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치매 극복 황혼 행복]<9>치매와의 전쟁-일본

규정에 따른 목욕 횟수·기저귀 관리…"그룹홈은 제2의 집"

일본 오사카부 야오시에 있는 치매 노인시설인 한 그룹홈. 2층 건물로 한 층마다 10명 안팎의 노인이 생활한다. 노인들에게는 이곳이
일본 오사카부 야오시에 있는 치매 노인시설인 한 그룹홈. 2층 건물로 한 층마다 10명 안팎의 노인이 생활한다. 노인들에게는 이곳이 '제2의 집'이다.
시설관리 책임자인 마츠다 가츠코 씨가 그룹홈 노인들의 다양한 활동을 담은 사진을 보여주고 있다. 그룹홈은 매년 꼼꼼한 점검을 받도록 돼 있다.
시설관리 책임자인 마츠다 가츠코 씨가 그룹홈 노인들의 다양한 활동을 담은 사진을 보여주고 있다. 그룹홈은 매년 꼼꼼한 점검을 받도록 돼 있다.

일본 후생노동성이 추산한 치매 고령자는 2012년 기준 462만 명에 이른다. 전체 노인 인구의 15%에 이르는 수치다. 치매로 악화할 가능성이 있는 가벼운 인지장애 고령자도 400만 명에 이른다. 이들을 모두 합치면 노인 4명 중 1명꼴로 치매 증세을 앓고 있다는 뜻이다.

현재 일본에서 치매 때문에 간병서비스를 받는 노인은 300만 명 안팎이다. 그러내 2015년 345만 명, 2020년 410만 명으로 늘어날 것으로 후생노동성은 전망하고 있다. 갈수록 심각한 사회문제로 떠오르고 있는 치매에 대해 일본 사회는 일찌감치 적극적인 대응에 나섰다.

◆치매라는 말부터 바꿔라

치매는 말 그대로 풀이하면 '어리석고(癡) 어리석다(口 아래 木)'는 뜻이다. 노화의 과정에서 생긴 하나의 증상일 뿐인데, '어리석다'고 표현하는 것은 '네 탓이야'라고 나무라는 것과 마찬가지다. 이런 불청객이 찾아온 것만 해도 힘든데, '왜 치매에 걸렸냐'고 탓하는 꼴이다.

일본에서는 치매라는 용어를 쓰지 않는다. 후생노동성은 2004년 6월 '치매를 대체할 수 있는 용어에 관한 검토회'를 열었고, 그해 12월 24일 새 용어로 '인지증'(認知症)이 가장 적당하다는 보고서를 발표했다. 이를 바탕으로 관계법령이나 의학상 용어로 쓰는 경우를 제외하고는 행정용어로는 '인지증'을 사용하도록 했으며, 점차 인지증 사용 범위를 확대하기로 했다.

일본 오사카부 야오시 야마모토 가츠히로 고령복지과장은 "2005년 3월 발행한 인지증 관련 자료부터 치매라는 용어를 쓰지 않고 있다"며 "치매라는 용어는 증상을 제대로 설명하지 못할 뿐 아니라 환자에게 모멸감을 줄 수 있고, 조기발견 및 진단을 어렵게 한다"고 했다.

아울러 홍콩은 2010년 치매 대신 '뇌퇴화증'(腦退化症)이라고 부르고, 대만은 '실지증'(失智症)이라고 부른다. 중국에서도 치매보다는 실지증을 많이 사용하는 편이다. 이들 용어는 비난이나 모멸감이 없는, 발생하는 증상 그대로를 나타내는 객관적인 표현이다.

◆제2의 집 '그룹홈'에 사는 노인들

일본에는 노인요양 서비스를 전담하는 '개호보험'이 2000년 4월부터 시행됐다. 우리말로 옮기면 '간병보험'인 셈이다. 치매 증상을 보이는 노인 중에 간병이 필요하다고 판정되면, 재택 서비스나 시설 서비스를 이용할 수 있다. 재택 서비스는 도우미나 간호사'의사 등이 집을 방문해 필요한 서비스를 제공하는 것이다. 식사'목욕'재활치료 등도 받을 수 있다.

일정 등급 이상으로 판정되면 시설 서비스를 받을 수 있다. 대표적인 것이 바로 요양홈 또는 그룹홈이라고 부르는 곳에 입소해 그곳에서 다른 노인들과 함께 생활하는 것이다. 혼자서 일상생활이 불가능한 경우 말 그대로 '제2의 집'을 제공하는 서비스인 것이다.

오사카부 야오시 관계자들의 도움을 받아 그룹홈 중 한 곳을 방문했다. 일본 주택가 한 골목에 자리잡은 그룹홈은 입구에 있는 작은 간판만 없었다면 치매 노인을 돌보는 시설임을 알 수 없을 정도로 겉으로 보기에는 일반 가정집과 똑같았다. 하지만 내부 시설은 노인들이 이용하기 편리하도록 완전히 개조했다. 2층 건물이지만 계단을 없애고 엘리베이터만 가동한다. 행여 노인들이 계단을 오르내리다가 넘어질 수 있기 때문에 아예 위험요소를 없앤 것이다.

한 층마다 10명 안팎의 노인이 생활한다. 재활치료부터 숙식까지 해결할 수 있는 경로당을 떠올리게 했다. 기자가 찾았을 때 노인들은 점심식사를 마치고, 거실 테이블에 둘러앉아 한창 노래를 배우고 있었다. 노인들마다 상태가 달랐다. 겉보기에 아무런 이상을 발견할 수 없는 노인부터 의자에 힘겹게 몸을 기대고 앉아 혼자서 그림을 그리는 할머니도 있었다.

◆매년 시설 평가해 문제점 공개

시설장인 마츠다 가츠코 씨는 "이곳에서 생활하는 노인들의 일거수일투족을 돌본다. 식사부터 독서'산책'목욕'세탁까지 '캐어 플래너'(Care Planner)라고 불리는 전문 요양사가 간여한다"며 "이들은 간병 대상자 및 가족과 면담을 통해 최적의 일정을 짠다"고 했다.

전문 요양사는 대학에서 사회복지학이나 간호학을 전공해야 한다. 4년 이상 전문 교육을 받아야 정식 요양사가 될 수 있다. 자격시험 통과가 상당히 어렵기 때문이다.

거실과 바로 붙어 있는 부엌에서는 설거지가 한창이었다. 거동이 힘든 노인을 제외하고는 자기가 쓴 식기는 직접 설거지하도록 한다. 가급적 스스로 해결하는 능력을 유지하기 위해서다. 도움을 주되 필요 이상의 도움은 자제한다. 3년째 이곳에 사는 후쿠모리(83) 할머니는 "서비스에 상당히 만족한다. 자녀들에게 부담을 주지 않아서 마음도 편하다"고 했다.

목욕실은 작지만 깔끔하게 꾸며져 있었다. 일반 욕조와 달리 노인들이 쉽게 이용할 수 있도록 높이도 낮췄고, 안전을 위한 손잡이도 곳곳에 설치해 두었다. 야오시 노인복지과장보좌 니누마 사토루 씨는 "그룹홈 내 노인의 목욕 횟수와 기저귀 관리도 법으로 정해 두었다. 시설이 마음대로 직원을 줄이거나 질 낮은 제품을 쓸 수 없다"며 "매년 공무원과 전문가들이 시설을 직접 방문해 수십 가지 규정에 따라 그룹홈을 평가한 뒤 미비한 점이 적발되면 곧바로 시정조치를 내리고, 이를 지키지 않으면 온라인을 통해 문제점을 있는 그대로 공개한다"고 했다.

세이타 다나카 야오시장은 "일본에서도 인지증 문제가 심각하다. 노인이 노인을 돌보는 노노간병(老老看病) 가정도 많다"며 "2006년 4월부터 개호보험이 예방 중시형으로 바뀌었고, 보다 많은 노인들이 혜택을 누릴 수 있도록 지원을 확대하고 있다"고 했다.

글'사진 김수용 기자 ksy@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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