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동호동락-동굴탐험] 아름다운 동굴 생성물 -임곡굴(하)

상류의 개울을 따라 올라가다 다시 광장을 만났다. 폭이 넓은 개울 가운데에 앉기 좋은 평평한 바위가 놓여 있었다. 거기에 배낭을 내려놓고 휴식을 취하면서 허기도 해결했다. 복잡하고 조리가 필요한 음식은 동굴에는 맞지 않다. 부피가 작고, 간편하면서 든든해야 좋은 행동식이다. 보통은 삶은 계란이나 주먹밥, 초코바 같은 것으로 허기를 달래고 에너지를 얻는다. 사방에 물이 졸졸 흐르고 그 중간에 앉아 음식을 먹고 있으니 '피서 온 것 같다'는 한 대원의 말에 모두 웃음을 터뜨렸다. 한 대원은 "수박도 한 덩이 가져올걸 그랬나?" 하며 농담도 했다. 동굴에서는 움직이지 않으면 금방 체온을 뺏기기에 간단히 간식을 먹고 바로 출발했다.

바깥에서는 보통 추울 때 습도가 낮기 때문에 온도에 비해 추위가 많이 느껴지지 않지만 동굴 안은 기온만 낮은 것이 아니라 습도도 상당히 높기 때문에 체온을 빨리 빼앗긴다. 옷도 금방 젖어 두꺼운 옷을 입어도 보온에는 큰 도움이 되지 않는다. 가장 좋은 방법은 계속 움직이는 것이다. 임곡굴은 막장 쪽으로 가면 갈수록 크고 작은 광장들이 많이 나타난다.

자그마한 원룸만 한 방들이 대부분이고, 통로는 한 사람 정도 통과할 수 있을 정도로 좁다. 또 벽이 얇아 잘 울리고 습도도 높아 작은 소리도 크게 증폭해서 들린다. 노래를 해도 평소보다 성량도 좋고, 울림도 좋아 노래를 잘하는 것처럼 들린다. 흡사 자연의 노래방 같다. 심심함도 달랠 겸 돌아가면서 노래 한 곡씩 하면서 나아갔다.

탐사를 하는 와중에 혹시나 이 깊은 곳에 서식하는 생물이 있을까 하여 주변을 관찰해 보았다. 입구에서 훨씬 안쪽까지 관찰되던 쥐며느리와 징거미, 노래기 등도 잘 보이지 않았다. 확실히 동굴 안까지는 유기물 따위의 유입이 적을 것이라는 추측이 가능했다. 그렇게 물길을 따라 한 구간씩 거슬러 올라가다가 잠시 물에서 벗어나는 길이 나왔다. 전편에서 이야기했던 유석으로 인해 좁아진 구간이었다. 유석이 촉촉한 것이 아직 계속 자라고 있는, 살아있는 상태였다.

생성물이 자라면 길이 더 좁아진다. 아주 더디게 비록 느끼지 못할 정도로 미세한 자람이지만 생성물은 성장한다. 지금은 사람이 지나갈 수 있지만 길이 좁으면 인위적으로 망치 등을 이용해서 길을 디깅(digging'파냄)하는 경우도 있다.

좁은 길 뒤로 굴이 계속 이어지는 것이 확실할 때는 동굴의 훼손을 최소화하는 범위 내에서 사람이 들어갈 만한 구멍을 파내어 탐사를 진행한다. 따라서 덩치가 큰 사람은 이 정도에서 탐사를 포기해야 한다. 이번 탐사에서 이 구간에 한 명이 남게 되었다. 차라리 살이 쪄서 못 가면 억울하지나 않으련만, 타고난 큰 덩치 때문에 포기해야 하는 것이 동굴탐험에서 생길 것이라고 누가 생각이나 했을까? 이렇게 남은 대원은 혼자서 추위와 어둠, 고요 속에서 2시간은 족히 홀로 있어야 한다. 나머지 대원들은 인사를 하고 앞으로 나아간다.

다시 개울을 만났다. 저 앞 물 위로 좁은 삼각형 모양의 틈이 어렴풋이 보였다. 드디어 온몸을 적셔야만 지나갈 수 있는 구간이었다. 길이 개울을 따라 나 있었는데, 넓고 큰 바위가 위쪽을 다 막고 있었다. 지나갈 때는 물속에 쪼그리고 앉아 얼굴만 간신히 젖지 않고 통과했다. 헬멧도 벗고 지나갔다. 차가운 동굴 물이 온몸으로 스며들면서 몸이 부르르 떨렸지만, 재빨리 통과해 다른 대원들을 도왔다. 그래도 이렇게 머리라도 젖지 않고 통과할 수 있게 길이 나 있어 다행이었다. 머리를 물속에 넣고, 숨을 참은 채로 통과해야 하는 구간이면 힘이 더 든다. 수영을 못하는 사람에게는 공포로 다가온다.

그 구간을 통과해서 한 골목 더 나아가자 눈앞에 장관이 펼쳐졌다. 젖은 몸을 털어내며 주변을 둘러보았다. 온 벽이 하얀 석화로 뒤덮여 있었다. 흡사 한겨울 나뭇가지에 핀 눈꽃 같은 하얀 석화들이 군락을 이루고, 촉촉하게 이슬에 젖어 반짝이는 것이 정말 아름다웠다. 그 모습을 카메라에 담았다. 큰 것은 어른 주먹만 한 것도 있고, 바람이 한쪽으로 계속 불 때 생기는 곡석(바람에 따라 휘면서 만들어지는 생성물)도 몇 개 눈에 띄었다. 만지면 오염되고 부서지기 쉬운 생성물인 만큼 손대지 않고 눈으로만 관찰해야 한다.

동굴은 아름다웠다. 어떻게 이런 아름다운 생성물들을 만들어낼 수 있는지 신기했다. 거기서 5분 거리에 막장이 있었다. 도착한 후 시계를 보았더니 생각보다 제법 많은 시간이 소요됐다. 중간에 남은 대원 걱정도 되고, 계획상으로 나갈 시간이 되어 탈굴을 시작했다.

탈굴을 하면서 동굴의 생성물과 보존에 대해 생각해 보았다. 동굴의 길이가 길고 난이도가 있거나 하강 구간이 있는 곳, 또는 평소 접근이 어려운 동굴 같은 경우 내부 보존이 잘 되어 있다. 하지만 마을 인근에 있으면서 출입이 쉬운 동굴의 경우 도굴을 당해 아름다운 생성물들이 없어지거나 벽에 낙서를 해 눈살을 찌푸리게 하는 경우가 종종 있다. 인간의 이기심으로 이런 일들이 생기는 것이 안타깝다. 동굴탐험을 하는 경우 고의가 아니라도 무심결에 훼손을 하지는 않는지 항상 염두에 두고 탐험할 것을 당부한다.

김재민(대구산악연맹 일반등산 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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