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출동 24시-현장기록 112] 112상황실에서 본 세상살이

필자가 경찰 생활을 한 지 올해로 갓 20년을 넘었다. 옛말에 '10년이면 강산이 두 번 바뀐다'는 말이 있다. 물론 본인보다 조직에서 오랜 세월을 보내고, 조직과 국민을 위하여 고생하신 선배님들 앞에는 내세울 게 없지만, 나름 어느 분야에서나 20년이면 약간의 경험은 있다고 자부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해 본다.

경찰 업무는 수사, 생활안전, 정보 등 여러 분야가 있다. 또 분야마다 업무에 정통하려면 전문적 지식뿐만 아니라 그 지식을 실제 상황에 잘 접목할 수 있는 직원 개개인의 풍부한 경험이 있어야 한다. 필자가 처음 경찰에 들어온 약 20년 전 아는 분들은 대부분 '경찰 하면 도둑 잘 잡고, 순찰 잘 돌면 되는 것 아니냐'는 얘기를 했고, 심지어 직원 중에도 그렇게 말하는 분들이 있었다. 속으로는 뭔가 우리 조직의 존재감을 얘기하고 싶었지만 아직 경험이 짧은 나로서는 특별히 얘기할 사건도 그런 논쟁을 이끌어갈 만한 논리도 없었다.

하지만 지금은 주변인들과 경찰 얘기가 나오면 경찰 조직의 존재감을 당당히 얘기하고 같이 근무 한 직원들이 행한 훌륭한 업적도 얘기하고 미천하지만 필자가 직접 처리한 일들도 얘기 해 주곤 한다. 가까운 친구들은 저보고 조직생활하더니만 "홍보요원이 다 되었다"고 농담하곤 한다.

필자도 초임 시절엔 수사 분야에 근무하다 그 후 교통조사, 청소년 문제, 생활안전 등 여러 분야에서 근무하였고, 올해는 112상황실에서 근무하고 있다. 특히 112상황실에 근무하며 받는 하루 약 2천500건의 신고 접수 중 안타까운 사연을 접하면서 소위 세상살이, 즉 삶이나 인생에 대하여 한 번씩 생각해 본다.

우리 경북경찰청 112상황실로 들어오는 신고 중 자살 신고는 하루에 10~20건 정도다. 자살 기도는 당시 당사자에게는 여러 가지 이유가 있겠지만 순간적으로 감정을 조절하지 못한 경우도 있을 것이다. 자살 신고의 대부분은 스스로 중지하거나, 가족이나 경찰 등의 만류로 무위에 그치지만, 불행하게도 안타까운 상황으로 이어지는 경우도 왕왕 있다. 일선 서에서 필자도 변사체 처리를 한 때도 있고, 남은 가족들이 슬픔을 못 이겨 매우 힘들게 살아가는 것을 보면서 참으로 가슴 아팠던 경우도 있었다.

자살 신고는 그 특성상 자신이 하는 경우는 드물고, 대부분 자살 위험을 감지한 가족이나 친구 등 제삼자가 하는 경우가 많은데 휴대전화 위치 추적이나 자살 기도자가 있을 만한 장소 등을 파악하여 수색한다. 자살 기도자는 보통 휴대전화를 꺼 놓는 경우가 많고, 설사 휴대전화 위치 추적이 되더라도 특정 지점이 나타나지 않는 경우가 많다. 또 자살 기도자들이 가는 곳이 산속 등 외진 곳이 많아 위치를 특정하기 어렵고 차량으로 이동하는 경우는 더더욱 수색이 어렵다.

가족 등의 전화를 받아보면 감정을 추스르지 못해 막상 전화를 해 놓고 우는 경우가 있어 직원들이 내용 파악을 하는 데 다른 사건보다 애를 많이 먹는다. 특히 팀장인 필자에게 신고 후 일정 시간이 지난 후 전화로 "찾았습니까? 언제까지 찾을 수 있나요?"라고 물을 때는 정말 곤혹스럽다. 때론 "왜 빨리 못 찾느냐"며 욕을 하고 항의하는 경우도 있다. 사실 차라리 욕을 먹는 경우는 마음이 편하다. 그렇게 해서 조금이라도 마음이 풀릴 수 있기 때문이다.

다음은 가정폭력에 대해 언급해 보고자 한다. 경북경찰청 상황실에는 하루 30~40건의 가정폭력 신고가 접수된다. 아마 우리에게 신고되지 않은 사건도 꽤 있으리라 생각된다. 전국적으로 보면 하루에 상당한 가정에서 싸움이 있을 것이라 추측할 수 있다. 대부분은 사소한 말다툼이나 폭력이지만 가끔은 흉기를 소지하는 등 큰 폭력 사건도 있어 긴장될 때가 있다.

전에는 가정폭력을 범죄로 취급하지 않고 부부간의 문제로 보아 신고하여도 경찰이 잘 개입하지 않았다. 다행히 현 정부에서 가정폭력을 척결해야 할 4대 사회악으로 규정하고 적극적으로 대처하고 있으며, 우리 경찰에서도 주무 기능을 신설하고, 접수된 가정폭력을 일회성으로 처리하지 않고 체계적으로 관리해 많은 성과가 있는 것으로 안다.

학창 시절에 교수님이 당시로는 생소한 용어인 '가정폭력'이란 말을 사용하면서 "가정폭력은 모든 폭력의 근원이기 때문에 반드시 발본색원해야 한다"며, 앞으로 가정폭력에 관하여 깊이 있고 다양한 연구가 이루어져야 한다고 강의한 적이 있다. 그때는 대수롭지 않게 여겼는데 지금 생각해보면 아주 선구자적인 연구가 아닌가 싶다. 최근 사회적으로 큰 문제가 되는 학교폭력, 군대폭력 등도 결국은 그 뿌리가 가정폭력이라 할 수 있다. 다시 말해 가정폭력을 잘 관리하면 학교폭력, 군대폭력 예방에도 큰 도움이 될 것이다.

필자도 어렸을 때 주변에서 부부싸움을 가끔 목격한 적이 있는데, 그 당시 어린 마음에 '나는 어른이 되면 절대 싸우지 말아야지' 하고 다짐하곤 했었다. 그러나 필자도 결혼한 지 20년 가까이 되다 보니 가끔 집사람과 싸운 기억이 있다. 언제 싸웠는지 기억도 잘 안 나지만, 고등학교 1학년인 큰딸이 그때 엄마 편을 들면서 아빠를 미워했다는 말을 할 때면 집사람과 딸에게 정말 미안하다. 이제는 정말 애들 보는 앞에서 말조심해야겠다는 마음이 든다. 오늘은 퇴근 후 애들이 좋아하는 치킨을 사서, 집사람과 맥주 한잔하며 오붓한 저녁 시간을 가져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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