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드라마 작가였던 머레이 살렘은 자신의 성공적인 삶이 어떻게 가능했느냐를 말할 때마다 할머니 이야기를 빼놓지 않았다. 그의 할머니는 하루에 백번 이상 '하나님 감사합니다'를 고백하며 살았다. 실제로 그렇게 하려면 좋은 일뿐 아니라 슬프고 고통스러운 일까지도 감사해야만 한다. 머레이가 학교에 들어가자 백인 아이들이 검둥이라고 놀렸다. 상처를 받아 학교에 가지 않으려고 하자 그의 할머니가 이렇게 말했다. "머레이, 이제부터 누가 뭐라고 하던 그때마다 '하나님 감사합니다'를 외쳐봐. 그러면 놀라운 일이 일어날 거야." 어느 날 놀림을 받고 구석에서 울고 있던 그는 할머니의 말씀이 생각나서 그대로 중얼거려 보았다. 정말 신기한 일이 일어났다. 울음이 그쳐지고 분노가 사라지더니 얼굴 표정이 활짝 펴졌다. 변화된 머레이를 아이들이 인정하면서 놀림은 중단되었다. 그때부터 그에게는 무슨 일에든지 감사하는 습관이 생겼다. 이는 어려운 환경에서도 성공적인 삶을 살아가는 힘의 원천이 되었다.
감사는 이처럼 큰 힘을 가지지만 현실에서 참된 감사를 찾기란 쉽지 않다. 모든 것을 당연하게 여기는 마음이나, 교만한 마음이 감사를 방해한다. 누가복음에는 예수님께 고침 받은 열 명의 한센병자에 대한 이야기가 나온다. 고통받던 이들은 예수님의 말씀대로 병이 치유되자 뿔뿔이 흩어져 버렸다. 한시바삐 제사장의 확인을 받고 그리운 가정으로 돌아가고 싶어서였다. 하지만 그중 한 사람은 가던 길을 돌아와 예수님께 엎드려 큰 소리로 감사를 드렸다. 그때 예수님은 그를 향해 "열 사람이 고침을 받지 않았느냐? 그 아홉은 어디에 있느냐? 하나님께 감사하러 온 사람이 이 이방인 하나뿐이냐?"라고 탄식했다. 아마 고침 받은 열 사람 모두 감사한 마음은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그것을 표현한 사람은 한 사람뿐이었다.
올해도 어김없이 감사의 계절이 돌아왔다. 해마다 반복되는 감사절이면 평소보다 조금 더 많은 헌금을 드리는 것이 감사 표현의 전부가 된 지 오래다. 감사하는 마음이 없고, 정직한 양심이 사라진 헌금이 무슨 예물이 되겠는가? 삶이야 어떠하든지 그것을 상쇄하려는 보상심리로 드리는 헌금을 하나님이 과연 받으실까? 그런 것은 교회의 마당만 밟을 뿐이며 헛된 제물이기에 다시는 가져오지 말라는 선지자들의 외침을 한국교회는 다시 들어야 한다.
그뿐만 아니라 참된 감사는 사람들 간에도 표현되어야 한다. 가족끼리, 동료끼리도 보다 적극적으로 감사를 표현해야 한다. 부모의 은혜에 감사하는 것은 백번 지당하다. 하지만 자녀들에 대한 감사도 있어야 한다. 건강하게 학교에 잘 다니고 잘 커 주는 것이 얼마나 감사한 일인가?
예수님께 감사들 드린 사마리아 사람에게 어떤 일이 일어났는가? 상상치 못한 일이 일어났다. 그는 단지 감사하다는 말 한마디 하려고 왔을 뿐인데 뜻밖의 선물이 주어졌다. 예수님은 그에게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다!"고 말씀하였다. 그는 인생의 궁극적인 것을 얻었다. 예수님의 치유의 목적은 단지 병만을 낫게 하는 것이 아니었다. 그들에게 영원한 생명, 즉 하나님의 구원을 주시는 것이다. 감사는 우리 인생을 가른다. 감사를 한 사람은 하나님을 만났고, 나머지 아홉은 몸은 나았지만 하나님을 찾지 못했다. 올해도 감사의 계절이 지나가기 전에 하나님을 향해, 우리의 이웃을 향해 참된 감사를 드림으로써 우리의 삶이 하나님의 기적으로 채워지기를 소망한다.
박창식 달서교회 담임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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