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名 건축기행] <45>북성로 믹스카페 -도심재생 패러다임의 현주소

버려진 도심 창고, 예술로 채웠다

시민이 주도하고 행정과 전문가가 이를 보조하는 방식의 도심재생 프로그램은 최근에 북성로를 중심으로 전개되고 있다. 이는 대구 원도심의 재생가능성을 보여준다. 이를 통해 도심에 방치되거나 창고로 사용되었던 공간이 삶을 되돌아볼 수 있는 문화공간으로 재활용되는 기회가 만들어질 수 있다.
시민이 주도하고 행정과 전문가가 이를 보조하는 방식의 도심재생 프로그램은 최근에 북성로를 중심으로 전개되고 있다. 이는 대구 원도심의 재생가능성을 보여준다. 이를 통해 도심에 방치되거나 창고로 사용되었던 공간이 삶을 되돌아볼 수 있는 문화공간으로 재활용되는 기회가 만들어질 수 있다.

대구의 도시화와 산업화의 상징처럼 인식되어 온 북성로, 250만 명의 대도시를 이루기까지 대한민국의 대도시가 겪었던 산업화의 거대 물결 속에서 하루도 빠짐없이 숨 가쁘게 달려온 그 길이지만 지금은 처진 어깨를 한 은퇴한 아버지의 뒷모습처럼, 도심의 거리라고 하기엔 왠지 어울리지 않은 모습을 지닌 길이 됐다. 그 옛 읍성로 한가운데에 밤이 되면 조명발과 더불어 두드러지게 멋진 중년신사의 모습을 닮은 근대건축물이 눈에 들어온다. 오래전에 1층에 상가, 2층에 태극다방, 3층에 당구장이었던, 최근 오랫동안 사용되지 못하고 버려져 있던 공간이 대구 중구청에서 진행하는 리노베이션 사업의 일환으로 믹스카페협동조합으로 다시 태어났다.

얼마 전 젊은 시절 이 일대를 활보했던 중장년 여러 명이 모여 다양한 직업과 취미생활을 공유하고픈 공간을 꿈꾸다가 현재의 건축물을 대하고서 이를 활용한 복합공간을 꿈꾸게 되고 이에 'MIX'가 만들어진 것이다.

믹스카페 북성로는 3개의 번지로 이루어진 필지로 일제강점기 건물과 1950년대 지어진 건물이 공존하는 공간이다. 1층 카페의 전면부 40-6번지는 1950년대 철근콘크리트의 근대양식으로 지어졌으며 전형적인 입면파사드의 비례와 창문, 난간을 지닌 건축물이다. 1955년 완공되었다는 표지석이 옥상 계단탑에 새겨져 있으며, 주민들의 고증에 의하면 완공된 후 주택으로 사용되다가 1층에 볼트를 판매하는 평화산업사가 자리 잡았다고 한다. 이후 1970년대 초'중반부터 40여 년간 선아산업사가 들어와 영업하였으며, 2층은 태극다방, 3층은 당구장으로 오랫동안 사용되었다고 전해진다. 41번지, 카페의 후면부 작은 중정은 일제강점기 합자회사 소림화왕원(小林花王園) 소유의 땅이었다고 한다. 마당 동편의 목조건물이 위치한 42번지에는 일제강점기 때 지어진 건물이 3분지 1 정도 남아 있으며, 1910년대 식민지 초기의 일식 목조건물로 추정하고 있다. 믹스카페 좌측에 위치한 동일농잠구의 뒤편에 소속된 건물이었지만 현재는 믹스카페 필지로 되어 있다. 동일농잠구에 편입된 번지의 건물부는 개축되었지만 믹스카페에 연결된 건물부는 목조 원형을 유지하고 있다.

고증에 의하면 이곳은 1915년 3월 대구어채주식회사의 주소지로 등록된 곳으로, 대구어채주식회사의 사장은 기무라 다케타로(木村竹太郎). 지배인은 니시이 사다하치(西井定八)였으며, 기무라 다케타로는 원정(元町, 북성로)에 상당히 많은 토지를 소유한 대지주였으며 전당포 및 대금업을 하는 기무라지점(木村支店)의 점주이기도 했다. 기무라는 1906년 1월 대구에 이주했으며, 1910년 무렵 대구인쇄합자회사에도 관여했다. 처음부터 투자의 목적으로 토지를 대량 매수했으며, 건물 설립 후 임대가 주요 사업이었다. 1907년 3월 초대 상업회의소 의원이기도 했다. 1927년 대구어채는 북성로 21번지로 이전하였고 같은 해 합자회사 시게마쓰상점(重松商店)이 이곳에 자리 잡았다.

해방 이후 우여곡절을 겪으면서 주거 또는 창고로 사용되었다가 현재에 이르렀으며, 다행히도 원형을 유지한 채로 개발의 압력에서 살아남을 수 있었다. 처음 복합공간으로의 활용을 위한 계획에서는 앞동 3층의 철근콘크리트 건물에 중점을 두었지만, 뒷동의 덧씌워진 외피를 해체하면서 오히려 목조건축물에 더 많은 시공비를 지출하게 되었다. 결과적으로는 앞동의 철근콘크리트 건축물과 중정, 그리고 목조건축물로 이어지는 공간의 전이와 함께 'MIX'된 복합공간이 만들어지게 되었다.

앞동의 철근콘크리트 건축물의 파사드는 북성로에 접해 있는 건축물 중에서 비례가 가장 아름다운 건축물이다. 가능한 한 원형을 살리려 노력한 흔적이 보이며, 내부에 들어서면 카운터와 함께 강화유리로 덮인 와인 저장고로 사용하는 지하공간이 호기심을 자극한다. 안쪽으로 햇살 가득한 작은 중정에 이끌려 들어서게 되면서, 앞동 2층으로 오르기보다 자연스럽게 중정을 거쳐 마당 한쪽에 놓여 있는 계단을 통해 마당을 두루 돌아 2층 목조건축물에 이르게 된다.

건축물은 2동으로 분리되어 있지만 동선상에서는 앞동을 거쳐 중정, 다음은 1층 목조건축물의 회합실, 다시 중정을 거쳐 계단을 통해서 2층 목조건축물의 발코니와 다다미방을 거쳐 앞동의 2층과 연결되며, 이어서 3층의 갤러리, 옥상에 이르게 되는 긴 동선을 경험하게 된다. 각 동별로 별도의 동선으로 나누기보다 2동의 건축물과 중정이 서로 유기적으로 섞여 있어 복합공간의 의미를 더해주고 있다. 내부마감은 건축물의 원형을 근거로 한 시간성을 드러낼 수 있도록 하였다. 회벽 위의 오래된 페인트 자국, 지붕의 석고 몰딩, 목조지붕틀, 전통 흙벽 및 회벽마감, 그리고 거친 시멘트벽 등은 이 건축물의 역사를 말없이 보여주고 있다. 건축물 외에도 여기저기에 놓인 오래된 물건들이 과거를 회상하게 하는 소품으로 공간을 풍요롭게 만들어 내고 있다.

공간이 만들어진 이후 여러 번의 전시회와 공연이 이루어졌으며, 지속적인 프로그램이 마련되고 있다. 도심 내에서 방치되거나 창고로 사용되었던 공간이 삶을 되돌아볼 수 있는 문화공간으로 재활용되고 있음은 도심재생의 새로운 패러다임으로 자리 잡아가고 있다고 할 수 있다. 다른 도시에서처럼 관 주도의 정책이 아닌 시민이 주도하고 행정과 전문가가 이를 보조하는 방식의 프로그램은 시설 위주의 개발정책에서 프로그램 우선 지원방식으로의 전환을 의미하며, 최근에 북성로를 중심으로 한 주민들의 관심은 대구 원도심의 재생가능성을 시사한다고 할 수 있다. 대구 원도심의 정체성을 드러낼 수 있는 여러 해법이 있을 것이며, 믹스협동조합은 새로운 패러다임을 보여주기에 충분하다.

북성로에 면해 있는 많은 근대 건축물들을 보면서, 북성로의 옛 사진 속 멋진 도시 가로 풍경을 연상해본다. 동성로가 젊음의 거리라면 북성로는 시민의 거리로 거듭날 수 있지 않을까? 자식들과 함께 아버지 어머니가 찾아올 수 있는 거리로….

글·사진 도현학 영남대 건축학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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