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출동 24시-현장기록 119] 개 같은 날의 오후

어느 날 오전 9시 40분쯤, 한 낡은 2층 집의 옥탑방엔 파리들이 벌떼처럼 윙윙거리고 있었다.

"어르신의 혈압과 맥박이 감지되지 않고, 호흡이 없습니다!"

신참 구급대원인 임 소방사가 남루한 행색의 40대 사내에게 말했다.

"인공호흡을 좀…, 어, 어무이! 좀 일어나 보소!"

40대는 노인이 사망했다는 뜻을 알아듣지 못하였다. 노모의 시신을 곁에 두고 태연히 생활해 왔을 40대 사내는 이제야 분주히 움직이고 있었다. 노모의 죽음 앞에 보이는 그 나름의 성실성일 수도, 혹은 고인에 대한 예우를 다하는 그의 방식일 수도 있을 것이다.

40대가 거듭 임 소방사에게 응급처치를 요청하는 사이, 고참인 김 반장이 그 자리에서 경찰에 변사자 발생신고를 하였다. 일 처리의 순서이다.

어르신의 몸 주변으로 많은 구더기가 기어다니는 것이 보인다. 그것을 보며 임 소방사는 코를 막고 인상을 찌푸렸다. 잠시 정적이 흘렀다. 40대는 그제야 어디론가 전화를 하였다.

"○○야! 엄마가 서거(逝去) 되신 것 같다. 우야노? 어, 서거되셨단다…."

상황을 경찰에 인계한 후 돌아오는 구급차 안에서 임 소방사는 역한 냄새로 인한 거북한 호흡을 가다듬었다. 그 옆에서 김 반장이 말없이 낄낄 웃고 있었다.

"대단하십니더. 이 상황에서 웃음이 나오십니꺼?"

"웃지, 그럼 우나? 하긴 서거(逝去)라니까…. 벌써 11시가 다 돼가네. 빨랑 들어가서 밥 묵자."

그때 무전이 울렸다.

"○○동 451번지 고물상 호흡곤란 환자 출동! 지번 정확!"

재개발 사업이 지지부진하여 폐허가 되다시피 한 동네다. 돈이 될 만한 고물이 더는 나올 리 없는 동네이다. 경험이 많은 김 반장이 말하였다.

"오늘 일진이 안 좋은갑다. 임 대원! 속은 좀 괘안나?"

고물상으로 출동한 두 대원은 또다시 변사자 신고 절차를 밟았다. 망자(亡者)가 발생하면 '호흡곤란'이란 내용으로 구급신고를 하는 일이 잦다. 적절하지 않은 신고이긴 하지만, 신고 당사자에겐 난생처음 겪는 일이라 그런 점을 따질 계제도 아니다.

"오늘 어째 센터로 돌아가기 어려운 것 같은데 밥은 언제 묵노?"

"반장님. 저는 밥 못 물(먹을) 거 같은데요. 속이 울렁거려서…."

"니 간호사 경력에다 여기 구급대원 경력 2년까지, 이제 적응할 때도 안 됐나? 그래가 이 험한 일을 우예 계속 하겠노? 생각을 없애라 카이. 내 봐라. 아무 생각 없잖아."

"하하하. 반장님이 생각이 없긴 좀 없지예. 뇌수가 튀어나온 교통사고 현장에서 무슨 라면 무야 되는지를 우예 논할 수 있는지, 정말 제가 반장님 때문에 웃심더."

김 반장의 불길한 예감은 여지없이 들어맞았다. ○○아파트 투신 추정, ○○네거리 상 사망자 발생 교통사고 등을 수습하고 두 대원이 센터로 돌아온 시각은 오후 4시 40분.

"임 대원! 니 그래 쪼깬한 컵라면 묵고 되겠나? 나같이 큰사발라면 사라니까?"

"아입니더, 반장님. 입맛도 없심더."

"쯧쯧…. 그라만 니 햇반이라도 한 개 해가 무라. 내가 전자레인지로 데울 테이께."

"반장님, 괘안타니까예."

귀소 중인 구급차 안 라디오에서 흥겨운 트로트 가락이 흘러나오고, 흥얼흥얼 따라 부르는 김 반장을 보자니 임 소방사는 '저렇게 낙천적인 사람도 없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그것은 섣부른 생각일지도 모른다. 나무 등걸처럼 딱딱하게 무디어진 마음 밑에 어린아이 속살처럼 깊은 고통이 숨어 있을지도 모를 일이다. 현장활동 대원의 마음속에는 겉으로 드러나지 않는 마음의 흉터가 켜켜이 쌓여 외상 후 스트레스(PTSD)가 깊어가고 있음을 신참 구급대원은 아직 모르리라.

"○○구급 ○○동 ○○○번지 음독기도 출동! 50대 여성 지번 정확, 현장 도착 즉시 상황실로 무전보고 하세요!"

"야! 이 사람들이 오늘 날 잡았나? 정말 서거하시겠네!"

'서거'라는 말에 임 소방사의 웃음보가 터졌다. 구급차 시동을 건 임 소방사의 참을 수 없어 터져 나오는 웃음으로 수십 초 출동이 지연되는 느낌이다.

"빨리 좀 가자! 급한 기데이."

대원들이 떠난 대기실은 즉석 밥의 조리가 완료되었음을 알리는 전자레인지의 버저 소리가 세 차례 공허하게 울린다.

※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는 사람이 전쟁, 고문, 자연재해, 사고 등의 심각한 사건을 경험한 후 그 사건에 공포감을 느끼고 사건 후에도 계속적인 재경험을 통해 고통을 느끼며 거기서 벗어나려고 에너지를 소비하게 되는 질환으로, 정상적인 사회생활에 부정적인 영향을 끼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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