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 4월 대구에 사는 40대 주부 A씨는 술만 마시면 사납게 돌변하는 남편 때문에 자정이 넘은 시간 급히 경찰지구대를 찾았다. 잠시 피해 있는 게 좋겠다고 생각한 A씨는 같이 사는 친정 부모와 어린 자녀 둘도 집 밖으로 데리고 나왔다. 경찰은 A씨와 친정 부모, 자녀가 머물 만한 쉼터를 알아봤지만 모두 '친정 부모 입소는 규정상 불가능하다'며 난색을 표했다. 이에 경찰은 '피해자 임시숙소 지원사업'으로 미리 협조를 해둔 숙박업소로 이들을 안내했다. 그들은 3일간 이곳에 머문 뒤 집으로 돌아갔다.
A씨는 "남편이 평소에는 온순하다. 하지만 술만 마시면 사납게 변한다. 그럴 땐 술에서 깰 때까지 일단 피하는 게 최상책이다. 막상 집을 나오면 갈 데가 없는데, 경찰이 이런 세심한 부분까지 신경을 써줘 정말 감사하다"고 했다.
경찰의 '임시숙소 지원사업'이 갈 곳 없는 범죄 피해자들에게 안식처가 되고 있다.
경찰청은 올 4월부터 범죄 피해 후 집에 계속 있으면 2차 피해의 위험이 있는 사람들을 전국의 각 경찰서와 협조를 해둔 숙박업소로 안내해 머물도록 하고 있다. 이는 긴급한 상황이 발생해 집을 나왔지만 시민단체나 지방자치단체 등이 운영하는 쉼터에 들어갈 조건이 되지 않거나 자리가 없어서, 또 문을 닫았을 때 잠시 머물 공간을 제공하는 조치다. 실제로 쉼터는 '남성은 불가능하다' '중학생 이상의 남자 아이는 들어올 수 없다' 등 조건이 까다로운 곳도 많고, 접수부터 입소 심사까지 최소 일주일이 걸려 당장 거처가 필요한 사람들에겐 무용지물이다.
이런 이유로 절도를 당했거나 가정폭력 등이 발생해 집을 나온 사람들은 지구대나 치안센터 등에서 잠시 머물다 다시 집으로 돌아가는 사례가 많았다.
경찰의 임시숙소 지원사업은 단순히 머물 곳을 마련해주는 것을 넘어 범죄 피해자의 사후 관리까지 해주고 있다. 각 경찰서는 담당 지역의 여관, 모텔과 협의해 임시 거처를 마련해 주는데 장소 선정에도 신경을 쓰고 있다. 여성이나 어린이가 이용하는 데 불쾌하지 않도록 유흥가는 피하고 문제가 발생했을 때 곧바로 경찰관이 출동할 수 있는 곳을 선정한다.
퇴소 후에는 피해자의 정신적'육체적 고통을 덜어주려 심리상담 전문가가 있거나 장기간 머물 수 있는 여러 형태의 쉼터를 알아봐 준다. 형편이 어려운 피해자에게는 지역 사회복지관과 연결해 주는 등 경제적 지원까지 아끼지 않고 있다.
이런 맞춤형 긴급 지원 덕분에 4월에 시작한 임시숙소 지원사업은 이달 중순까지 이용 건수가 대구에서만 250여 건에 이른다.
대구경찰청 관계자는 "임시 숙소의 위치, 머무는 기간 등 피해자에 대한 모든 정보는 철저히 비밀 보장이 된다. 범죄 피해로 불안에 떠는 시민들이 안심하고 머물다 가는 공간이 됐으면 좋겠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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