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0년대 미장원에서 흔히 볼 수 있는 풍경이 하나 있다. 큰 고무 대야에 물을 받아놓은 뒤 그 안에 물에 뜨는 장난감 몇 개를 띄워놓는다. 그 안에 아이를 앉혀 놓은 뒤 아이가 장난감에 정신이 팔려 있으면 그때 미용사가 재빠르게 아이의 머리손질을 시작한다. 날 선 가위가 사각사각 머리카락을 잘라내는 소리와 '윙' 하는 이발기 소리가 아이 귀에 들리기 시작하면 아이는 겁을 먹고 울음을 터트린다. 아이의 엄마는 물속 아이를 어떻게든 달래고 몸부림치는 아이를 어떻게든 고정시켜 머리손질을 계속한다. 그렇게 하다 보면 아이, 엄마, 미용사 모두 진이 빠진 채 머리손질이 마무리된다. 그나마 요즘은 태블릿 PC에 '뽀로로'나 '라바'와 같은 어린이들이 좋아할 애니메이션을 다운받아 틀어놓는다고 한다.
◆얌전히 머리손질 받는 비결
대구 중구 대봉동 대백프라자 8층에 위치한 어린이 전용 미용실 '메쟝팡-석'에서는 아이들이 머리손질을 할 때 함부로 몸부림치거나 울지 않는다. 아이의 부모, 미용사, 고모, 할머니가 달려들어도 울부짖고 몸부림쳐서 머리손질을 포기해야 했던 아이도 이 미용실에서는 얌전하게 머리를 깎고 갔다. '메쟝팡-석'을 운영하는 이기조(76) 씨와 이 씨의 아들 안태우(45), 딸 안선영(43) 씨는 입을 모아 이렇게 이야기했다.
"비결은 따로 있지 않아요. 일단 아이가 미용사를 믿게 만들어야 하죠."
이 말이 잘 이해가 되지 않아 어리둥절해하던 중, 손님이 들어왔다. 두세 살쯤 돼 보이는 아이였다. 아들 태우 씨와 딸 선영 씨는 아이를 일단 자리에 앉히더니 아이가 좋아할 만한 애니메이션이 재생되고 있는 태블릿 PC를 앞에 놓고 부모는 뒤쪽으로 물러서게 했다. 선영 씨는 아이에게 "귀엽다"거나 "여기 보세요"라며 방긋방긋 웃으며 아이의 시선을 빼앗기 시작했다. 그러는 와중 태우 씨는 아이의 머리를 재빠르게 손질해냈다. 10~15분이 지났을 때쯤 아이의 머리는 이미 손질이 끝나 있었다. 이 모습을 기자와 같이 지켜보던 이기조 씨는 "아이 머리를 손질할 때는 부모가 아이 시야에서 벗어나게 만드는 게 비결"이라고 말했다.
"아이들이 제법 영리해요. 부모가 옆에 있으면 머리 만지는 사람 속에서 자신을 구해 줄 사람은 부모밖에 없다는 생각에 울기 시작하거든요. 차라리 부모가 없으면 조금 찾다가 눈물을 그치고 체념 비슷한 마음 상태가 돼요. 그때 재빨리 머리를 손질해주는 거죠. 머리를 손질하면서 아이에게 계속 '조금만 참으면 끝난다. 우리는 무서운 사람이 아니다'라고 믿음을 줘요. 그래야 아이도 견디고 빨리 손질을 끝내죠."
◆대를 이어 오는 집
이 씨는 22년째 같은 자리에서 어린이 전용 미용실을 운영하고 있다. 이 씨의 말에 따르면 대구에 어린이 전용 미용실은 이곳 하나뿐이란다.
"맨 처음에는 '봉사하는 마음'으로 시작했어요. 아이 머리를 손질해주는 곳이 없으니까 내가 한번 해 봐야겠다는 생각에 어린이만 상대하는 미용실을 차렸었죠. 그게 벌써 22년이 지났네요. 저희 미용실을 보고 다른 곳도 '한번 차려보고 싶다'며 저에게 조언을 듣거나 비결을 배워 간 사람들이 많았지만 성공한 사람은 드물어요. 아이들을 상대한다는 건 보통 인내심으로 되는 게 아니거든요. 요즘은 다른 미용실에서 아이 머리를 제대로 손질 못 해서 우리 가게로 오는 경우가 많아요. 그래서 '우리라도 해 주자'는 마음으로 가게를 운영한답니다."
이런 이 씨 가족의 마음이 통해서일까. 요즘은 어릴 때 이 씨가 머리를 깎아준 손님이 자신들의 아기를 데리고 와서 머리를 맡기는 경우도 종종 경험한다. 이 씨에게 머리손질을 받은 아이들이 커서 전국 각지에 흩어져 있다가 다시 이 씨를 보러 오기도 한다. 심지어는 미국, 호주처럼 해외에서 이 씨를 보고 싶어 찾아오는 경우도 있다.
요즘 미용실에서 주로 일하는 사람은 태우씨와 선영 씨다. 이 씨도 미용실에 자주 나오지만 요즘은 복지시설에 봉사활동을 자주 나간다. 어린이 전용 미용실도 태우 씨와 선영 씨가 가업으로 이어 계속 아이들의 머리를 맡아주었으면 하는 게 이 씨의 바람이기도 하다.
"자식들도 이 일을 계속 해 나갈 수 있으면 하는 바람이 클 수밖에 없는 게 대구에서는 아이들의 머리를 만져주는 곳이 우리 가게밖에 없으니까요. 저한테 머리를 맡겼던 아이들이 다 커서 '어머니 같다'며 찾아올 때는 또 마음이 짠해요. 그래서 제 자식들이 계속 이 일을 해 줬으면 해요. 가능하다면 제 능력을 보자기에 싸서 자식들에게 주고 싶을 정도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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