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세사만어] 태어남과 만들어짐

며칠 전 한 지인이 해병대에 입대한 아들의 훈련소 수료식에 다녀와서 들려준 얘기다. 그는 입대 전에 비해 훨씬 씩씩하고 밝아진 아들의 모습에 감동을 받았다고 한다. 철부지였던 아들이 불과 7주 만에 이렇게 달라질 수 있을까 하는 생각에 흐뭇해했지만, 그의 부인은 뒤에서 훌쩍훌쩍 울고 있었다고 한다. 아버지는 '남자'답게 변한 아들을 대견하게 바라봤지만, 어머니는 아들의 고생한 흔적에 가슴이 아팠을 것이다. 상황에 따라 관점이 다른 것도 있지만, 일반적으로 인간이 성장하려면 인내와 고통을 수반하기 마련이다. 일종의 성장통이 필요하다. '해병은 태어나는 것이 아니라 만들어진다'는 해병대의 구호가 흥미로운 것은, 인간이 교육과 훈련을 통해 얼마든지 바뀔 수 있음을 보여주기 때문이다.

이 구호에는 유래가 있다. 여성해방운동의 불씨를 지핀 시몬 드 보부아르가 외친 '여성은 태어나는 것이 아니라 만들어진다'에서 비롯된 것 같지만, 일본 사무라이들이 자제 교육을 위해 실천하던 훈련 모토였다.

도쿠가와 막부시대에 청년 무사의 필독서인 '부도쇼신슈'(武道初心集)에 이런 말이 나온다. '전쟁터에서 용기가 없어 가슴이 두근거리고 무릎이 떨리는 무사도 전투 경험을 쌓아 익숙해지면 이윽고 당당해진다. 타고난 용사에 비해 조금도 떨어지지 않는 무사로 성장한다. 무사는 만들어지는 것이다.'

실제 사무라이들은 아들에게 4, 5세 때부터 작은 칼을 차게 다니게 했고, '죽이는' 훈련을 시켰다. 처음에는 개, 고양이가 '첫 경험'의 대상이었고 14, 15세가 되면 죄인의 목을 베는 실습을 했다. 전투원으로 성장하기 위한 통과의례였고, 실전에 대비한 필수 교육과정이었다. 사무라이와 그 후예들이 왜 그렇게 겁 없이 칼을 휘두르고, 잔인한 행동을 서슴지 않았는지 이해할 수 있는 대목이다.

이렇듯, 인간이 만들어지는 과정 중에 가장 중요한 것이 교육이다. 해마다 느끼는 것이지만, 지난주에 치러진 수능시험을 보면서 우리 사회가 젊은 세대를 정말 잘못 만들어가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명문대에 가는 소수를 빼놓고 얼마나 많은 학생이 좌절하고 방황할 것인가. 밤늦게까지 교실에 붙잡아두고 과외니 학원이니 하면서 공부만 잘하라고 강요해놓고, 아이들에게 제대로 된 인성을 가지라고 말할 수 있을까. 우리 사회가 경쟁력만 앞세워 우리 아이들을 비뚤게 만들어가는 것 같아 괜히 서글퍼진다. 한국이 망한다면 교육제도 때문이라고 했던, 어떤 식자의 말이 떠오르는 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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