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목요일의 생각] 고향친구

몇 주 전 고향친구 모임에 갔다 왔다. 그들을 만나면 그냥 좋다. 고향친구가 좋은 건 아마 어릴 적 추억을 공유하고 있기 때문이리라. 그날은 3년 동안 모임에 나오지 않던 친구 A가 보였다. 그는 부산 전자부품회사에 다니다 3년 전 정리해고된 친구였다. 친구는 만나자마자 '미안하다'는 말부터 했다. 연락을 끊은 것도, 계금에 손을 댄 것도 미안하다고 했다. 그러면서 용서해 달라고 했다. 친구는 "계금은 딸아이 대학 등록금이 너무 급해 유용했다"고 했다. 3년 동안 투쟁해 고등법원에서 승소했다며 이제 모든 것이 끝났다며 말을 흐렸다. 그러고선 소주잔을 연거푸 들이켰다.

술이 몇 잔 들어가자 얼굴이 불콰해진 친구는 그동안 마음고생한 사연을 털어놨다. 그가 회사로부터 해고통지를 받은 것은 2011년 11월. 처음에는 그 사실을 아내와 두 딸에게 숨겼다고 했다. 그는 "죽기보다 말하기 힘들었다"고 했다. 고민 끝에 부당해고에 맞서기로 작심하고는 아내에게 "힘들겠지만 이해해 달라"고 말하고 바로 동료들과 서울 본사 앞 천막농성과 회장 자택 앞 노숙투쟁, 부산시청광장 투쟁을 하며 부당해고에 맞섰다고 했다. 2012년 5월 말에는 부산에서 서울까지 29박 30일간 700㎞ '희망 국토대장정'을 하기도 했다고 했다.

지방노동위원회와 중앙노동위원회에서 이겼고, 9월 24일 서울고등법원에서 전원이 부당해고라는 판결을 받아냈다. 당연하고 정당한 판결이지만 지난한 시간이었다고 회고했다. 특히 회사가 2심에서 대리인을 김앤장으로 바꿨고 재판장이 김앤장로펌 출신이어서 더 어려웠다고 했다.

친구는 말이 많아졌다. 정당한 권리를 주장하는 노동자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여야 한다며 목소리를 높였다. 파업 때문에 조금은 불편스럽지만 그들의 정당한 요구와 법에 보장된 권리가 나에게 해가 되거나 불편이 가해지더라도 조금은 감수할 수 있어야 한다고 했다. 친구는 서울에서 노숙투쟁을 하면서 겪은 서운한 일화를 들면서 "누구든 우리처럼 될 수 있는데 쳐다보는 눈빛이 너무 싫었다"고 했다.

친구는 기자에게도 원망스러운 말을 쏟아냈다. 그는 파업 때마다 시민불편 운운하며 파업의 부당성만을 보도하는 보수 언론이 저주스럽다고까지 했다. 그러면서 "세상에 아무한테도 피해가 가지 않는 파업이 존재하냐?"고 되물었다.

친구는 대법원에서 2심 판결대로 확정되더라도 또다시 시련이 있을 거라고 했다. 회사 측이 이런저런 구실을 대며 법원 판결대로 하지 않을 것 같다는 것이다. 그는 "너무 힘들어 또다시 그 오랜 시간, 끝없는 고민, 차가운 시선, 가족들의 고통을 더 이상은 견뎌낼 수 없을 것 같다"고 했다.

이날 친구는 취했다. 그는 대머리에 듬성듬성 난 머리카락을 쓸어올리며 "이젠 좀 쉬고 싶다"고 했다. 친구는 대법원 판결이 나고 3년치 봉급을 받으면 술 한잔 사겠다고 했다. 우리는 친구의 소망대로 이뤄지기를 간절히 기도하기로 했다. 우리는 고향친구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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