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시사 프리즘] 복지 대란

드디어 올 것이 왔다. 복지 대란이 왔다. 정치인들이 약 5년 전부터 다투어 복지 정책을 남발하더니만 드디어 터질 게 터졌다. 수십 년 전부터 공무원연금 제도에 대하여는 지속 가능성에 의문이 제기되었음에도 해결을 미루어 오다가, 이달 초 수십만 전'현직 공무원, 교사들이 여의도에서 집회를 개최한 사상 초유의 사태가 벌어졌다.

무상보육, 무상급식, 기초연금은 무상복지의 3대 시리즈이다. 약 5년 전부터 단계적으로 무상보육, 무상급식을 실시할 때도 책임 있는 언론이나 식자층에서는 복지 대란을 예상하였는데, 2014년 7월 1일부터 막대한 재정이 투입되는 기초연금이 시행되자, 몇 달도 되지 않아 홍준표 경상남도 지사를 비롯한 지방자치단체마다 복지 불이행 선언이 잇따르고 있다. 무상복지는 사실 바른말이 아니다. 무상복지에 소요되는 예산을 위해 누군가는 세금을 내든지, 아니면 적자예산을 편성하여 미래세대의 부담으로 돌려야 실현되는 정책이다.

지난해까지는 삼성전자를 비롯한 대기업의 경기가 그런대로 좋은 편이어서 세수가 균형을 맞출 수 있어 복지 예산의 확대에도 그럭저럭 버티고 갈 수 있었다. 그런데 올해부터 삼성전자의 영업 실적은 반의반 토막으로 줄어들었고, 현대중공업을 비롯한 다른 대기업도 사정은 마찬가지이다. 당연히 세수는 줄어들 수밖에 없고, 내년도 예산 편성에 비상이 걸리게 되었다. 이들 대기업이 세수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막대하다. 결국, 세수가 부족하면 복지 지출에도 영향을 끼칠 수밖에 없다.

복지의 이상은 좋지만, 실현은 매우 어려운 과제이다. 북유럽이 복지 선진국으로 알려졌지만, 과다한 세금의 부담으로 복지를 축소하는 방향으로 정책이 추진되고 있다. 우리나라도 유럽보다는 못하지만, 그동안 복지 확충의 속도는 놀랄 만큼 진전되었다. 2011년 8월 24일 오세훈 서울시장이 무상급식 찬반투표에서 패함으로써 초'중학생에 대한 무상급식이 보편화되었다. 그다음 해인 2012년에는 교육과학부 소관의 누리 과정 예산이 생겨 3세 내지 5세아에게 1인당 22만원의 보육료를 일률적으로 지급하는 보편적 복지가 시행되었다. 그 외 보건복지부 소관의 0세 내지 2세아에 대한 보육료 지원은 연령별로 차등 지급되지만 누리 과정보다 1인당 지원 금액이 더 많다.

또한, 올 7월 1일부터 65세 이상 전 국민 중 소득 하위 70%의 국민에게 매달 20만원을 지급하는 기초연금 제도가 실시되어 복지 확대의 일대 전기를 이루게 되었다. 같은 연령대 전 국민의 70%가 혜택을 본다면 보편적 복지의 한 형태라고 보아도 무방하다.

기초연금이 시행된 지 불과 3개월도 되지 않아 지방자치단체 및 시도교육청은 예산 수급에 비상이 걸려 이들 3대 무상복지에 대하여 다양한 형태로 내년 예산안 편성을 거부하고 있다. 2015년도 복지 예산이 115조5천억원으로 처음으로 전체 예산의 30%를 넘었으나, 여러 지방자치단체에서 예산이 없어 무상복지 중 일부를 지속하지 못하겠다는 복지 디폴트 선언이 나오고 있다. 무상급식을 보편적 복지의 상징으로 먼저 들고 나온 야당 책임도 크지만, 예산 수급을 예상하지 않고 무상급식보다 서너 배 이상의 예산이 드는 누리 과정, 기초연금 제도를 보편적 방식으로 도입한 여당의 책임도 크다. 한 치 앞을 내다보지 못하고 복지 정책을 남발하여 발생한 지금의 위기를 벗어나려면 무엇보다 국민에게 양해를 얻고 복지 제도 자체를 전면 재설계하는 수밖에 없다.

복지가 늘어나면 인간의 행복지수도 늘어나야 하는데, 실상은 그렇지 않다. 무상보육을 시행함에도 출산율은 높아지지 않고, 각종 복지 지원 대책에도 자살률이 낮아진다는 통계는 없다. 현재 우리는 과거 1970년대 개발도상국일 때의 어려웠던 시절을 너무 잊어버리고 살고 있다. 그때는 경제적으로는 가난하였지만 잘살 수 있다는 희망이 있었고, 새마을운동을 비롯하여 거기에 알맞은 제도가 뒷받침되어 앞으로는 잘살 수 있다는 꿈을 심어 주었다. 그 40년 뒤 국민소득은 수십 배 높아지고 복지 제도는 확대되었지만 국민의 행복지수는 줄어들었다. 복지 대란이 걱정된다.

황현호/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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