리에 방송됐던 MBC TV 예능 '일밤-진짜사나이' 여군특집에 참여했던 배우 김소연을 보며 남 일 같지 않았다고 안타까워했다. 물론 김소연이 악으로 버틴 것처럼, 염정아 역시 몸을 써야 하는 일이 주어진다면 악으로 깡으로 해낼 것 같다. 배우라는 이름이 그들의 무기니까.
매일경제 스타투데이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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