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20여 년 전 조선의 홍문관 부교리 최부(崔溥)와 중국의 진사 장푸(張輔)는 유서깊은 한'중간 우호교류의 새 장을 열었습니다." 중국 저장(浙江)성 닝보(寧波)시 닝하이(寧海)현에 사는 향토사학자 통장회이(童章回'81) 씨는 한'중 우의의 신기원을 연 역사적인 장소가 바로 닝하이라고 강조한다. 그것은 조선에서 표류해온 최부 일행이 닝하이에서 장푸 등 관민의 위로와 격려 속에 절망과 비탄에서 벗어나 명나라 관원의 호송을 받으며 운하와 육로를 따라 북상, 베이징(北京)에서 명 황제를 알현하고 무사히 귀국하게 된 사실에서 기인한다.
팔순의 향토사연구가 통 씨는 최부의 선비로서의 면모와 이를 알아본 중국 진사 장푸의 안목을 강조한다. 특히 조선의 사대부다운 최부의 의연한 언행은 물론 중국 고전에 대한 해박한 지식과 고구려의 항쟁 등 우리 역사에 대한 자부심은 중국 관리들을 감동시킬 정도였다고 한다.
통 씨가 최부와 표해록 연구에 푹 빠지게 된 계기는 1997년 6월 시행된 최부 표류기념
한~중 뗏목 표류탐사. 그때부터 최부라는 조선 선비에 관심을 가지고 장푸가 남긴 '송조선 최교리서'(送朝鮮 崔校理序) 등 명'청시대 역사서를 뒤졌다. 최부에 대한 기록을 발췌해 저장대 한국문화연구소와 북경대 꺼전쟈(葛振家) 교수팀의 자료조사와 현장답사를 거쳐 '최부표류사적비'(崔溥漂流事迹碑) 건립으로 이어지게 된 것이다.
"최부 일행에 대한 명나라 관원의 공식적인 보호와 호송이 시작된 곳이 닝하이였습니다. 그중에서도 최부가 북상하면서 지나간 훼시순검사(越溪巡檢司) 고성(古城) 유적 인근인 웨시소학교 경내가 역사적 의미와 안전성을 모두 갖췄다는 판단에서 교정 오른쪽 모퉁이에 사적비를 건립하게 된 것입니다." 2002년 7월 웨시소학교에서 사적비 제막식이 열렸을 때는 한국에서 온 최부의 후손들을 비롯한 108인의 표해탐방단 등 한중 관계자 수백 명에 참석해 성황을 이뤘다고 한다.
닝보시 닝하이현은 고대로부터 한국과 역사적 교류가 활발했던 곳임을 주목해달라는 통 씨는 자신이 최부를 연구하고 한중 우호교류를 강조하는 이유는 바로 '평화로운 세상을 위해서'라고 의미 있는 웃음을 지었다.
조향래 기자 bulsajo@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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