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사필귀정] 어떤 세 나라의 복지 이야기

싱가포르에 사는 친구가 얼마 전 밴드에 사진을 한 장 올렸다. 군복 입은 아들과 나란히 찍은 사진이다. 한국 국적인데 싱가포르 군복 차림이라니 좀 의아했다. 친구의 글에서 궁금증이 풀렸다. 싱가포르에서는 18세가 되면 모두 징집 대상이다. 장애인 빼고 모두 군대에 가야 한다. 징집 연기도 안 되고 영주권 가진 외국인도 예외 없다. 인구 350만 명 중 현역 군인은 징집 병력 4만 명을 포함해 7만 명이 넘는다. 국민 50명 당 군인 1명꼴이다. 외국인에게도 병역 의무를 지운다는 것은 그만큼 국가안보가 중하다는 소리다. 하지만 속사정을 보면 저출산 문제도 한몫한다.

싱가포르의 합계출산율은 1.2명이다. 2013년 기준 1.19명인 우리와 같은 처지다. 그러나 싱가포르의 저출산 정책은 우리보다 훨씬 웃길 이다. 정책만 231개 된다는 우리의 저출산 정책을 보면 백화점도 이런 백화점이 없다. 하지만 싱가포르는 남녀 만남에서부터 결혼과 주거, 임신'출산, 양육에 이르기까지 전 과정을 정부가 패키지로 서비스한다. 1987년부터 출산장려책을 세워 아이 많이 낳으라고 권유해도 출산이 늘지 않자 지난해 아예 환경을 바꾸는데 초점을 맞췄다.

싱가포르 국민 중 생애 첫 주택 구입자는 우선분양권과 함께 보조금을 받는다. 결혼한 부부는 임신'출산 기간에 드는 의료비도 지원받는다. 자녀를 낳으면 축하금 6천~8천 싱가포르달러(약 500만~670만 원), 취업 여성이 아이를 낳으면 본인 소득의 15~25%의 양육지원금도 받는다. 자녀 수에 따라 세액공제 혜택도 있다. 어떤 성과를 낼지는 두고 볼 일이지만 실효성은커녕 국민 헷갈리게 하는 우리 정책보다는 백배 낫다.

내친김에 '날 때부터 금수저 입에 문' 얘기 한마디 더 하자. 카타르 이야기다. 2013년 기준 1인당 GDP 9만6천 달러로 세계 3위인 카타르는 석유와 천연가스 때문에 대박 난 나라다. 인구라고 해봐야 200만 명(카타르 국적자는 절반도 안된다) 조금 넘으니 대구보다 적다. 돈 있고, 인구 적겠다 무상복지니 뭐니 머리카락 뜯고 싸울 일 전혀 없다.

카타르 남성이 결혼하면 죽을 때까지 정부가 매년 10만 달러의 소득을 보장한다. 여성은 남성의 5분의 1 수준만 준다. 이는 여성의 경제적 자립을 어렵게 해 결혼하도록 만들기 위한 꼼수다. 아이를 낳으면 출산수당이 10만 달러다. 의료비'교육비는 전액 무상이고 수도와 전기, 가스 등 공공요금도 공짜다. 다만 이혼할 경우 양육비 등 모든 지급액이 절반으로 줄고, 카타르 국적자에게만 복지혜택을 준다는 게 흠이라면 흠이다. 우리는 꿈도 꾸지 못할 일이지만 이런 사례도 있다는 점만 참고하시라.

최근 '신혼부부에게 집 한 채' 주자는 새정치민주연합의 정책 제안에 귀가 솔깃한 사람 많을 것이다. 말대로만 된다면 카타르가 부럽지 않다. 그런데 말 꺼내기가 무섭게 뒤끝 작렬이다. 여당은 무슨 돈으로 주느냐며 걸고넘어지고 국민들은 무상 급식'보육한다면서 정부와 지자체가 서로 돈 내라는 판에 가당키나 한 소리냐며 고개를 가로젓는다. 새정치연합 문희상 의원은 "우리는 무상 '무'자도 꺼낸 적 없다"며 법적 책임을 묻겠다고 되레 언론에 호통을 치는 꼴이 거의 코미디 수준이다. 같은 당의 김진표 전 의원은 "아무리 조급해도 슬로건 위주의 정책 발표는 야당의 신뢰만 갉아먹을 뿐"이라며 "불쑥 입 밖에 낼 게 아니라 소득구간별로 정책을 다듬어가야 한다"고 훈수를 뒀다.

야당의 '진의'대로 임대료만 받고 신혼부부 집 걱정을 덜게 해준다고 출산율이 높아질까. 아이 키우는 데 드는 각종 부담이 줄어야 하고, 아이가 행복하게 살 수 있다는 확신이 서야 아이를 낳든지 말든지 하지. 재원 마련에서부터 세부 실행계획까지 깊은 고민도 없이 한 번 던져보는 식이라면 실현 가능성 여부를 떠나 난센스다. 돈 없으면 머리라도 잘 쓰든지, 아니면 여야가 협력해 제대로 된 정책 궁리라도 할 일이지 맨날 말꼬리만 잡다가 날 샐 건지 묻고 싶다.

여당도 야당의 제안을 마냥 포퓰리즘으로 몰고 갈 게 아니라 서로 머리를 맞대고 더 실효성 있는 정책을 만들어 보자고 역제안해야 한다. 초당적으로 대처해도 될동말동할 판에 서로 엉터리라며 욕하는 것은 우습다. 상식이 통하지 않는 나라 꼴에 아이 낳을 정신이 있다면 그게 더 이상하지 않나. 참, 엉터리 정치에 그놈의 복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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