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정민아의 세상을 비추는 스크린] 카트

대량 해고 위기 맞서…'너와 나의 이야기'

영화
영화 '카트'의 한 장면.

또 하나의 사회적 약자가 주인공인 영화 '카트'는 마트 노동자 투쟁을 다룬다. 영화는 2007년 이랜드홈에버 마트 노동자들의 장기 파업과 2011년 홍익대 청소 노동자 파업 등의 노동 이슈를 모티브로 한다. '대한민국 비정규직 823만 명, 전체 임금노동자의 44.7%, 여성 비정규직 443만 명'인 현실에서 여성 비정규직 노동자가 주인공인 이 영화는 바로 우리들의 이야기일 수밖에 없다.

다큐멘터리가 아닌, 극영화로 비정규직 노동자 투쟁을 그리다니…. 줄거리를 보니, 사회적 정의를 부르짖는 공익적 영화로 재미는 덜할 것이라는 편견이 언뜻 생겨날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런 염려는 붙들어 매 놓아도 좋다. '카트'의 강점은 재미와 의미를 모두 챙겼다는 점이다.

최근 몇 년간 사회 고발 영화의 흥행 성적이 좋았다. 2011년 '도가니', 2012년 '부러진 화살', 2013년 '변호인', 그리고 얼마 전 극장에서 내린 '제보자'까지. 이와 같은 사회 고발 영화들은 사회적 문제를 환기하면서도 재미를 놓치지 않음으로 인해 관객의 열렬한 지지를 얻었다. 이제 그 계보의 끝자리에 '카트'를 놓을 차례다.

정규직이 되기 위해 군소리 없이 성실하게 일하는 선희(염정아)는 회사 측의 비정규직 노동자 대량 해고를 앞두고 한목소리를 내기 위해 노동조합에 가입한다. 난생처음 조합원이 된 선희는 장기 파업을 거치면서 사회적 자각에 이른다. 선희 주위에는 다양한 인물 군상들이 있다. 싱글맘 혜미(문정희)는 이전 직장에서 임신으로 인해 해고되었고, 청소원 순례(김영애)는 심각한 작업 환경 문제를 안고 있다. 순박한 아줌마 옥순(황정민)은 한 가족의 가장이고, 88만원 세대 미진(천우희)은 대학 졸업 후 마트 캐셔밖에 받아주는 곳이 없다. 이들 비정규직 여성 노동자들 외에도 다양한 인물들의 어려움 또한 곳곳에 놓여 있다. 정규직인 마트 인사팀 대리 동준(김강우)의 처지도 그리 좋지는 않다. 회사는 연봉제 계약이라는 무기를 들고서 치열한 경쟁의 정글로 정규직 노동자들마저 밀어 넣는다. 선희의 아들 태영(도경수)은 급식비를 내지 못해 점심시간에 남몰래 숨어 있어야 하는 고등학생으로, 24시간 편의점에서 알바를 하고도 제대로 임금을 받지 못해 고통받는다.

이 모든 안타까운 인물들은 저 멀리에 있지 않다. 바로 나의 이야기, 내 가족의 이야기, 우리 이웃의 이야기이다. 하루아침에 직장을 잃을 위기에 처한, 더 이상 빼앗길 게 없는, 노조의 '노' 자도 모르는 그녀들이 함께 목소리를 내기 위해 난생처음 조합을 만들고 투쟁을 한다. 다양한 군상들의 이야기는 하나하나 사연을 가지고 있어 가슴에 절절하게 다가온다. 카메라는 그런 인물들에 가까이 접근하여 그들을 애정을 가지고 담아낸다.

힘겹지만 행복했던 선희가 모든 것을 잃고 인생의 나락으로 떨어질 즈음, 그녀가 일어설 수 있는 힘은 오직 약자들의 연대뿐이라는 현실적인 결론 앞에서 우리 모두는 고개를 끄덕이게 될 것이다. '노동자'라는 단어를 불경스러운 것으로 만들어버린 강자들의 세상에서 영화는 '노동'의 고귀한 의미를 다시 우리에게 되돌려준다.

'카트'를 연출한 부지영 감독은 공효진, 신민아 주연의 여성영화 '지금 이대로가 좋아요'(2008)로 호평을 받았다. '을'들의 연대, 여성들의 자매애, 약자들의 유대감이 꼼꼼하게 쌓아올려진 이야기 구조 속에 제대로 녹아들어, 영화를 다 본 후 벅찬 감동이 오랫동안 가시지 않는다. 한국 상업영화 중 처음으로 비정규직 노동자를 본격적으로 다룬 영화라는 커다란 의의는 배우들의 열연에 힘입어 더욱 진하게 다가온다. 염정아, 문정희, 김영애는 화려한 화장과 의상을 거두고 민얼굴의 소박한 차림으로 등장하고, 아이돌 스타 도경수(엑소 멤버)는 미래 '을'의 스산한 모습으로 완벽하게 녹아든다. 그들의 얼굴은 그 어느 영화나 쇼 프로그램에서보다도 훨씬 더 아름답다.

정민아 영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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